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만화경] 왜 알콩달콩 대신 혐관인가

관리자 2026. 6.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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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멋진 신세계’
드라마 ‘멋진 신세계’ 포스터. SBS

“네 이놈. 어디 더러운 입을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야!”

조선시대에서 현재로 떨어진 신서리(임지연)는 눈앞으로 돌진하는 차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 차세계(허남준)의 도움을 받는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라면 이렇게 만난 남녀의 알콩달콩한 사랑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지만 최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는 다르다. 차세계는 신서리를 자해공갈범 취급하고, 신서리는 그런 차세계의 뺨을 올려붙인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혐관(혐오 관계) 로맨스’의 방식이다.

혐관 로맨스는 남녀가 서로 싫어하는 것처럼 티격태격하다 차츰 상대가 신경 쓰이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첫눈에 반하고 설렘이 느껴지는 알콩달콩한 관계들이 이어지다 사랑에 빠지는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먼저 서로를 미워할 정도의 갈등을 겪으면서 저도 모르게 빠져드는 관계의 진전은 그만큼 극적 반전 효과가 크다. 혐관 로맨스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알콩달콩’ 대신 ‘혐관’으로 시작하는 관계는 요즘의 달라진 대중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들 상대를 제대로 알려면 겪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겪어보지 않고 빠져든다는 건 주체적·능동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주변적인 조건에 휘둘리는 것일 수 있다. 혐관 로맨스는 그래서 일단 부딪쳐보고 싸워보기도 하면서 상대를 알아가는 게 먼저다.

‘멋진 신세계’는 조선시대 희대의 요녀로 불리다 사약을 마시고 죽을 줄 알았던 강단심이 2026년 대한민국이라는 신세계에 신서리의 몸으로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작품이다. 코미디 장르지만 그녀가 재벌 3세인 차세계 앞에서 보이는 당당한 모습은 흥미롭다. 으리으리한 건물 사무실을 가진 재벌 앞에서도 그녀는 주눅 들지 않는다. 그건 조선시대에 희빈의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라서기도 하지만,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현 자본주의에 상대적으로 덜 물든(?) 덕분이기도 하다.

겉보기에는 재벌 3세와 고시원을 전전하는 이의 신데렐라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혐관이라는 설정은 뻔한 클리셰(상투적인 전개)를 넘게 해준다. 그런 외적 조건들을 벗어던진 남녀가 서로의 진짜 매력에 빠져드는 과정을 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지켜가며 상대와 사랑하고픈 쿨한 시대의 정서가 엿보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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