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한 동서 한두 집만 태극기… 현충일 조기 게양이 사라졌다

장윤 기자 2026. 6. 8.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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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봉 꽂이 설치 의무 완화 영향
“요즘 누가” 태극기 없는 집도 많아

제71회 현충일이었던 6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160가구 중 태극기를 게양한 집은 한 곳도 없었다. 현충일엔 순국 선열을 기리는 의미에서 태극기를 깃봉에서 깃면의 너비만큼 내려 다는 조기(弔旗)로 게양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상당수 아파트에선 태극기를 단 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서초구 아파트 주민 A씨는 “요즘 공휴일에 누가 태극기를 다느냐”며 “우리 집에 태극기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6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23층짜리 아파트. 86가구 중 한 집에만 태극기가 걸려 있다. /김은경 기자

현충일이면 주택가 곳곳에 휘날리던 태극기가 자취를 감췄다. 현행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르면 3·1절과 광복절 같은 국경일과 현충일, 국군의날 등 국가 기념일은 공식적으로 ‘태극기를 게양해야 하는 날’이다. 다만 공공기관이나 학교, 군부대 등과 달리 일반 가정은 태극기를 내거는 게 사실상 ‘권고 사항’이다. 이렇다 보니 아파트 등 가정에서 태극기를 거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주택가에서 태극기가 사라진 것은 현충일과 같은 국가 기념일을 ‘쉬는 날’로 보는 인식이 퍼진 영향이 가장 크다. 최근엔 신축 아파트의 국기봉 꽂이 설치 의무가 완화되면서 태극기를 걸 자리가 줄어든 탓도 있다. 과거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세대별로 난간이나 창틀에 국기봉 꽂이를 1개 이상 설치해야 했다. 그러나 2021년 국기봉 꽂이를 설치하기 어려운 경우 건물 각 동 출입구에 게양대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예컨대 2024년 준공된 서울 마포구의 한 주상복합 건물엔 세대별 국기봉 꽂이가 아예 없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신축 건물에선 게양대 설치를 최소화하는 추세”라고 했다.

태극기가 아예 없는 집도 적잖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류모(55)씨는 “주변에 아무도 태극기를 달지 않다 보니 굳이 태극기를 집에 구비해 놓아야 하나 싶다”고 했다.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현충일의 뜻은 알지만 ‘조기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태극기를 특정 정치 세력의 상징처럼 여기면서 태극기 게양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생겼다. 강원도 평창에 사는 류모(59)씨는 “태극기만 언급해도 특정 정치 세력으로 몰리는 분위기라 현충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았다”고 했다. 6일 한 유명 맘카페에는 “아침에 아이와 함께 조기를 게양하며 현충일의 의미를 설명했는데, 오후에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들이 ‘태극기를 다는 집은 극우 성향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태극기 게양을 권장하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강원 춘천시는 작년부터 ‘범시민 태극기 달기 운동’을 추진하며 아파트 단지 153곳을 시범 아파트로 지정했다. 아파트 출입문에도 관련 안내문을 내걸었다. 그러나 6일 본지가 춘천의 한 시범 아파트 140가구를 확인한 결과, 태극기를 내건 집은 20가구(약 14%)에 그쳤다. 주민 박모(38)씨는 “우리 아파트가 시범 아파트인지 몰랐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를 두고 “전사 군인 등을 추모하는 날을 이렇게 무심하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태극기를 게양하는 문화는 빠르게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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