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정유 패러다임 바꿀까...“끓이지 말고 거름망에 걸러요”
400도까지 끓여서 정유했는데
상온에서 값싼 거름망으로 성공
에너지 소비·탄소 배출 감축
정유 비용도 36% 절감 가능
![상온에서 가압한 원유를 다공성 분리막에 흘려보내 휘발유·나프타·등유 등 가벼운 성분만 걸러내는 공정 모식도. [사진=KAIST]](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25/mk/20260625004503964nzpv.png)
고동연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원유를 끓이지 않고 값싼 고분자 막으로 상온에서 정밀하게 걸러내는 데 성공했다고 24일 밝혔다. HD현대오일뱅크와의 공동 연구로 나온 이번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인류는 지금까지 원유를 끓였다가 식히는 증류 방식으로 필요한 석유화학 물질을 얻어왔다. 원유는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이 섞여있는 혼합물이다. 각 성분은 끓는점이 다르기 때문에 가열 온도에 따라 하나씩 분리할 수 있다.
문제는 가열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었다는 점이다. 보통 원유를 약 400도까지 가열하는데, 전 세계 정유 공정이 소비하는 연간 에너지는 1100테라와트시(TWh)에 달한다. 대형 원자력 발전소 약 130기가 1년 내내 만들어내는 양이다.
최근 세계 석유화학 시장의 원가 경쟁이 심화되면서 비용 절감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정유 공정의 막대한 에너지 소모는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고 교수는 얇은 고분자 막으로 상온에서 원유를 걸러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물에서 이물질을 거르는 필터처럼, 원유에서 필요한 성분을 걸러낸 것이다. 성분마다 분자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존에도 학계에서는 분리막으로 원유를 걸러내는 시도를 해왔지만 상용화가 불가능한 수준에 그쳤다. 분리막 면적 제곱미터당 1시간 동안 0.1리터도 정유하지 못했다. 이는 분리막에 얇은 코팅층을 만들었기 때문인데, 분자 단위의 초정밀 분리를 위해서는 코팅층이 있어야 한다는 게 기존의 상식이었다.
고 교수는 이런 상식을 뒤집었다. 아무런 코팅층 없이 원유를 걸렀고, 오히려 분리가 더 잘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원유가 분리막의 미세한 구멍에 들러붙으며 미세한 필터를 만들고 스스로 코팅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기존의 연구들을 보니 코팅층과 무관하게 일관된 흐름이 보였다. 코팅층 없이도 정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분리 효과는 잘 나타나면서, 코팅층이 없으니 분리 속도도 빨라졌다. 분리막 면적당 1시간에 0.591리터를 투과했다. 기존의 최고 성과보다 23배 이상 높은 수치다. 나프타 기준 원유 대비 두 배 이상 농축하는 데 성공해, 정유한 성분의 품질도 뛰어나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정유 공정의 에너지 소모량과 탄소 배출량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운영비도 36% 절감할 수 있어 석유화학 산업의 원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기존 증류 공정 대비 에너지는 31.6%, 탄소 배출은 37.6% 줄어든다.
기존 정유 설비를 유지하면서 분리막 모듈만 추가하면 적용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번 연구는 실험실 규모에서 이뤄졌고, 앞으로 규모를 키워 실증하는 것이 상용화를 위한 과제다. 고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얻은 수치가 상용화의 가능성을 보인 만큼, 향후 대형 막을 만들어서 실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고동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가 22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자실에서 원유를 끓이지 않고 값싼 고분자막만으로도 상온에서 정밀하게 걸러낼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연구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성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25/mk/20260625004505287ekqb.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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