희귀질환 치료제 건보 ‘100일 신속등재’ 환자 체감 위한 과제는?
A8 3개국 이상 약제 대상
5년차 성과 따라 급여조정
기존 미급여·급여기준 과제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기간을 현행 240일에서 100일 수준으로 줄이는 신속등재 시범사업이 하반기부터 추진된다. 일부 희귀질환 치료제를 먼저 건강보험 급여권에 들이고, 등재 이후 실제 진료자료를 바탕으로 치료 성과와 급여 적정성을 다시 평가하는 구조다.
다만 신속등재가 곧바로 모든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허가됐지만 급여권에 들어오지 못한 치료제, 건강보험에 등재돼도 투여순서·중증도·재발 여부 등 급여기준에 막혀 실제 사용이 어려운 치료제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등재 기간 단축이 환자 체감으로 이어지려면 행정절차뿐 아니라 실제 급여기준과 사후평가 이후 보호장치까지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보건복지부 제1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논의 내용을 종합하면 정부는 25일 건정심에서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논의하고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등재기간 240일→100일 목표

시범사업 대상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았거나 허가 절차가 진행 중인 희귀질환 치료제 가운데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캐나다 등 A8 국가 중 3개국 이상에서 등재 중인 약제다. 정부는 대체약제 유무·질환 중증도·재정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상 약제를 선정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안은 7~8월 대상 약제를 공고하고 9월 적정성 검토와 최종 선정을 거쳐 10월부터 레지스트리 참여 요양기관 협약과 신속등재 절차를 추진하는 일정이다. 대상 약제는 가칭 '대상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대체약제 유무·질환 중증도·재정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대 5개 이내에서 선정한다.
신속등재의 핵심은 급여 절차 단축이다. 선정된 약제는 임상적 유용성 검토를 중심으로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고, 비용효과성 평가 등 일부 절차를 간소화해 건강보험 적용 시기를 앞당기게 된다. 정부 목표는 현행 240일 수준의 등재 기간을 100일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는 올해 초 정부가 제시한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절차 단축 구상의 실행 단계로 볼 수 있다. 정부는 1월 희귀·중증난치질환 지원 강화 방안을 통해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적정성 평가와 약가 협상 기간을 각각 1개월 수준으로 단축해 허가 이후 급여 단계 전체를 100일 이내로 앞당기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실제 환자 체감 속도다. 앞서 본지는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 대상이었던 간내 담즙 정체 소양증 치료제 빌베이 사례를 통해 식약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 급여 고시까지 약 425일이 걸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 기존 절차보다 일부 단축 효과는 있었지만, 환자 입장에서 '신속'으로 체감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관련 기사: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등재 '100일' 시나리오, 시범사업으로 따져보니
기존 미급여 치료제 병목
좁은 급여기준 과제 여전
이번 시범사업은 기존 병행 심사보다 급여 절차 자체를 더 압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신속등재 대상이 일부 희귀질환 치료제로 제한되는 만큼 이미 허가됐지만 장기간 급여권에 들어오지 못한 기존 치료제 문제까지 자동으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대표 사례로는 국내 희귀질환 가운데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오페브가 거론된다. 오페브는 2016년 국내 허가 이후 특발성 폐섬유증 적응증에서 오랜 기간 건강보험 급여 장벽을 넘지 못했다. 2025년 1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오페브는 전신경화증 연관 간질성 폐질환과 진행성 폐섬유증에 대해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았지만, 특발성 폐섬유증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오페브 사례의 핵심은 허가 이후 장기간 급여기준 밖에 놓인 기존 치료제 병목이 환자 체감 접근성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관련 기사: 사망자 최다 희귀질환인데···10년째 '그림의 떡' 폐섬유증 치료제
급여가 적용된 뒤에도 실제 사용 기준이 좁으면 접근성은 다시 막힌다. 재발 때마다 신경 손상이 누적돼 시력 저하나 마비 등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다발성경화증이 대표적이다. 치료 현장에서는 일부 고효능 치료제나 2차 치료 옵션이 건강보험에 등재돼 있어도 기존 치료 실패·불충분한 반응·높은 질병활성·환자 유형 등 기준을 충족해야 사용할 수 있는 구조가 이어져 왔다. 결국 등재 여부뿐 아니라 실제 급여기준이 환자의 치료 시작 시점을 좌우하는 셈이다.
