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달러 쥐여주려는 美… 호르무즈 정상화 안간힘
제재 틀 흔들고 동결 자금 先해제
해협 봉쇄 재개 엄포에 약속 이행

미국이 근 20년 만에 이란산 원유의 달러화 판매를 허용했다. 묶어 뒀던 자금도 이란에 서둘러 돌려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핵시설 사찰 동의에 대한 보상이 명분이지만, 호르무즈해협 정상화 유인책(인센티브) 성격이 더 크다.
고환율 숨통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엑스(X)에 “재무부가 이란산 원유의 생산, 인도, 판매를 허용하는 60일짜리 임시 일반 면허를 발급했다”고 적었다.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롭고 개방된 통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재입국 수용을 이란이 약속했다면서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달러화로 원유를 팔 수 없도록 이란에 제재를 가해 왔다. 핵무기 개발과 중동 역내 친(親)이란 무장 대리 세력 지원을 막기 위해서다. 올해 3월 국제 유가 안정 대책 차원에서 해상의 이란산 원유에 한해 한시적으로 판매 금지 제재를 면제했지만 이때도 달러화 결제까지 허용하지는 않았다.
재무부의 이번 조치는 달러화 거래까지 포함한 제재 면제다. 미국 동부시간 8월 21일 0시 1분까지 이란은 원유 제품 판매 대금을 달러화로 받을 수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줄곧 외화 부족에 시달려 온 이란 정권에 요긴한 호재”라고 분석했다. 중국 등에 싸게 팔아야 했던 원유를 제재 면제 기간만큼은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팔 수도 있다.
파격적 양보
이날 제재 유예는 17일 양국 대통령의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 뒤 처음 열린 후속 협상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끈 JD 밴스 부통령이 회담 직후 연 스위스 현지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IAEA 사찰단을 자국으로 다시 초청하는 데 동의했다”고 소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발표됐다. 밴스 부통령은 이란의 핵 사찰 요구 수용을 “중대한 이정표”이자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 영구 종식의 첫걸음”이라고 포장했다.
그러나 핵 사찰 합의는커녕 핵 문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이란 측 주장이다. 실제 이날 양측 모두 동의한 회담 의제는 호르무즈해협 개방 유지 및 이스라엘과 친이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충돌 방지 방안이었다. 이날 회견에서 밴스 부통령은 이란 자금 동결 해제 논의에도 진전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대이란 양보는 파격적이다. 미국 재무부에서 대이란 제재를 담당했던 미아드 말레키는 이번 제재 면제에 대해 WSJ에 “미 의회가 지난 20년간 구축해 온 대이란 제재 체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선임연구원 대니얼 태넌바움은 미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제재 완화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보다 성급하다고 짚었다. 당시에는 IAEA가 이란의 핵 관련 의무 이행을 확인한 지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제재 수위를 낮췄다는 것이다.
자금 동결 해제 시기도 논란거리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은 스위스 회담 뒤 X에 “이란 석유 수출 제재가 면제되고 일부 동결 자금이 해제됐다”고 썼다. MOU 서명 대가로 동결 자금을 풀어 줄 수는 없다는 미국 측 공언이 무색하게 일부 자산의 경우 선(先)해제가 이뤄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다.
뒤늦은 각성
미국이 순순히 약속을 이행한 배경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재개 엄포일 공산이 크다. 스위스 회담 직전 이란은 레바논 교전을 구실로 해협을 다시 봉쇄하며 협상 지렛대를 시험했다. 폭격과 봉쇄로는 호르무즈해협을 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도 대공황 당시 미국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처럼 되고 싶지 않다며 호르무즈해협으로 다시 석유가 흐르게 했다는 점에서 이란과의 MOU는 정말 잘한 일이라고 자찬했다.
이란에 흘러든 돈이 역내 대리 세력 지원에 전용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를 의식한 듯 동결이 풀린 이란 자금은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압돌 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가 자국 반관영 통신 타스님에 합의상 동결 해제 자금으로 미국 농산물을 살 의무는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의 미래를 놓고 외교전에 나섰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23일부터 사흘간 걸프(페르시아만) 동맹국들을 순방하고 이란 협상단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아라그치 장관과 함께 23일 오만을 방문했다. MOU 5조에는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미래 관리 및 해상 서비스 협의 대상으로 오만과 걸프 연안국들이 명시돼 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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