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은커녕 지원 더 해달라는 선관위
위철환 직무대행은 사퇴 거부
자체 개선안엔 “선거 인력·장비
범정부 지원 체계 법제화” 제시

23일 국회에서 열린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기관 보고에선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여야의 질타가 쏟아졌다. 선관위 고위관계자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거듭 사과하면서도 재발 방지 대책으로 선관위에 대한 ‘정부 지원 강화’를 제시했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은 투표용지 인쇄 축소 방침을 보고받았느냐는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수사에 대비하는 듯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고 적반하장식 대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는 선관위원들의 무더기 불출석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로 시작했다. 국조특위는 중앙선관위 관계자 27명과 서울시선관위 6명, 송파구선관위 10명 등 43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원 9명 중에선 이미 사퇴한 노 전 위원장과 위철환 중앙선관위원장 직무대행(상임위원)을 제외한 비상임 선관위원 7명이 불참했다. 서울시선관위에선 오민석 전 위원장이 불출석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집중된 송파구선관위에선 비상임 8명 전원이 불참했다. 이날 회의는 각급 선관위의 첫 기관 보고를 받는 자리였다. 그런데 비상임 선관위원 총 16명이 출석하지 않으면서 ‘선관위원 없는 선관위 조사’가 된 것이다.
특위 위원들은 “국민에 대한 집단항명” “짬짜미라도 했느냐”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대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된 중대한 사안인데,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했다. 비판이 계속되자 불참했던 16명 중 13명이 오후 회의에 출석했다.
위 직무대행은 이날 보고에서 투표용지 부족에 대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사태에 책임지고 사퇴할 생각이 있느냐’는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 질의에는 “그건 무책임한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짬짜미” “집단 항명” 질타 쏟아지자… 선관위원들 오후에야 출석
선관위는 이날 국정조사 특위 회의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최초로 인지한 시점과 피해 투표소 숫자 등 사실관계를 정정해 보고했다. 지난 19일 선관위 자체 진상규명위는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가 140곳이라고 했었는데, 이날은 “141곳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송파구선관위가 투표용지 부족을 처음 인지했다는 시점도 지난 3일 ‘오전 11시 58분’에서 ‘오전 11시 34분’으로 고쳤다. 특위 위원들은 “중요한 팩트가 틀린 경위가 무엇인지 철저히 조사해 다시 국민 앞에 보고해야 한다”고 했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은 투표용지 인쇄 매수 축소 지침을 선관위 사무처로부터 보고받았느냐를 두고 말을 바꿨다. 앞서 노 전 위원장은 선관위 진상규명위 조사에서 “사전에 보고받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가 이후 입장을 바꿔 “보고 안건 중 하나로 포함됐지만 별다른 논의는 없었다”고 했었다. 이날 공개된 작년 11월 24일 중앙선관위 회의 안건에는 첫 장에 ‘선거일 투표용지 인쇄 매수 산정 비율 축소’가 포함됐다.
국조특위에 출석한 노 전 위원장은 오전엔 “(사무처가) 보고는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가, 오후엔 “(투표용지 축소 보고가) 기억이 안 나느냐”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 질의에 “솔직히 지금도 기억은 안 난다”고 했다.
위철환 중앙선관위원장 직무대행은 투표용지 인쇄 축소 등 선거 관리 지침을 중앙선관위원들이 참석하는 위원회가 아닌 선관위 사무처가 전결 처리한 것과 관련해 “우리가 통찰력이 없고 무능한 걸 인정한다”며 “너무 사무처를 신뢰하고 믿었던 것도 (이번 사태의) 한 원인”이라고 했다. 상임위원직 사퇴 여부에 대해선 “(제가 사퇴하면) 결재 라인이 무너져버려 아무것도 못한다”고 했다.
위 직무대행은 “선관위가 더 이상 감사원의 감사를 안 받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는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의 질의에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작년 헌법재판소가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 감사원이 직무 감찰을 할 수 없다’고 결정했는데, 헌법을 고쳐 직무 감찰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노 전 위원장도 “개헌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노 전 위원장은 “(위원장 비상임 체제는) 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선관위는 대법관이 비상임 위원장을 맡아왔다. 위 직무대행도 “(인사) 청문회를 할 때부터 상임위원 자리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국민이 하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니까 원인을 살펴보고 감독이라도 할 수 있을지 하는 마음으로 수락한 것”이라며 “어정쩡하게 상임위원 중간에 한 명 배치해 봤자 사무처에 대해 뭘 알겠느냐. 꼭 위원장이 상근화돼서 사무처 기능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위 직무대행은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다.
노 전 위원장은 재임 당시 해외 출장에 아내를 동반한 것에 대해 “그런 부분에 대해 아무런 이의제기도 없어 특별히 큰 의문을 갖지 않았다”며 “(출장 비용) 반환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선관위는 이날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조특위에 제출한 ‘입법정책적 개선 방안’에서 “인력·시설·장비 등 선거관리 필수 기초 자원의 범정부적 합동 지원 체계 법제화”를 대책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선거일 100일 전부터 중앙선관위와 행정안전부 등이 협의체를 운영하며 긴급 인력과 물자를 지원하고, 민원에도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관계자는 “본연의 업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선관위가 정부 지원 운운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선거 주장에 대해 위 직무대행은 “정말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나 국민은 광장에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선관위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에 이번 사태뿐 아니라 다른 부정행위에 대한 수사도 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선관위가 헌법이 정한 독립기관이다 보니 관리도 통제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선관위) 내부가 경각심을 갖지 않고 방만하게 운영하는 측면이 있는데, 형사적으로 문제 되는 부분은 정확하게 수사하고 밝혀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30명 정도인 검·경 합수본 규모도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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