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8조원 들여 짓는 전함…"역사상 가장 비싼 표적함" 논란?

2026. 6. 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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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급 전함 상상도. 이 전함은 길이 270m, 폭 35m, 배수량 3만5,000톤으로 그 규모가 '역대급'이다. 미 해군

지난 6월 3일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이날은 ‘러시아판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개막일이었다. 이 도시는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서 직선거리로 무려 860㎞ 떨어진 곳이어서 전쟁과는 상관이 없어 보였지만, 행사 참석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은 세계 각국 정치·경제 유명 인사들은 아침에 호텔을 나서면서 자신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자폭 드론을 보고 경악했다. 드론은 석유 터미널과 항만, 공장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는데, 이 중 몇 대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앞바다 코틀린섬에 있는 해군기지로 날아들었다. 드론들이 노린 것은 러시아 해군의 현용 주력 전투함 중 하나인 스테레구시급 초계함 ‘보이키’였다.

우크라이나군 자폭 드론 공격을 받고 있는 러시아 초계함 보이키. 우크라이나군

장거리 자폭 드론 여러 대가 난타한 이 전투함은 수리를 위해 드라이도크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에 침몰은 면했지만, 복구하기 어려운 치명상을 입었다. 레이더와 통신 장비 등 가장 비싼 첨단 전자장비가 몰려있는 마스트가 완파됐고, 함교와 전투정보실도 잿더미가 됐다. 사람으로 치면 눈과 뇌를 잃은 셈인데, 이 때문에 이 배는 조기 퇴역이 불가피하게 됐다. 가장 비싼 장비들이 몰려있는 부분이 파괴돼 복구하더라도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1억 5,000만 달러(약 2,300억 원)를 들여 만든 이 배를 무력화시킨 것은 우크라이나가 5만 5,000 달러(약 8,500만 원)로 만든 자폭 드론이었다.

지난 3일(현지 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크론시타트 해군기지에서 소방대원들이 유도탄 호위함 '보이키'호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해 크론시타트 기지, 탐보프 지역 군수공장 등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크론시타트=AP 뉴시스

"대형 전함 필요" vs "항공기가 전함 압도"...100여년 전의 논쟁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인 1921년, 미 육군 항공국장 빌리 미첼 중령이 해군에 흥미로운 제안 하나를 던졌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파견돼 항공기의 가능성을 직접 보고 들었던 미첼은 육군·해군에 이은 제3의 독립 군종으로 공군 창설을 강력히 주창했고, 지금도 미 공군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해군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대형 전함을 건조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전함 1척 건조할 돈이면 항공기 1,000대를 만들 수 있고, 미래 전쟁에서는 이 항공기가 해상에서 전함을 압도할 것이라며 항공기를 이용한 전함 격침 실험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미군 내에서 큰 반발과 조롱을 받았다. 당시 전함이라는 무기는 강대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전략무기 그 자체였고, 크고 웅장한 전함과 비교하면 당대 항공기들은 그야말로 ‘모기’와도 같은 보잘것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미 해군은 의회와 여론의 압력에 등 떠밀려 미첼의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실험을 시작할 때가 되자 몇 가지 핸디캡을 걸었다.

항공기 투발 폭탄을 맞고 침몰하는 오스트프리스란트 전함. 미 해군 역사 및 유산사령부

실험에 사용되는 항공기는 어뢰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폭탄도 제한된 중량의 폭탄만, 그것도 1,500m 이상 고도에서만 투하해야 했다. 당연히 실험은 실패했다. 당시에는 고속, 고고도로 비행하는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폭탄을 이동하는 표적에 정확히 맞힐 수 있는 조준·유도 기술 따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첼은 저고도 근접 폭격 방식으로 폭탄 투발 방법을 바꿨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표적함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활약했던 독일 해군 전함 ‘오스트프리스란트’였는데, 만재 배수량 2만4,700톤의 이 거함은 항공기가 투하한 폭탄을 얻어맞고 침몰했다.

이 실험 이후 미첼은 미래 해전은 전함이 아닌 항공기가 주력이 되어 치러질 것이고, 미국은 태평양 너머의 새로운 위협인 일본이 항공모함에서 띄운 항공기로 진주만을 폭격하는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인과 고위 군인 중에 이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 이후에도 각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거대한 함포를 실은 거대한 전함, *‘거함거포(巨艦巨砲)’ 기조를 이어갔다. 그 결과 미국은 20년 후인 1941년, 6척의 항모를 앞세운 일본연합함대의 기습 공격을 받고 전함 8척, 순양함 3척, 구축함 3척 등 주력 수상함대가 초토화되는 굴욕을 겪었다.

거함거포주의(巨艦巨砲主意)
최대한 크고 강력한 주포와 두꺼운 장갑을 갖춘 전함을 해군의 주력으로 삼아 포격전으로 함대 결전에서 승리한다는 군함 건조 사상. 그 시작인 영국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305mm 2연장 포탑 5개를 갖춘 2만1,000톤급이었으나, 마지막인 일본 야마토급은 460mm 3연장 포탑 3개를 7만2,800톤으로 확대. 태평양 전쟁을 통해 전함이 항공모함에 밀려나면서 종식됐다.

