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가짜 뉴스”라더니… 동맹에 454조 재건 기금 떠넘기나
석유 수출 등 경제 제재도 풀어
호르무즈 통행료는 언급 안돼
미국이 이란의 재건 및 경제 개발 지원을 위해 최소 3000억달러(약 454조원) 자금을 조성하고, 이란에 즉각적인 석유 판매권, 동결 자산 접근권 등을 부여하는 등 상당한 경제적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종전 양해각서(MOU) 세부 내용이 17일 공개됐다. 블룸버그는 이날 G7(7국) 정상회의에서 유포되기 시작한 MOU 안을 입수해 보도하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끝내고 핵무기를 절대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재천명하는 대가로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받게 된다”고 했다. 양측은 19일 스위스의 알프스 휴양지 뷔르겐슈토크에서 정식 서명식을 진행한 뒤 향후 60일간 후속 실무 협상에 들어간다. 최종 합의 진행 상황에 따라 양측의 이행 내용은 바뀔 수 있다.

트럼프는 “MOU일 뿐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들(이란)을 향해 총을 쏘고 머리 위에 폭탄을 투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력이 없음을 강조하면서도 세부 내용을 사실상 확인한 것이다. 공개된 MOU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6조다. “미국은 역내 파트너들과 함께 이란의 복구와 경제 발전을 위한 포괄적 계획을 양측 합의에 따라 수립할 것을 약속하며 최소 3000억달러의 자금 조달을 보장(ensuring)한다”는 내용이다. 이란은 그간 “미국과 동맹국은 최소 3000억달러 규모의 이란 재건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초안을 공개해 왔는데 이보다 더 강한 구속력이 있는 ‘보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3000억달러는 이란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금액이다.
트럼프는 전날 이란 재건 자금 약속 관련 보도에 대해 “미국이 이란에 돈을 준다는 것은 가짜 뉴스”라고 한 바 있다. MOU와 트럼프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동맹 및 걸프 국가 등에 재건 비용을 떠넘기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악시오스는 이 기금을 조성하고자 한국·일본·싱가포르의 기업이 약정을 맺었고, 에너지·물류·제조업·운송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절반 이상인 1500억달러에 대해 이미 투자 약정이 돼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가짜 뉴스”라더니… 동맹에 454조 재건 기금 떠넘기나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서방이 이란에 40여 년간 부과한 제재도 거의 모두 해제될 전망이다. 7조는 향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국제원자력기구(IAEA) 결의 등을 포함한 이란에 부과된 모든 유형의 제재를 종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10조는 또 “MOU 서명 직후부터 미 재무부가 이란산 원유·석유화학 제품 및 그 파생상품의 수출과, 은행·보험·운송 등을 포함한 모든 관련 서비스에 대해 제재 면제(waiver)를 허용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미국이 이란산 원유 등을 2018년 6월 이후 제재했는데 이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MOU 내용이 실제 실행된다면 한국 등 서방 국가도 이란 원유 수입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최종 합의를 향한 협상의 진전에 비춰, 이란의 자금과 자산에 대한 동결 또는 제한을 해제해 완전히(fully) 이용 가능하도록 한다” ”이 자금은 이란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최종 수혜자에게 지급하는 데 완전히 사용될 수 있다“는 11조의 문구는 서명 이후 협상 과정에서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그간 동결 자산을 먼저 풀어야 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고, 미국은 ”실적에 따라 돈을 지급하는 합의일 뿐”이라고 일축해 왔다. 실제 MOU 문안 역시 협상 도중 동결·제한을 풀어준다는 의미여서, 협상 진전에 대한 양국의 해석 차이가 커질 수 있다.
MOU 체결 이후 레바논 등 모든 전선에서 전쟁을 즉각적·영구적 종료하고(1조), 양국 상호 내정에 불간섭하며(2조), 최종 합의를 위해 향후 60일 동안 협상한다(3조) 같은 내용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대동소이하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을 전쟁 이전으로 복원하고 미군이 주변에서 철수한다(4~5조)는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양국이 호르무즈 통제권과 통행료(수수료) 관련 내용을 MOU에 명시하지 않은 점은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호르무즈 통제권’을 주장하는 이란은 60일간의 협상이 불발될 경우 호르무즈를 다시 봉쇄하거나,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란 핵 문제는 “이란은 결코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다. 농축우라늄 처리 문제 등은 최종 합의서에서 적절하게 해결한다”(8조)고만 했다. 민감하고 복잡한 디테일을 모두 추후 협상으로 넘긴 셈이어서, 미국 내 보수 진영의 반발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최종 합의가 체결될 때까지 이란 핵 프로그램은 현 상태(status quo)를 유지하고 미국이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거나 군사력을 증강하지 않기로 한 9조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란이 그간 주장했듯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이나 헤즈볼라 등 대리 세력 지원에 대한 내용이 MOU에 빠진 것 역시 논란이 될 전망이다. 다만 MOU 작성에 관여 중인 관계자는 “기술적 세부 사항을 여전히 조율 중”이라며 “서명 전 정확한 문구는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이란 역시 “호르무즈 해협 관련 문구 등이 부정확하며 핵심 용어가 누락됐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에게 정치적 위험이 되는 합의”라며 그가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JCPOA)를 ‘현금 퍼주기’라고 주장하며 폐기했던 사례를 거론했다. 실제 미 공화당 지도부에선 전날까지 “MOU 전문을 우리조차 전달받지 못했다” “세부 내용은 의회가 표결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트럼프 1기 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이란의 석유 제재 해제 전망에 대해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란이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미 보수 진영에서조차 ‘이럴 거면 전쟁은 왜 했나’ ‘오바마 때와 다를 게 뭔가’라는 반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MOU 내용을 ‘이란의 외교적 승리’로 평가하고, “우리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며, 앞으로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이란 ISNA통신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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