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은 돌봄의 붕괴"...토종씨앗에서 읽은 기후위기의 본질
"지금 필요한 전환은 공존사회 상상하는 것"

멸종위기는 특정 동식물이 사라지는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씨앗이 사라지고 수분곤충이 줄어들고 토양 생태계가 약해지는 이 일련의 일들은 결국 인간의 먹거리와 생존 조건을 뒤흔든다.
김효정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조교수는 여성농민의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연구해왔다. 그는 에코페미니즘을 단순히 '환경과 여성의 결합'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에게 에코페미니즘은 누가 생명을 유지해왔는지, 어떤 돌봄이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밀려났는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지를 묻는 언어다.
김 교수는 여성농민과 농생태학, 먹거리 돌봄, 에너지 전환, 기후위기 시대의 생태정치를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시민참여형 에너지 전환 모델인 '도시형 햇빛소득마을 시민학교'를 운영하며 에너지 민주주의와 돌봄의 관계를 살피고 있다.
연희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토종씨앗과 여성농민, 기후위기 시대의 돌봄과 전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 교수는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며 대안경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여성농민들의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다룬 인터뷰 기사를 접했다. "땅을 바꾸고 씨앗을 바꾸고 삶을 바꾼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농촌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토종씨앗 운동은 단순한 농업운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 다가왔다.
석사 논문을 위해 찾은 강원도 횡성에서 그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난한 여성농민이었다. 산업형 농업으로 전환하려면 씨앗뿐 아니라 비료와 농약까지 사야 했지만 소농에게는 그 비용이 부담이었다. 대신 소농들은 해마다 씨앗을 받아두고 다음 해에 다시 심는 방식을 이어갔다.
그는 횡성에서 여성농업인센터에 머물며 마을 할머니들을 만났다. 아침마다 찾아가 인터뷰하고 농사일을 돕고 밥을 얻어먹었다. 토종씨앗은 이후 GMO의 대안으로 주목받게 됐지만 할머니들은 스스로 대단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오랫동안 해오던 방식대로 씨앗을 받아 다시 심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김 교수는 이 평범한 반복에서 멸종위기 시대에 돌아봐야 할 중요한 질문을 발견했다.
"누가 생명을 지켜왔는가?"
생태적 기억 담은 오래된 씨앗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토종씨앗은 단순히 오래된 씨앗이 아니다. 지역의 기후와 토양, 계절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아온 생태적 기억이다. 해마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가장 좋은 씨앗을 골라 다시 심는 과정 자체가 기후 적응의 역사인 셈이다.
김 교수는 "산업화된 종자가 표준화된 조건에 맞춰 만들어졌다면, 토종씨앗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온 씨앗"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여성농민들이 수행해온 역할에 주목했다. 씨앗 보존은 여성농민의 삶과 강하게 연결돼 있다. 농업에는 성별 분업이 있는데 논농사가 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다면, 밭과 텃밭은 여성의 노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밭작물은 오랫동안 여성들의 영역이었다. 가족의 식탁에 오를 작물을 고르고, 씨앗을 보관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두는 일 역시 여성들의 몫이었다. 씨앗마다 보관법도 달랐다. 어떤 씨앗은 건조한 곳에 두고, 어떤 씨앗은 부엌에 매달아 뒀다. 어머니에서 딸로,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생활의 기술이었다. 집집마다 자주 먹는 음식, 가족의 입맛,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물에 따라 씨앗의 종류도 달랐다.

멸종은 돌봄의 위기
멸종위기도 같은 맥락에 있다. 김 교수는 멸종위기를 단순히 특정 동식물의 소멸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멸종위기는 우리가 의존해온 생태를 둘러싼 돌봄의 관계망이 무너지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토종씨앗이 사라지고 수분곤충이 줄어들고 토양 생태계가 약화되는 일은 결국 인간의 먹거리 체계와 생존 조건을 흔든다. 에코페미니즘은 이 과정에 '누가 무엇을 살려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러한 시선은 식탁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마트에서 늘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농산물을 소비하게 되는 구조 자체가 산업형 농업과 기업 중심 종자 시스템의 결과다. 생산성과 유통 효율에 맞춰 개량된 품종이 대량 공급되면서 지역의 다양한 씨앗과 재배 방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김 교수는 여성농민들에게서 들었던 말을 전했다. "토마토 씨앗 1g이 금보다 비싸다." 종자가 생명의 기반인 동시에 기업의 자산이 되어가는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김 교수는 식탁을 "매우 정치적인 공간"이라고도 표현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단순한 취향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농업 시스템을 지지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 값싼 대량생산 체계를 지지할 것인지, 생태적 전환과 지역 순환 구조를 지지할 것인지가 식탁에서 드러난다.
그는 "음식 하나에도 누가 생산했는지, 어떤 노동이 들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사용됐는지가 담겨 있다"며 "제철 먹거리나 지역 생산자와 연결된 소비가 늘어나면 다양한 씨앗과 농업 방식이 유지될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와 먹거리 위기가 여성의 돌봄 부담을 더욱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 문제가 심화될수록 젠더 불평등이 함께 커진다는 얘기다.
김 교수도 "기후위기는 결국 누가 더 많이 돌보고 감당하는가의 문제"라며 "폭염이나 재난이 오면 아이와 노인 돌봄 부담이 먼저 커지고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 가계와 생활비 부담이 증가하는데 그 역할이 여전히 여성들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 시대의 이동 불가능성'이라는 개념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기후재난 상황에서 여성들은 가족 돌봄과 생계 유지 때문에 쉽게 이동하거나 회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기후위기는 돌봄과 생존의 불평등 문제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점은 에너지 전환 현장에서도 여성들의 참여가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명지대학교에서 '기후·에너지 전환 이니셔티브' 프로그램 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도시형 햇빛소득마을 시민학교'를 주제로 1기를 모집했는데 모집 정원 30명에 270명이 지원했다. 지원자의 80% 이상이 40~50대 여성이었다.
이들은 에너지 문제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 교수는 "지원 동기를 보면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를 밝힌 분들도 있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도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에너지 문제를 기술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 지역의 안전, 돌봄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끼던 사람들이 태양광 협동조합이나 햇빛발전 모델에서 구체적인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라며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 시대의 실천은 결국 연결을 회복하는 일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돌보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