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미국이, 비용은 동맹이?”…450조원 이란 재건기금 역풍 확산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가운데, 3000억달러(약 453조원) 규모로 알려진 이란 재건기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이 전쟁을 주도한 뒤 재건 비용은 동맹국과 민간 자본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가 확실한 비핵화 성과도 확보하지 못한 채 이란에 대규모 자금 지원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신에 따르면 미·이란 MOU에는 3000억달러 규모의 민간 투자기금을 조성해 이란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체 자금의 절반 이상이 이미 출자 약정을 마쳤으며,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 기업 등이 참여 대상으로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JD 밴스 부통령 역시 해당 기금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자금은 투입되지 않는다”며 선을 긋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민간 투자기금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쟁 피해에 대한 보상 또는 재건 지원 성격이다. ‘배상금’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정치적 부담을 키울 수 있는 만큼 투자기금 형태를 택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반면 이란은 사실상 전쟁 보상금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란은 전쟁 기간 내내 피해 배상을 요구해왔으며, 이번 기금이 양측이 절충한 결과물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논란의 핵심은 기금 조성 주체다. 걸프 국가와 미국 동맹국들의 자금이 주요 재원이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이 벌인 전쟁의 비용을 동맹국에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협상 스타일을 고려하면 각국의 참여를 순수한 자발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는 지난 3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군함 파견을 요구했던 논리와도 닮아 있다는 평가다. 당시에도 미국이 초래한 위기의 부담을 동맹국에 나누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미국 내에서는 이번 합의가 이란 비핵화 성과 없이 이뤄진 ‘선(先) 보상’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강조하지만, 핵 프로그램 폐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 처리, 농축 중단, 핵시설 해체, 국제사찰 수용 등의 구체적 조치는 아직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더욱이 관련 핵협상은 MOU 체결 이후에야 본격화될 예정이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얻은 성과가 호르무즈해협 재개방과 이란의 구두 약속 정도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이는 전쟁 전 안전하게 항해하던 해협 상황과 나아진 게 없고, 추가적인 안전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결자금 해제나 제재 완화는 이란의 비핵화 조치와 연계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진행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향후 60일간 이어질 핵협상 기간 동안 이란의 석유 수출을 허용하기 위해 일부 제재가 면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제재 완화가 핵포기 이행과 연동된다는 기존 설명과 배치된다. 이란이 같은 기간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한 조치와 맞물려 사실상의 상호 양보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신뢰 구축 조치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이란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약화된다는 이유로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 과정에서 동결자금을 해제한 것을 두고 “현금다발을 안겨줬다”고 비판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는 더 큰 규모의 자금 지원 논란에 직면하게 됐다는 점도 아이러니로 꼽힌다.
미국 CNN은 2015년 오바마 행정부 당시 해제된 이란 동결자금이 약 500억달러 규모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1500억달러라고 비판해왔다며 현재 거론되는 3000억달러 규모의 기금은 그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강경파의 반발도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마크 티센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란에 3000억달러를 제공하는 것은 재앙”이라며 “나치가 집권한 독일에 마셜플랜을 제안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오바마의 대이란 정책을 공격하며 사용했던 논리가 이번에는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형국이다. ‘미국 돈은 아니다’라는 설명만으로는, 왜 이란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잠재우기 어려워 보인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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