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 침해”는 묻히고 “부정선거”구호만 커졌다… 변질된 잠실 봉쇄 시위
일부 투표소 득표수 쌍일치 논란…“통계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현상”
(시사저널=김임수 기자)
"41세에 결혼해 이제 딸이 첫돌을 지났는데, 정의로운 나라에서 살게 해주세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 13일째인 6월17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2-1 게이트 앞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참정권 침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여전했다. 경기장 바깥 곳곳에는 "기본권 수호! 재선거" "선관위를 해체하라" "잠실민주화운동" 등이 적힌 피켓과 유인물이 곳곳에 붙었고,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나부꼈다. 2-1 게이트는 전날인 6월16일 체육단체가 내부로 진입하려 했으나, 여성 시위 참여자 1명이 막아섰던 곳이다. 이 여성에게는 이후 '올림픽공원 잔다르크(올다르크)'라는 별칭이 붙으며 추앙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부정선거 피켓' 든 청년들 시위 현장 점령
잠실 봉쇄 시위는 처음엔 '부실선거'를 외치며 기존 정치 집회와 거리를 둔 2030 세대 중심의 시민 집회였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20대 대학생 김아무개씨는 "참정권 침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자괴감이 들어 나왔다"며 "미술 전공자라 피켓 만들고, 안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 참여가 난생처음이라는 김씨는 "생각보다 질서정연하고, 또래 자원봉사자도 많다. 물과 간식도 넉넉히 지급되고, 어르신들 쉬라고 냉방버스도 운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봉쇄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달라진 분위기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날 역시 '참정권 침해'나 '재선거' 구호보다는 '부정선거' '수개표'나 '윤석열이 옳았다' '이재명 하야' 같은 정치적 구호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한 진보 성향 유튜버가 현장을 찾아 라이브 방송을 시도하자 일부 시위자가 "분탕 치러 왔느냐"며 몸으로 막아섰고, 결국 경찰이 제지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를 향해 "언론은 다 빨갱이야" "궁금하면 유튜브 검색해서 ○○TV 봐라"라는 격앙된 반응도 보였다. 경찰을 향해선 "몇 살이냐" "중국 공안"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시위 현장을 찾은 극우 유튜버들은 부정선거 불쏘시개를 제공하고 있었다. 유튜버로 전향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6월17일 오후 4시경 시위 참여자가 모인 자리에서 "모든 지역구 사전투표는 전산 조작된 것"이라며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부정선거의 피해자"라고 외쳤다. 특히 인천 송도 등 일부 지역에서 후보자들의 사전투표 득표수가 쌍으로 일치한 데 대해 "로또 1등 3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이라며 "사전투표 가신 분들은 주권행사를 한 것이 아니라 노예짓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의 말을 듣던 이들은 "맞습니다" "부정선거 사형"을 외치며 맞장구치기도 했다.
시위 현장의 무게중심이 '부정선거' 쪽으로 기울면서 청년들 사이에서는 정작 선관위 개혁이라는 본질이 묻히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천에서 왔다는 30대 남성 이아무개씨는 "부정선거 시위를 왜 잠실에서 하는지 모르겠다"며 "지금은 참정권 침해, 재선거만 외쳐야 하는 상황이다. 한두 사람 잘못으로 전체가 피해를 본다"고 한탄했다. 곁에 있던 또 다른 30대 남성 김아무개씨 역시 "한미 공조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트럼프 대통령도 대한민국 부정선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믿기 어렵다"며 "경찰이 결국 불법 시위 꼬투리를 잡아 강제 해산시키려고 할 것이고, 결국 서부지법 사태처럼 된다. 대한민국 미래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일부 2030 세대는 서울 홍대 등에서 태극기와 '재선거' 피켓만 허용하는 별도 집회를 열기도 했다.

'쌍둥이 득표' 지난 총선·대선 때도 나와
잠실 봉쇄 시위의 발화점은 선관위의 명백한 선거 관리 부실에 있다. 선관위 자체 발표에 따르면, 투표용지가 부족해 추가 전달받은 투표소는 △서울 53개 △경기 36개 △인천 18개 △부산 9개 △대구 7개 △경남 5개 △전남 4개 △울산 3개 △강원 2개 △충북·전북·경북 각각 1개였다. 사실상 전국에서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선관위는 언론보도를 통해서야 심각성을 인식했다. 밤 11시까지 투표가 이어진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대기표를 받았던 유권자 12명은 결국 투표를 포기했다. 전북교육감 개표 과정에서 유권자 1104명의 득표수가 누락됐고, 경기교육감 투표에서는 임태희·안민석 두 후보의 득표수가 뒤바뀌기도 했다.
다만 선관위의 '부실선거'가 곧바로 '부정선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지가 봉쇄 시위 현장에서 확인한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는 ①사전투표에서만 득표수가 쌍으로 일치한 사례 ②일부 후보자의 이름이 누락된 투표용지가 교부된 사례 ③잠실 경기장이 여전히 '개표소'이기에 침입 시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주장 ④전산 조작을 통한 투표 결과 사전 세팅 주장 ⑤'선관위는 꼬리, A-WEB(에이웹) 몸통설' 등 크게 다섯 가지였다.
