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공장, 정치논리보다 경제성 고려를[현장에서]

“희망보단 걱정이 앞섭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공장 추진설’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11일 경기권의 한 반도체 장비업체 임원은 이처럼 말했다. 그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은 반드시 대형 팹(공장) 근처에 거점을 둬야 한다”며 “수도권, 충청권에서도 인력을 못 구하고 있는데, 더 멀리 간다고 하면 올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광주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전남권 등 지방 주요 거점에 반도체 투자 계획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말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리는 주요 그룹 총수 간담회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공개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호남에 새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은 지역 균형 발전과 공급망 분산 차원에선 긍정적이지만, 자칫 정치 논리가 앞서 기업과의 철저한 사전 협의 없이 성급하게 추진하면 오히려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통상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부지·전력·용수뿐만 아니라 숙련 인력 등 다양한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를 수도권인 경기 용인시로 결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력과 용수는 다른 지역에서 끌어올 수 있지만, 반도체 생태계 조성과 인력 확보는 인구가 밀집된 기존 공장 인근이 아니면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호남 지역의 풍부한 재생에너지·용수 역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는 발전량이 수시로 출렁거리기 때문에 반도체 공장에 직접 투입하려면 대규모 인프라를 추가로 깔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균형 발전과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기업을 몰아세우는 정치 논리는 금물이다. K반도체가 중국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철강·석유화학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면 10년 뒤에도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김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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