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3년이 골든타임…놓치면 5년 뒤 답 없다”

이현주 2026. 6.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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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AI와 리쇼어링 흐름 속 향후 3~5년이 한국 산업 경쟁력을 결정할 ‘골든타임’이라고 진단했다.

[커버스토리] 인터뷰 -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 인터뷰


“모험자본은 미래가 아니라 생존의 게임이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의 진단은 명확했다. ‘생산적 금융’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자본을 기술과 산업, 미래로 흐르게 만드는 일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모험자본’이 있다. 그는 “10개 중 9개가 실패해도 1개의 성공이 산업을 바꾸는 게 모험자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벤처투자 1세대로 꼽히는 윤 대표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대표주자인 퓨리오사AI, 망고부스트의 초기 투자자다. 윤 대표는 “모험자본은 미래 세대에게 기회를 한 번 더 넘겨주는 일”이라며 “스타트업과 벤처에 대한 지속적이고 대규모의 모험자본 공급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지난 5월 13일 서울 성수동에서 윤 대표를 만났다.

- 생산적 금융에서 ‘미래’에 투자하는 ‘모험자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미래라기보다는 ‘생존의 게임’입니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예요. 대한민국 산업 흐름을 보면 1970~1980년대 우리는 조선, 중화학, 철강, 자동차 같은 중후장대 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드웨어 강국이었죠. 그런데 1999년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패러다임이 소프트웨어로 옮겨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에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벤처 활성화 정책을 통해 벤처가 부각됐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낸 회사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세계화 흐름에서 효율성이 강조됐습니다. 제조는 싸고 잘 만들 수 있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미국, 일본, 독일의 제조 인프라는 약화됐죠. 그러다 2023년 샘 올트먼이 AI라는 새로운 세상을 선포하면서 다시 하드웨어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거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쇼어링, 이른바 ‘편 가르기’를 시작했어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우리나라가 주목받게 됐습니다. 반도체, 전력기기, 조선, 방산, 원전 모두 좋죠. 25년여 만에 우리가 잘하는 분야가 다시 시대의 중심으로 들어왔습니다.”

- 왜 모험자본 투자가 생존의 게임인가요.
“지금 반도체를 비롯한 산업 호황이 몇 년이나 지속될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다’고 하지만, 이제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입니다. 3~5년 내에 웬만한 공장은 자동화된다고 봅니다. 미국이 다시 제조 강국이 되기까지의 그 ‘골든타임’ 안에 우리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5년 뒤 대한민국의 먹거리는 사라집니다. 앞으로 3년 동안 모험자본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일은 대기업이 하기 어렵습니다. 역동성은 결국 벤처와 스타트업에서 나옵니다. 지금의 1억 원이 5년 뒤에는 10억, 100억 원 가치와 맞먹을 수 있습니다.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순간 100억을 쥐고 있어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국가적으로 보면 향후 5년이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미래 세대에는 답이 없습니다. 우리 자녀 세대의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 모험자본은 일반 투자와 어떻게 다른가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투자하는 것도 모험투자로 보는 분이 있습니다. 손해를 볼 수도,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 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죠. 모험투자는 다릅니다. 10개 중 9개가 실패하더라도 1개가 성공할 수 있는, 혹은 전부 망할 수도 있는 게임입니다. 회수에 대한 기대 자체가 보장되지 않아요. 그럼에도 모험자본이 중요한 이유는 100개에 투자해 단 1개라도 크게 성공하면 그 한 종목이 산업 전체를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도 점점 한두 종목으로 성장이 뾰족하게 집중되는 구조예요. 자본도, 산업도, 모든 것이 집중화되고 있죠. 중요한 건 99개의 실패를 두고 책임을 묻지 않는 문화입니다. 그걸 비난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도전하지 않습니다. 99개가 망하더라도 1개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문화, 그것이 모험투자입니다.”

- 그동안 벤처투자에 자금이 많이 들어갔지만 결실이 아쉽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모험자본은 ‘버블’을 통해 일어납니다. 인터넷 버블 당시 많은 사람이 손해를 봤지만, 그 버블이 없었다면 네이버는 없었을 겁니다. 바이오 버블을 거치며 대한민국 바이오 산업이 성장했고, 모바일 버블도 마찬가지예요. 개별 투자자 입장에선 망한 사람이 더 많고, 그래서 ‘벤처투자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네이버 하나만 성공해도 그동안 국가가 투자한 자금보다 시가총액이 훨씬 큽니다. 거기서 세금이 걷히고 고용이 창출됩니다. 버블이 두려워서 투자를 안 하면 안 됩니다. 버블을 조정해 가는 것이 국가의 역할입니다.”

- 개인적으로도 모험투자에서 실패 경험이 있을 텐데요.
“대표적으로 옐로모바일이라는 회사가 있어요. 모바일 시대에 굉장한 버블이 일어났던 회사죠. 우리가 약 100억 원을 투자했는데, 한때 기업 가치가 4조 원까지 갔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던 회사였어요. 그런데 결국 망해 버렸죠. 한껏 들떠 있다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허탈감이 굉장히 큽니다. 다만 그것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안 돼요. 빨리 털어내고 새 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 과거 벤처 붐 때의 ‘묻지 마 투자’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옛날에 비하면 시스템이 많이 정비됐습니다. 요즘은 자금이 옛날보다 훨씬 많이 들어왔는데도 그런 사고가 별로 없어요. 시스템화가 진행됐고, 모럴해저드 사례도 많이 줄었습니다. 종사자들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올라왔고요.”

