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재건의 디딤돌과 걸림돌[이현종의 시론]
여야 모두에 경고 절묘한 민심
‘與 전략자산’ 張엔 후퇴 명령
서울시장 부산북갑 의미심장
‘재선거’ 뒤에 숨어 책임 분산
반성 없으면 더 큰 민심 역풍
吳·韓 생환은 보수 회생 초석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절묘하다. 여야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정답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선거 직전까지 연일 X를 통해 야당과 사기업인 스타벅스를 겨냥한 ‘저주’를 퍼부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민심은 옐로카드를 뽑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도 오세훈 서울시장과 무소속 한동훈 의원의 승리로 같은 옐로카드를 내밀었다.
유권자들은 두 사람에게 옐로카드를 주긴 했지만 그래도 광역단체장 12곳의 승리로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힘을 동시에 주었다. 국정을 잘 운영하라는 격려와 경고를 동시에 준 것이다. 반면, 장동혁 대표와 국민의힘에는 옐로보다 더 강력한 ‘레드카드’를 내밀었다. 이미 지방선거 전부터 ‘여당의 전략 자산’이라는 조롱을 받은 장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돌연 8박 10일간 미국에 가더니 김민수 최고위원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 한 장 남겼다.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엉망진창으로 공천을 해놓았는데 뒷수습도 제대로 못 했다.
실제 선거전에선 더 심각했다. 장 대표가 손을 들어줬던 후보는 대부분 낙선했다. 선거 막판 5차례나 방문하며 공을 들인 충청권은 4명의 광역단체장이 전원 낙선했다. 장 대표에게 면전에서 퇴진하라는 쓴소리를 했지만, 유세 때 함께 손을 맞잡은 김진태 강원지사도 떨어졌다. 박민식 부산 북갑 후보의 개소식에 장 대표와 함께 참석한 박형준 부산시장도 마찬가지다. 반면, 장 대표를 거절했던 오세훈 서울시장, 박완수 경남지사, 유의동 경기 평택을 후보는 생환했다.
‘선거 저승사자’로도 비유된 장 대표는 당연히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이라는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8일 기자들의 사퇴에 대한 질문에 “제가 되묻겠다. 객관적 데이터를 놓고 여러분은 이번 지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되레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 서울시장 당선과 기초단체장 선전(善戰)을 자신의 공으로 여기는 듯하다.
당 안팎에서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장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빌미로 재선거 투쟁으로 덮으려 한다. 장 대표는 ‘전면적 재선거’를 주장하지만, 판사 출신인 자신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재선거 주장 뒤에 숨어 대표직을 연장하겠다는 꼼수가 선명하다. 사퇴 요구를 받는 것이 두려워 의원총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잠실 개표장에 검은 옷과 마스크로 변장하고 시민들 틈에서 시위를 벌이는 황당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결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책임윤리가 정치인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했다. 황교안, 한동훈 등 전 당 대표·비대위원장은 선거 패배 결과가 나오자마자 미련 없이 떠났다. 한 의원은 비대위원장 사퇴 뒤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다시 당 대표로 복귀했다. 당심과 민심이 부르면 다시 복귀하는 것이 정치다.
국민의힘이 민심에 얼마나 반응하느냐는 10일 열리는 원내대표 선거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영남권의 ‘언더 찐윤’ 세력들은 한동훈 의원이 복귀해 당을 장악하면 자신들의 공천이 날아간다는 두려움에 뭉치고 있다고 한다. 정말 민심의 철퇴를 맞고도 기득권 수호를 위해 의도적 침묵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힘 지지율이 오른 것은 장 대표 체제가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오 시장과 한 의원의 당선으로 보수가 다시 살아날 수 있고 이재명 정권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민심이 정답을 제시했는데도 당심 운운하며 거부한다면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처럼 민심이 국힘이라는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한 공소취소를 강행할 뜻을 분명히 내비쳤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미뤄놓은 조작기소 특검을 강행하며 공소취소 절차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국민은 정권을 겨냥한 저항운동에 나설 수 있다. 범국민적 반(反)공소취소 투쟁을 조직한다면, 보수 대통합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 장 대표 체제로 가능할까. ‘범국민’은 고사하고 ‘범보수’도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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