팩트체크 결과, 이 같은 현장의 부정선거 주장은 '음모론'에 가까웠다. 선관위는 우선 일부 투표소에서 득표수가 쌍으로 일치한 현상에 대해 "문제가 된 사전투표소의 선거인 수와 후보자별 득표수, 무효투표수 등 전체 투표 데이터는 서로 다르다"며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집계한 결과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수의 통계학자도 확률상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며 "로또 1등에 연속 당첨되는 것이 아닌 수백만분의 1 확률인 1등 당첨자가 매주 여러 명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에서도 득표수가 쌍으로 일치한 사례는 사전투표와 본투표 모두에서 나왔다.
선관위는 '강남구 등에서 서울시장 투표지에 6명이 아닌 정원오·오세훈 2명만 표기돼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서울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등은 구청장 선거에 2명의 후보자가 등록했는데, 유권자들이 서울시장·구청장 투표용지를 동시에 교부받아 기억의 오류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투표소에는 각 정당 참관인이 투표 과정 전반을 참관하고 있어 비정상적인 투표용지가 확인·발견됐다면 그 즉시 이의제기가 있었을 것인데, 그런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잠실 경기장이 공직선거법상 여전히 '개표소'이기에 누구든지 불법 침입이 된다는 주장 역시 자의적인 법 해석에 가깝다. 선관위는 개표 결과가 이미 발표됐고, 임대 기간이 끝난 상태이기에 개표소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선거법상 개표소 출입을 막는 규정은 '개표가 진행 중일 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의석수가 뒤바뀌었다는 보도에 대해선 "봉쇄로 늦게 도착한 투표함이 뒤늦게 개함되며 보수 우세 지역 표가 추가 반영된 정상적 절차였다"며 "당시 개표가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의석수가 변동됐다는 내용은 잘못"이라고 했다.
선관위는 가장 대표적인 부정선거 예시인 '미리 준비된 투표용지나 전산 시스템 해킹으로 개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미 여러 차례 반박한 바 있다. 선관위는 "개표 결과는 선거통계시스템과 방송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되며, 개표상황표 사본을 개표소에 게시하거나 참관인 등에게 제공해 실시간으로 확인·대조할 수 있다"며 "조작이 가능하려면 선거인이 직접 투표한 투표지를 미리 조작된 위조 투표지와 교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당 관계자들도 "모든 개표소마다 정당에서 참관인들이 들어가 개표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 그런 과정을 안다면 부정선거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선관위의 안일한 대응, 책임 추궁 필요"
봉쇄 시위 현장에서는 중앙선관위가 주도해 만든 국제기구인 에이웹을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곳에서 부정선거 시스템을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어 '한미 공조 국제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선관위는 이 같은 의혹 제기에 "에이웹은 회원기관 간 선거 관련 지식 공유, 역량 강화, 선거 참관 등을 목적으로 활동한다"며 "특정 국가의 선거 운영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한국에서 사용되는 선거 시스템을 그대로 채택한 국가도 없다"는 입장이다.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짐에 따라 2020년 이후 해외에 K선거 장비를 수출하던 것도 현재 전면 중단한 상태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를 촉발한 낮아진 투표용지 인쇄 비율에 대해서도 그 배경에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있었다는 항변을 내놓았다. 익명을 원한 한 선관위 직원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그동안 선관위 사무실을 찾아와 투표용지가 왜 이렇게 많이 남느냐며 무단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등 (투표용지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왔다"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본투표 과정에서의 부실과 행정 공백 문제인데, 사전투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또 나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관위 관계자는 "법원에서도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부정선거 의혹 제기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라며 "지금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하기 위해 노력할 때"라고 했다.
다만 부정선거 의혹 제기와는 별개로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 해체 수준의 개혁을 통해 마침표가 찍힐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선관위 자체 진상규명위 활동, 검경 합동수사본부 수사, 국회 국정조사 세 갈래로 후속 조치가 진행 중이다. 조현욱 진상규명위원장은 6월15일 "위기 대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며 "안일한 대응과 사태 심각성에 대한 미온적 인식에 대해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경 합수본은 6월11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데 이어 잠실 개표소에 대한 증거 보전 절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재 잠실 경기장 내부에는 투표함 약 380개가 그대로 놓여 있는 상태다.
국회에서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국정조사가 45일간 열릴 예정이다. 국정조사에서는 이번 사태 진상 규명과 함께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 △중앙선관위원장과 각급 선관위원장의 상근체제 도입 △중앙선관위원 임기 단축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선관위 개혁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서울시장을 비롯해 인천·경기·광주전남, 울산·부산·충북 등 7곳에 대한 선거소청도 제기했다. 선관위는 소청을 접수한 날부터 60일 이내에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만일 선관위가 기각이나 각하 결정을 내리면 소청인은 10일 이내에 법원에 선거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등 야당 일각에서는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재선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공직선거법 224조는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해 선거 무효를 선언할 수 있는데, 선거소청이 제기된 곳 모두 현재까지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위법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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