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돌봄은 그림의 떡… “방문진료 한달 걸려 신청 포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아파.”
강원도 강릉 성산면에 사는 백발의 깡마른 김모(86) 할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최안나 강릉의료원장을 보자 온몸의 힘을 쥐어짜 가느다란 목소리를 내뱉었다. 김 할머니는 근육이 위축되는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병을 앓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1시 방문 진료를 나온 최 원장은 김 할머니의 구강, 등, 손발을 찬찬히 살핀 뒤 영양 수액제를 놓았다. 진료는 30분간 이어졌다. 요양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되는 김 할머니에겐 방문 진료만이 유일한 치료 수단이다. 그런데 강릉은 ‘통합돌봄 방문 진료 사업’에 참여한 민간 의원이 한의원 1곳밖에 없어 강릉의료원장이 방문 진료까지 겸하고 있다. 최 원장은 “강릉에서 방문 진료를 신청한 환자가 42명인데, 6명밖에 보지 못한다”고 했다.
오는 27일로 시행 석 달을 맞는 현 정부의 ‘1호 복지 정책’ 통합돌봄 사업이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다. 통합돌봄의 핵심은 민간 의원의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환자를 방문 진료하는 것이다. 참여 의원이 적다 보니, 통합돌봄을 신청하더라도 적어도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하거나 무한정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시군구 229곳에 모두 281개의 민간 의원(한의원 제외)이 통합돌봄 방문진료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시군구당 민간 의원이 평균 1개 수준인 셈이다. 특히 전국 시군구 중에서도 22곳은 민간 참여가 전무해 해당 지방 의료원이나 보건소가 방문 진료를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기존 업무에 방문 진료를 겸하기 때문에 소수의 환자밖에 보지 못한다. 또 25곳은 지방 의료원마저 불참하고 한의원만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의사는 침·뜸 등의 시술은 할 수 있지만, 고혈압·당뇨·치매 등에 대한 약물 처방권이 없다. 정상적인 방문 진료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여기에 참여 기관이 지방 의료원과 한의원으로만 짜인 시군구 8곳까지 합치면 전국 시군구 중 55곳(24%)에 방문 진료 주축인 민간 의원이 없는 셈이다. 이들 대부분은 지방 소도시다.

경북 김천에 사는 조모(70)씨는 이 지역의 유일한 방문진료 기관인 김천의료원에 진료 신청을 하려다 “최소 한 달 뒤에 갈 수 있다”는 답변을 듣고 포기했다. 강원 고성은 참여 기관이 한의원 1곳뿐이어서 대표적 노인성 질환인 고혈압·당뇨·관절염 환자에 대한 방문 진료는 불가능한 상태다. 의료계 관계자는 “한의원만 참여한 시군구 25곳은 모두 고성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의료계에선 “지방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설계 때문”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건세 대한재택의료학회장은 “민간 의원이 방문 진료로 병원을 유지하려면 하루에 환자 8명 정도를 봐야 한다”며 “환자 자택과 병원 거리가 먼 지방은 하루 1~3명의 환자밖에 볼 수 없어 적자가 나기 십상”이라고 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방은 이동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정부가 방문 진료 수가(정부가 병원에 주는 돈)를 정할 때 ‘거리 가산’ 등의 보완 장치를 뒀어야 했다”고 했다. 현재 통합돌봄 방문 진료 수가는 거리 등에 상관없이 환자 한 명당 한 달에 30만원 정도다. 의사는 월 1회, 간호사는 월 2회 환자를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장거리 진료의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방문 진료 가능 거리를 최장 16㎞로 제한하고 있다. 방문 교통비도 환자가 부담토록 했다.
지방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수도권도 참여율이 높지 않다. 서울 강동·동대문·동작·서대문·양천·영등포·은평·중구 등 8곳은 방문 진료에 참여한 민간 의원이 한의원을 빼면 1곳씩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울 은평구에선 한 달 이상 기다려야 방문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동대문구도 신청자 16명 중 4명이 계속 대기 중이다. 경기도에선 이 같은 시군구가 11곳이다. 경기 군포·연천·이천·포천 등 4곳의 경우, 민간 의원 참여가 ‘제로(0)’다.
이충형 서울봄연합의원 원장은 “서울에서도 환자 1명을 방문 진료하려면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병원에 있으면 평균 환자 6명을 볼 수 있다”며 “병원에 있으면서 환자를 보는 게 방문 진료보다 수입이 최소 1.5배 높아 참여 유인이 적다”고 했다.
비용은 더 많이 든다. 방문 진료 사업에 참여하려면 의원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를 고용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의원은 간호사 임금의 60% 수준인 간호조무사를 쓰고 있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간호사, 사회복지사를 1명씩 고용하려면 매달 1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통합돌봄
현 정부의 ‘1호 복지 정책’. 노인이나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집에서 돌봄(식사 수발 등)과 진료를 함께 받게 하는 복지 서비스다. 흩어져 있던 방문 진료, 방문 간호, 방문 목욕 등을 지자체가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올 3월 27일부터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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