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언중유향]'운명 교향곡' 홍명보 감독에게 12년 전의 아픔은 약이 될까 아니면 덫에 걸린 착시 효과 일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준비할 것은 여건 내에서 다했다. 알아야 할 것도 그러모아서 하나의 정보로 압축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것뿐이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정말 많은 정성을 쏟았다. 선수들의 점검을 위해 미국, 유럽 등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서 개별 면담도 했고 소속팀 코칭스태프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했다
해발 1571m 고지대인 과달라하라 적응을 위해 운동생리학, 고지대 연구 등 학자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연구 논문이나 실증 연구 등을 통해 최적의 상황을 찾으려 노력했다. 6명 이상의 학자나 전문가를 만나 정보를 취합했고 사전 캠프, 본 베이스캠프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홍 감독이 애를 쓴 이유는 명확하다. 12년 전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의 가슴 시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당시 홍 감독은 최강희 전 감독이 지휘봉을 놓으면서 소방수로 들어갔고 제대로 선수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을 보냈고 허무하게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땅명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경기 외적 논란까지 겹치면서 재기 불능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당시 미국 마이애미 사전 캠프를 거쳐 브라질 이과수에 베이스캠프를 차렸지만, 여러 실수는 홍 감독의 통제 범위 밖에 있었다. 브라질에 들어가기 전 황열병 예방 주사를 맞았지만, 이는 컨디션을 확실하게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마이애미에서는 잦은 낙뢰 등으로 실외 훈련이 지연되는 등 변수가 가득했고 그렇지 않아도 황열병 예방 주사가 몸을 무겁게 만든 상황에서 더 힘들게 작용했다.
이과수에서도 비가 많이 내리는 등 축축한 날씨에 숙소 역시 요새였지만, 밖으로 나가기 힘든 답답한 곳이었다. 후일 축구협회 백서나 선수들의 증언에서도 환경적 요인 상당히 작용했음을 고백한 바 있다.
이번에는 달랐다. 멕시코에는 홍역이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고 선수들 모두 일찌감치 예방 접종을 했다. 고지대라는 환경적 요인에 메이지 않게 사전 캠프부터 확실한 적응을 선택했고 그사이 두 차례 평가전으로 예열도 했다.
해외파 선수단이 더 많아지면서 섬세한 소통은 중요해졌다. 이전처럼 복장부터 지적하면서 권위를 세우지도 않았다.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실리적인 것들만 취하기로 했다. 3월 유럽 원정 A매치 소집 당시 조규성(미트윌란)의 복장을 보고 놀란 홍 감독이 가벼운 농담으로 웃어넘긴 것이 그랬다.
선수들의 몸 관리도 존중했다. 지난 카타르 대회에서는 개별 선수 트레이너 동행 논란이 있었다. 대표팀 내 의무진과 트레이너가 있지만, 엇박이 나면서 논란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이번에는 달랐다. 개별 트레이너를 허용하되, 협회 스태프와 선수의 몸 상태를 분명하게 정보 전달을 하도록 했다. 또, 개별 트레이너가 없는 선수에게 영업을 시도한다면 그 즉시 경기가 열리는 장소에서 떠나도록 정리, 불필요한 잡음을 줄였다. 시대가 변한 것을 존중하면서도 '대표팀'이라는 하나의 틀은 지키겠다는 의미였다. 지원스태프의 역할도 명확, 선수단과의 불필요한 오해를 줄였다.
온갖 비판을 받으면서도 3명의 수비에 기반한 백스리 전형과 전술도 일단 구축했다. 이는 "홍명보에게는 4-2-3-1 밖에 없는가"에 대한 물음을 "플랜B"인 백스리를 기초로 3-4-3, 3-5-2 등올 상대의 특성에 따라 변화를 주는 것으로 귀결된다.




결과를 내야 노력이 찬사받는 것
홍 감독에게는 지도자로서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브라질의 실패 이후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돌아와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을 통해 파울루 벤투 감독을 영입해 카타르 대회 16강으로 이어지는 초석을 쌓는 등 행정가의 모습도 잠시 보여줬지만, A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전략, 전술이 불명확하다는 비판도 피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스타일이 명확한 감독이 실패하면 "그 스타일만 고집해서 그렇다"라는 이유가 만들어지고 반대의 경우 "확실한 전략 없이 경기를 끌고 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붙는다. 특히 일부 유튜버로부터는 말꼬리 잡기식 비판의 중심에 있었다. 앞뒤 다 자르고 말 한마디로 비판을 위한 비판의 재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 역시 홍 감독이 초래한 부분도 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40대 이상의 세대와 달리 10-20대 축구팬들에게는 홍 감독의 언어가 '추상적인' 표현(예를 들어 "마음에서 무엇인가 나왔다"라는 류의)으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동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강권에 못 이겨서 이 직책을 수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대의 화두인 '불공정' 논란까지 붙어 있어 그렇다.
동시에 그를 선임하는 과정에 최고 수장이었던 정몽규 회장은 월드컵 이후 중도 사퇴를 선언해 그렇지 않아도 경기 준비에 몰두해야 하는 홍 감독과 선수단에 방해 요인이 됐다. 결자해지를 위한 도구가 된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계약이 되어 있는 홍 감독에는 보이지 않는 부담이다.
익명을 원한 한 축구계 원로는 "홍 감독이 그나마 브라질 당시와 비교해 많이 단단해진 것은 긍정적이다. 그 역시도 결과에 의해 판단을 받을 것이지 않나. 월드컵은 단기 이벤트라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결과가 더 짙게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알고 있을 것이다. 꼭 긍정적인 것을 얻었으면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익명의 K리그 한 감독은 "지도자는 결과로 증명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홍 감독은 좋든 부정적이든 꽤 큰 기회를 순조롭게 얻어왔다고 본다. '2002 한일월드컵 세대' 후광이라는 덤이 붙어 있지 않나"라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 뒤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이번에는 꼭 좋은 결과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홍 감독 개인에게도 한국 축구에도 여러 가지로 아픈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홍 감독은 대회 직전 12년 전의 아픔과 실패를 뼈 시리게 알고 있었다. 이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14년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대회를 잘 준비했다고 생각한다"라며 과거를 거울삼아 준비했음을 강조했다.
이제 남은 것은 체코가 가진 강점을 무력화하고 우리가 보일 것을 최대한 보여 승점 3점의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다. 물론 조 3위도 32강에 갈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1점도 괜찮다. 적어도 지면서 시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야 홍 감독도 원하는 아픔을 씻고 불신도 지울 수 있다. 한 번 실패한 사람에게 쉽게 기회를 주지 않는 한국적 환경과 문화에서 특혜받은 것처럼 비춰지는 홍 감독에게는 더 그렇다.
공은 이미 굴러가는 중이다. 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을 그라운드 위에서 조심스럽게 보여주며 과달라하라에서 환희의 송가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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