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 몰렸던 '동전주' 하이닉스, 26년 만에 '대장주'로 우뚝
2003년 주가 135원까지 떨어져
이젠 삼성전자 넘어 시총 1위 등극
SK하이닉스는 2001년만 해도 파산 위기에 몰렸던 회사다. 아시아 외환위기 여파와 D램 가격 폭락이 겹치면서 그해 영업적자가 1조9102억원에 달했다. 2003년 3월 26일 135원까지 떨어진 이 회사 주가는 22일 290만원을 돌파했다. 파산 위기에 몰렸던 동전주가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부상한 것은 국내 증시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언더독의 반란’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 세계 첫 HBM 개발로 퀀텀점프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날 5.61% 급등한 291만9000원에 마감했다. 직전 거래일인 19일에 이어 사상 최고가를 재차 갈아치웠다. 시가총액은 이날 2080조3780억원으로 삼성전자 보통주 시총(2066조6590억원)을 추월했다. SK하이닉스가 AI 시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HBM 우위를 점한 데 대해 투자자가 높이 평가한 반면 삼성전자는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반도체 수익을 희석시켜 주가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3년 현대전자로 시작한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불황 여파로 2001년 워크아웃(채권단 공동 관리)에 들어갔다. 미국 마이크론에 매각될 위기를 넘기며 2012년 SK그룹에 인수된 SK하이닉스는 당시 연간 227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를 내는 기업이었다. SK그룹 내부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하이닉스엔 ‘기술’과 ‘글로벌’이란 무기가 있다”며 인수를 추진했다. 인수 금액은 3조4267억원이었다.
이후 반도체를 그룹의 차기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최 회장은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렸다. 당시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던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과감하게 베팅했다. HBM은 복잡한 공정과 낮은 수율로 제조 비용이 많이 들어가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후 SK하이닉스는 2013년 AMD와 손잡고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했다. 10년 동안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었으나 SK하이닉스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2014년 회사는 낸드플래시 개발 역량 향상을 위해 소프텍벨라루스의 펌웨어사업부를 인수했고, 2020년에는 10조원 규모의 인텔 낸드사업부를 품었다. 그룹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침체기에도 HBM 연구개발(R&D) 예산 투입은 이어졌다. SK가 인수하기 전인 2011년 3조5000억원이던 시설 투자액은 지난해 30조원까지 늘었다.
2023년 챗GPT가 촉발한 글로벌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세계를 강타하면서 SK하이닉스는 ‘퀀텀 점프’했다. AI 연산의 필수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드는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의 HBM을 독점 공급받기로 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H100·B200 등)에 필수적인 HBM3와 HBM3E를 사실상 대부분 공급하며 AI 메모리 시장을 완벽하게 선점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 기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33.2%의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 2000조 기업 조기 달성
SK하이닉스는 2021년 10월 세계 최초로 4세대 HBM인 HBM3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이후 반도체 업황이 호황세를 보이며 주가가 고공행진하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 주가는 2024년 22.90%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엔 274%, 올해에는 340% 이상 급등했다. 최 회장은 연초 SK하이닉스 시총이 지금보다 10배 이상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시총을 1000조원, 나아가 2000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는 조기 달성했다.
증권가에선 다음달로 예상되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밸류에이션 재평가’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증시에 직접 상장되면 아시아 시장 접근이 어려웠던 글로벌 메가펀드와 초대형 기관투자가의 자금이 대거 유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TSMC의 ADR 상장 당시에도 ADR 주식은 글로벌 기관 자금 유입과 상장지수펀드(ETF) 편입 효과를 누리며 재평가받았다.
조아라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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