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21세기 바벨탑 건설자들과 그 위험
온 땅에 흩어질 걸 두려워한 이들이 자신들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명성을 떨치고자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도시와 탑을 짓기로 한 바벨탑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단일한 언어, 단일한 기술, 단일한 지향을 꿈꾸며 건설하려던 바벨탑을 새삼스레 소환한 이는 레오 14세 교황이다. 최근 자본과 에너지를 무제한으로 투입해 오직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을 만들겠다는 세태를 우려하며, 교황은 고대 바벨탑 건설자들의 오만을 떠올린 것이다.
젠슨 황, 샘 올트먼, 일론 머스크 같은 거대 기술기업 리더들의 과장된 수사와 욕망이 마치 선지자의 예언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미디어의 집중적 조명을 받는다. 에이전트 AI, 피지컬 AI, 그리고 마침내 초지능을 향해 질주하자는 그들의 제안 앞에서, 민주주의가 생략되고 불평등이 더 벌어지며, 일자리가 위협받고, 환경이 파괴되는 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쯤으로 치부된다.
올해에만 한국의 경제 규모보다도 큰 2조5000억달러의 자금이 AI를 위해 투입될 예정이고, 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서 소비된 전력 448TWh는 사하라 남쪽 13억 인구가 2년 반 사용한 전력과 맞먹는다. 지금 추세라면 2030년 무렵 AI가 소비할 전력량은 945TWh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센터가 소비한 4조5000억L의 물은 무려 올림픽 수영장 180만개를 채울 정도로 많아졌다. 초지능을 향한 열망에 지불한 대가다.
초지능을 만들겠다며 무차별하게 자본과 자원을 쏟아붓는 AI 경쟁을, 레오 14세 교황이 고대인의 교만한 바벨탑 건설 욕망에 비유한 건 정말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압도적인 자본과 자원을 투입했어도 아직 초지능 비슷한 조짐도 없지만, ‘AI 거품’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많은 AI, 더 많은 데이터센터, 더 많은 전력, 더 많은 물을 동원하는 중이다.
한편, AI 바벨탑을 비추는 거울 안쪽에서는 1만 코스피를 꿈꾸며 온 국민이 열광하는 주식 거품이 자라나고 있다. 추론형 AI와 에이전트 AI가 요구하는 막대한 기억 능력을 지원하기 위해 AI 메모리가 대규모로 필요해지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이 급증했고 이들이 밀어 올린 주가가 ‘주식 바벨탑’을 쌓아가는 중이다. 주가에 열광하는 이들은 최저임금 협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주식시장이 끝도 없이 상승해 하늘에 닿기를 기원하는 중이다.
지수 상승 기여의 무려 88%를 차지하는 AI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오직 AI 바벨탑이 계속 올라갈 때만 유지된다. AI 거품 걱정이 나올 때마다 주식시장은 심하게 출렁거리고 투자자들의 불안은 커진다. 한편에서 대부분의 실물경제는 주가와 상관없이 침체를 면치 못하거나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른바 AI 경제의 이면에 K자 양극화가 진행 중이지만 주가 고공행진에 취한 이들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며 쌓고 있는 더 큰 허세의 바벨탑이 있다. 바로 무한한 경제성장의 바벨탑이다. 2030년까지 앞으로 5년 동안 평균기온이 1850~1900년보다 1.5도 이상 높을 가능성이 75%라고 세계기상기구는 전망했다. 기후위기의 경계선이라 알려진 1.5도를 처음으로 넘었던 2024년과 같은 기후가 앞으로 일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실리콘밸리는 AI를 위한 물질적 팽창과 에너지 소비를 멈추려 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강력한 인플루언서 마크 앤드리슨은 “성장하지 않는 건 침체다. 침체는 제로섬이고 내부 갈등, 악화, 붕괴, 그리고 죽음”이라면서, 이를 위해 미국인이 평균을 훨씬 뛰어넘어 에너지를 소비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방향이라고 강변한다. 한국도 지금 AI를 위해서라면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건 당연하다는 듯, 전국 단체장 당선자들이 지난 선거에서 데이터센터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인간을 뛰어넘겠다는 욕망을 담아 쌓아 올리는 AI라는 바벨탑, AI 폭발에 기대 나란히 올라가는 주가의 바벨탑, 그리고 이 모두를 자양분 삼아 거대하게 지어지는 무한 성장이라는 바벨탑은 과연 이재명 정부 임기 4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건축가는 어떻게 건축할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면서 더 정의롭고 안전한 미래를 위해 AI라는 바벨탑 놀이를 멈추라고 말하는 레오 14세 교황의 충고는 언제가 되어야 우리의 귀에 들어올 것인가.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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