- ‘국민성장펀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기존의 정책성 펀드와 차별점이 명확합니다. 건국 이래 한 기업에 수천억 원을 정부가 투자한 적은 없었어요. 기존의 다른 펀드들은 소규모로 씨를 뿌리는 방식이었다면, 국민성장펀드는 타깃이 명확합니다. 잘되는 곳을 더 잘되게 만든다는 콘셉트죠. 현재는 주로 AI 관련 분야에 집중하고 있고, 하반기에는 로봇과 바이오 쪽으로 영역을 확대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한 기업의 AI 인프라 투자 규모가 대한민국 전체 투자보다 큽니다. 자본이 부족한 우리는 가능성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방식이 맞습니다.”

- 잘되는 큰 기업 중심으로 자금이 몰리면, 초기 기업 육성은 어떻게 하나요.
“이미 입지를 다진 기업에 거대 자본이 몰리는 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공통 흐름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을 봐도 큰 기업이 더 잘나갑니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시점에 누가 새로운 회사를 만들겠다고 하면 아무도 투자해주지 않습니다. 자리 잡는 데 10년이 걸리고, 투자금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거기에만 자금을 집중하고 나머지를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모험자본 투자는 두 갈래로 나눠서 봐야 해요. 한 축은 잘나가는 큰 기업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펌핑해주는 것이고, 또 다른 축은 작은 씨앗을 끊임없이 뿌리는 일입니다. 씨앗 뿌리기를 게을리하면 새로운 산업은 나오지 않습니다.”

- 우리는 어떤 분야에 집중해야 하나요.
“AI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AI를 구동하는 반도체, 그리고 AI에 필요한 전기입니다. 소프트웨어는 챗GPT나 제미나이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1등만 살아남는 시장이에요. 다만 거대언어모델(LLM)은 국가 방위산업과 직결되는 만큼 일정 수준의 자체 역량은 갖춰야 합니다. 반면 하드웨어는 한 기업이 모든 생산을 독점할 수 없어 함께 나누는 구조입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전력기기, 방위산업, 그리고 2차전지 소재입니다. 특히 반도체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가 2개나 있고, 인력과 인프라가 뒷받침됩니다. 해볼 만한 분야예요. 대표적인 사례가 AI 반도체(NPU) 기업 퓨리오사AI입니다. 그때 우리(DSC인베스트먼트)나 산업은행이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AI 추론 반도체 경쟁에서 설 자리가 없었을 겁니다.”

- 모험자본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잘못된 것은 산업 정책, 특히 벤처 정책이 정권에 따라 너무 많이 흔들렸다는 점입니다. 모태펀드 예산을 줄였던 적도 있어요. 미국이나 중국은 큰 산업 정책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유지됩니다. 우리나라는 변동이 심해요. 대표적인 예가 원자력입니다. 산업 정책이 이데올로기와 만나는 순간 산업은 망가집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돈이 많든 적든 예측 가능성이 가장 중요해요. 벤처 정책 중 가장 좋은 사례는 모태펀드와 팁스(TIPS)입니다. 외국에서도 들어와 벤치마킹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제도예요. 지금 생산적 금융 수혜를 받고 있는 큰 기업들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때 모태펀드와 팁스를 통해 초기 투자를 받았던 기업들입니다.”

- 모험자본이 활성화되려면 규제 환경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비유하자면 축구는 대표적인 네거티브 시스템이에요. 반칙만 하지 말고, 그 외에는 알아서 하라는 거죠. 그래서 손흥민 같은 선수가 나옵니다. 포지티브 시스템은 감독이 11명의 선수가 가야 할 길을 일일이 정해주는 식이죠. 거기서 창의력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화장품 규제를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바꾸자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영업, 마케팅, 생산, 연구개발(R&D)을 한 회사가 다 하던 구조가 분리되면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생산은 다른 곳에 맡길 수 있게 됐죠. 원료 규제도 ‘이것만 빼면 다 써도 된다’로 바뀌니 창의적인 제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국은 일단 풀어놓고 문제가 생기면 보완하는데, 우리나라는 미리 다 막아놓아서 새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 5년 뒤 AI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지금은 에이전트 AI 시대입니다. AI가 비서 역할을 해주면서, 과거 100명이 만들던 서비스를 두세 명이 만들 수 있게 됐어요. 1인 유니콘 시대가 올 겁니다. 그다음 단계가 피지컬 AI, 즉 로봇이에요. 로봇 시장은 중국이 최강이지만, 미국이 보안 우려로 중국산 로봇을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자본시장 측면에서 코스닥 활성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부가 인위적으로 돈을 넣어 끌어올리는 방식은 답이 아닙니다. 거래소가 코스닥을 100% 자회사로 만들어 분리시키면, 코스닥이 독자 경영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기업을 데려오고, 상장 시스템도 기업 친화적으로 바꾸고, 연기금에도 정책적 요청을 하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일반 투자자에게 팁을 주신다면.
“산업의 흐름을 공부해야 합니다. 모험자본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수년 뒤의 트렌드를 미리 공부하고 예측하는 일입니다. 다만 개인이 모험투자를 직접 하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10개 중 한두 개가 성공하는 포트폴리오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산업과 기술에 대한 공부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0.1%의 혁신가, 그 혁신가를 알아보는 0.9%, 그리고 나머지 99%가 있습니다. 갈수록 투자의 양극화가 가속화될 겁니다. 산업과 기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