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펀드와 미래기금 사이…반도체 호황이 만든 초과세수 20조원 어디로?[박상영의 경제본색](19)

반도체 경기 호황에 따른 대규모 초과세수 활용 방안을 두고 정부 부처 간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국부펀드’ 조성안과 기획예산처가 미는 ‘미래대응기금(가칭)’ 신설안으로 압축되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회견에서 초과세수를 단기 지출이나 채무 상환 대신 “미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중장기 투자”에 쓰겠다고 밝히면서 운용 구조를 둘러싼 부처 간 경쟁에 불이 붙었다.
먼저 깃발을 든 것은 재경부다. 재경부는 올해 초 정부 출자 주식과 물납 주식 등 현물 출자를 통해 초기 자본금 20조원 규모의 한국형 국부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여기에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대규모 초과세수가 현실화하자 이를 추가 재원으로 얹겠다는 복안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월 30일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경제가 좋을 때 나타나는 초과세수는 국부펀드 재원으로 두고, 또 그걸로 투자해서 다시 돈을 버는 선순환 구조를 가져가려 한다”고 말했다.
재경부 국부펀드 vs 예산처 미래대응기금
국부펀드는 초과세수 국가의 부를 밑천 삼아 민간 투자펀드처럼 수익을 추구하는 자금이다. 재원 조달 방식에 따라 오일머니 기반의 ‘상품형’(중동 산유국 등)과 무역수지 흑자·재정 자금 기반의 ‘비상품형’(싱가포르·중국 등)으로 나뉜다.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삼는 한국의 구상은 전형적인 비상품형에 해당한다. 재경부는 해외 자산에 주로 투자하는 기존 한국투자공사(KIC)가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국내 첨단산업 육성에 방점을 둘 방침이다.
다만 수익 극대화 원칙과 산업정책 지원을 동시에 추구할 경우 펀드 운용 방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초과세수로 펀드를 만든 아일랜드와 호주 사례 분석’을 보면 원자재 호황을 바탕으로 2006년 조성된 호주의 ‘퓨처펀드(FF)’도 이런 모순에 직면했다.
호주는 석탄·철광석 수출액 폭증으로 생긴 재원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4~5%포인트 웃도는 실질 수익률 목표 아래 국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사모펀드 등에 분산 투자하며 국부펀드의 성공 모델로 꼽혀왔다.
그러나 2024년 알바니즈 노동당 정부가 에너지 전환과 주택 공급 등의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 투자하도록 운용 지침을 개정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펀드 본연의 ‘수익 극대화 원칙’이 정권의 정치적·산업정책적 목적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김진욱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수익 극대화와 산업정책 지원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게 되면, 두 목표가 충돌할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펀드의 운용 방향을 시장이 예측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준비 부족으로 난항을 겪는 사례도 있다. 아일랜드는 급증한 법인세 수입을 재원으로 2024년 ‘미래 아일랜드기금(FIF)’을 출범시켰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로 지식재산권(IP)을 대거 이전하면서 법인세 수입이 10년 만에 7배로 늘자 일시적 초과세수를 미래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아일랜드 정부는 납입 기준을 변동성이 큰 법인세 실적이 아닌 국내총생산(GDP) 연동 방식으로 설계해 매년 GDP의 0.8% 의무 납입을 법제화했다. 올해 2월 기준 FIF 운용 규모는 약 20조원에 달한다.
설계는 정교했지만, 문제는 운용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고도 이를 굴릴 전문 운용 인프라를 사전에 갖추지 못한 아일랜드 정부는 첫 납입 후 16개월간 자금 대부분을 저수익 국채와 현금성 자산에 묶어둬야 했다. 이로 인한 기회비용 손실만 6억3000만유로(약 9200억원)에 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문성 저하와 관제 투자 사이
기획처가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기금 방식도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기금 방식은 시장형 펀드에 비해 정책적 유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원금 확보와 수익률 극대화가 제1 목표인 국부펀드와 달리, 기금은 당장 상업적 수익이 나지 않아도 기초과학 연구개발(R&D), 핵심 인프라 구축, 기후위기대응 등 공공성이 높은 분야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반면 운용 효율성과 전문성 저하는 약점으로 꼽힌다. 민간 금융 전문가가 주도해 적극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펀드와 달리, 관료 조직이나 공공위원회가 운용하는 기금은 보수적인 기조 탓에 자산 증식 효율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다수의 정부성 기금이 시중 금리에도 못 미치는 정기예금 위주로 자금을 굴려 비판을 받아왔다. 국회 심의 절차가 일반 예산보다 엄격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정권 입맛에 맞는 선심성 사업이나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국책 사업에 재원이 동원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원 확보의 지속성도 문제다. 국부펀드는 한번 원금이 조성되면 그 수익으로 자기 증식을 하는 구조여서 초과세수 유입이 끊겨도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하다. 반면 기금은 매년 지출 사업이 연속적으로 집행되는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반도체 경기가 꺾여 초과세수가 줄어들면 결국 일반회계 전입금에 손을 벌리는 ‘무늬만 특별기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기획처 내부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초과세수 대신 전년 대비 일정 규모 이상의 세수 증가분이나, 중기 재정 운용 계획상 예상 세수 전망치의 초과분을 기금 재원으로 삼는 방안을 대안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시적 세수 호황을 미래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성공하려면 부처 간 주도권 경쟁보다 통제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호주의 운용 지침 변경 논란이나 아일랜드의 운용 인프라 부족 사례는 정교한 거버넌스 없는 재정 비축이 자칫 정치적 외풍이나 재정 낭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산 운용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국회 심의 체계와 운용 주체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입법적 보완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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