따라서 신속등재의 성패는 '100일'이라는 행정기간 단축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등재 이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급여기준이 어떻게 설정되는지, 조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제도가 작동하는지, 기존 장기 미급여 치료제 병목을 어떻게 풀 것인지가 함께 봐야 할 과제다.
치료 연속성 보장도 쟁점

사후평가 구조도 관건이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어 대규모 임상시험이 어렵고 장기 효과를 단기간에 충분히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정부는 먼저 급여권에 진입시킨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청구·심사자료와 의료기관 임상자료 등을 활용해 실제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방식을 추진한다.
시범사업안은 등재 이후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임상근거를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급여를 조정하는 구조다. 1~3년 차에는 심평원 청구자료와 의료기관 추가 임상자료를 활용해 국내 실사용 데이터 레지스트리를 구축하고, 4년 차에는 실제근거(RWE)를 중심으로 국내외 임상시험 자료와 국외 실사용근거 자료 등을 종합 평가한다. 경제성평가가 가능한 약제이거나 제약사가 희망하는 경우에는 경제성평가도 함께 수행할 수 있다.
5년 차에는 임상성과평가 또는 경제성평가 결과를 반영해 급여를 조정하고 건보공단과 약가 협상을 다시 진행한다. 주요 임상지표에서 확실한 우월성이 확인되면 약가를 유지하고, 대리지표 개선·이상반응 감소·편의성 향상 등 일반적 개선 수준이면 약가를 10% 인하한다. 대체치료법과 임상적 유용성이 유사한 경우에는 대체치료법 가중평균가 적용 또는 20% 인하를 적용하고, 임상적 유용성이 열등한 경우에는 전액 본인부담으로 전환한다.
약가 산정 방식도 시범사업안에 포함됐다. 신속등재 약제는 A8 조정최저가의 90% 수준을 기준으로 약가를 정하고, 예상청구액 계약과 실제 청구액 자료를 바탕으로 재정영향을 다시 반영한다. 조건부 급여 적용 기간은 등재 후 5년이며, 이후 추가 재정분에 대해서는 환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급여 진입 문턱은 낮추되, 등재 이후 실제 사용량과 치료성과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이 과정에서 환자 보호장치가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한된 근거를 바탕으로 먼저 등재한 뒤 실제자료를 모아 평가하는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자료 제출 미흡·공급 불안정·평가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치료 효과를 보고 있는 기존 투약 환자의 치료가 중단되거나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구조라면 환자 접근성 확대라는 제도 취지와 충돌할 수 있다. 시범사업안에는 대상 약제 선정 결과·사후평가 계획·급여조정안·치료보장 계획·최종 급여조정 결과 등을 공개하는 내용도 담긴 만큼 사후평가 과정에서 치료 연속성을 어떻게 보장할지가 향후 쟁점이다.
19일 심평원이 개최한 실제근거(RWE) 심포지엄도 이 같은 사후평가 체계와 맞닿아 있다. 심평원은 RWE 생성 가이드라인과 희귀·중증질환 약제 레지스트리 활용 체계를 논의했다. 신속등재 이후 청구자료와 의료기관 임상자료를 어떻게 연결할지, 어떤 임상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할지, 사후평가 결과를 급여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향후 제도 안착의 핵심 과제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운영 경과를 토대로 현행 제도를 보완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해 본사업 전환도 추진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제도를 통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건강보험 적용이 지연돼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는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 급여 평가와 약가협상 등 절차를 간소화해 등재 기간을 줄이는 제도다. 이번 시범사업은 현행 240일 수준의 등재 기간을 100일 수준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8 국가= 의약품 급여·약가 참고국으로 활용되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캐나다를 뜻한다.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A8 국가 중 3개국 이상에서 등재 중인 희귀질환 치료제가 우선 검토 대상이다.
☞실제근거(RWE)= 실제 진료환경에서 수집된 환자의 건강·의료이용·치료 경험 등 실제자료(RWD)를 분석해 얻은 근거다. 임상시험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장기 효과·안전성·실제 치료성과 등을 평가하는 데 활용된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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