트럼프급 전함 놓고 벌어진 '거함거포주의' 논쟁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지금 미국은 105년 전과 같은 이슈로 갑론을박 중이다. 한 세기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대구경 주포가 미사일로, 항공기는 드론으로 바뀌었다는 점 정도다. 지난 6월 4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하고 나선 이른바 ‘트럼프급 전함’ 건조 사업 예산안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민주당 애덤 스미스 의원은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트럼프 행정부가 요청한 트럼프급 전함 건조 사업 착수 예산 10억 달러를 전액 삭감하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그는 “트럼프급 전함 초도함 건조에 약 2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면서 “행정부에서 제시한 사업 예산이 얼마든지 간에 그들이 제시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그 돈을 차라리 자율 항행이 가능한 무인 함정 개발에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세스 몰턴 의원도 “트럼프급 전함은 세계 역사상 가장 비싸고 손쉬운 표적함”이라고 비난했고, 유진 빈드먼 의원 역시 “만약 배 이름을 오바마급으로 지었다면 공화당도 그 사업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함 반대론을 외쳤다.

거함거포주의의 정점에서 등장한 일본 전함 야마토. 위키피디아

이에 하원 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공화당 마이크 로저스 의원이 반론에 나섰다. 그는 “대형 수상전투함의 필요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제기돼 왔다”면서 “현재 미 해군에는 극초음속 무기나 고에너지 레이저 무기와 같은 미래전 대비 전투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동력을 갖춘 함정이 부족하다”고 맞받아쳤다. 하원 군사위원회 표결 결과는 26대 30. 민주당 하원의원 1명이 공화당 편을 들면서 스미스 의원의 법안은 결국 부결 처리됐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의 주장 중 누구 말이 맞을까?

정치적 판단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하게 군사적 차원에서만 생각해 보면, 민주당과 공화당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우선 민주당의 ‘전함 반대론’을 들여다보자. 트럼프급 전함은 ‘원자력 추진 유도탄 전함’으로 분류된다. 이 전함은 길이 270m, 폭 35m, 배수량 3만5,000톤으로 예정돼 있는데, 1990년대 이후 미 해군에 도입된 거의 모든 전투함이 그랬던 것처럼 기획안보다 실물의 덩치가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급 전함의 길이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높이(249.6m)보다 길다.

길이 155m, 폭 20m에 만재 배수량 9,900톤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최근 개장 공사를 마치고 재취역을 준비하고 있는 러시아의 자랑 '어드미럴 나히모프(길이 252m·폭 28.5m·배수량 2만8,000톤)' 원자력 추진 순양함보다도 크다.


거대한 전함은 최고의 공격·방어력 갖춰...그러나 침몰하면 전력 손실치명적

이 거대한 전함에는 차세대 이지스 레이더인 SPY-6(V)1이 들어간다. SM-2·SM-3·SM-6와 ESSM 등 모든 유형의 함대공 미사일과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차세대 핵미사일인 SLCM-N 등을 탑재하는 Mk.41 수직발사기가 128셀이나 들어가고, 육군의 ’다크이글‘ 극초음속 미사일의 해상형인 IR-CPS도 12발 싣는다. 어지간한 구축함에 1문 겨우 싣는 127㎜ 함포가 부무장으로 2문 들어가고,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가진 32MJ급 레일건도 싣는다.

레일건 발사 실험 장면. 레일건은 전자기력으로 포탄을 날려 속도와 비거리가 기존 재래식 화포를 압도한다. 미국 해군 제공

근접 방어용 무장으로는 RAM 단거리 함대공 미사일 21연장 발사기 2기, 600kW급 레이저 요격 무기 2기, ’ODIN’ 레이저 교란 시스템 4기, Mk.38 30㎜ 기관포탑 4기가 들어간다. 이 정도면 공격력과 방어력 모두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대형화와 중무장화는 100년 전 열강에서 유행한 거함거포 사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문제는 미군 스스로 이러한 거함거포 사상이 현대전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문율인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처럼, 하나의 플랫폼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행동이다. 1990년대 미 해군의 차세대 수상 전투함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아스널십’, 우리 해군의 ‘합동화력함’ 등이 취소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스널십(Arsnel ship)
레이더와 자체 방어 무기를 최소화하고, 덩치를 키워 미사일 수직발사기를 최대한 많이 싣는 군함. 1990년대 미 해군에 의해 3만톤급 선체에 500발의 미사일을 싣는 개념으로 고안됐으나, 적의 잠수함 공격에 취약하고, 피격·침몰할 경우 전력 손실이 과도하게 크다는 지적에 따라 백지화됐다.

미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의 일전에 대비해 군사전략과 교리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특정 기지나 플랫폼에 전력을 집중해 놓으면 유사시 적의 일격에 핵심 전투력 대부분을 잃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해 전력을 분산 배치하는 ‘치명성 분산 전략’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해외 미군 기지들을 쪼개 전력을 소규모 기지나 임시 거점으로 분산시켰다. 트럼프급 전함은 이러한 치명성 분산 전략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개념의 무기다. 1척당 가격이 2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배 1척을 잃는 것은 1척에 25억 달러 수준인 알레이버크급 8척을 잃는 것과 같다. 당연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강력한 차세대 무기 사용 가능한 것은 거대한 전함 뿐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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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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