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선거 청구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훈 기자 2026. 6. 7. 19:5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상훈 AX콘텐츠랩장
선거 후 선관위 등 신뢰 위기 불거져
경제, 3高·부동산·증시 연착륙 과제
노봉법 연계 대기업 파업 확산 우려도
정책 운신 폭 좁아져 유연한 대응 필요
선거가 끝나자마자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코스피가 급락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끝났다. 대한민국 축소판이라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 만큼 여당은 뼈아픈 결과를 받았다. 그간 만신창이였던 보수 진영으로서는 오세훈과 한동훈이 승리함으로써 완벽하지는 못해도 계엄과의 단절을 향한 발판을 놓았다. 보수는 이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의석수가 이전보다 4석이나 줄어든 여당은 민심의 경고를 확인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 도착한 청구서는 하나둘이 아니다. 일단 제도 신뢰의 청구서.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행태에 대해 반드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아무리 유권자의 상당수가 사전투표를 했다고 해도 본투표 투표용지 인쇄를 전체 유권자의 50%로 간당간당하게 하한선을 설정한 이유가 고작 투표용지의 분실과 도난, 유출 우려 때문이라고? 납득하기 어렵다.

또 특정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집중적으로 터진 경위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무능의 문제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혹은 제도 설계의 허점인지 살펴야 한다. 대충 얼버무리면 국민적 의구심은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나사가 제대로 풀린 선관위의 존재 이유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는 점을 정치권은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된다.

이미 비상벨이 요란한 경제 청구서는 산더미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인 달러당 1560원 선을 위협하고 있고, 덩달아 코스피도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가격 불안과 전세 품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고, N% 성과급을 명분으로 한 대기업 파업의 확산 조짐도 심각하다.

문제는 이런 악재 상당수가 선거 과정에서 미뤄졌거나 외면됐던 정책적 과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당장 환율 문제만 해도 그렇다. 원화 약세의 원인을 모두 정부 정책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재정 확대 기조가 고환율 압력의 원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5월 국무회의에서 ‘긴축 재정론이 포퓰리즘’이라는 발언을 했다. 국가채무만 의식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지만 돈을 풀어서 생기는 부작용은 애써 눈감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환율은 수입물가 급등으로 이어져 소비자물가로 전이된다. 밥상 물가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가장 먼저 신음하는 것은 서민이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도 소비 위축에 직격탄이 불가피하다. 그런 만큼 통화와 재정이 동시에 팽창하는 국면에서 유동성이 자산 시장과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유동성이 확대돼도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면 체감 효과는 제한적이다.

부동산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정부는 세제 개편을 통해 집값을 잡겠다는 입장이지만, 공급 확대 없는 가격 안정은 한계가 있다. 특히 다주택자를 몰아낸 결과 임대 공급이 급감했다. 이는 전세 물량 감소와 월세 전환 가속화로 귀결돼 서민 주거비 부담을 키울 위험 요인이다.

더욱이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등의 정책 방향은 곧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집을 판 사람들은 세제 개편안을 주시할 것이고, 집을 보유한 사람들은 추가 세 부담 가능성을 따질 것이다. 정책적 운신의 폭은 좁아졌는데 시장 기대와 불안은 한층 커졌다.

과열된 증시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거리다. 반도체 슈퍼 호황에 코스피가 단기에 가파르게 올라 금리 인상 국면에서 개미의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자본시장의 역할 확대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증시가 조정 국면에 진입하면 시장 충격을 흡수할 정책 수단이 마땅찮다. 국민연금만 해도 국내 주식 비중이 한도까지 거의 찼다. 과거처럼 시장 완충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지만 노란봉투법 논란에서 보듯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추진해 온 정책에 되레 발목이 잡힌 상태다.

선거 전에는 정치가 현실을 덮었다면 선거 후에는 현실이 정치를 덮는다. 정부가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살펴 보다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시장과 국민은 이제부터 정부에 성적표를 매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평가는 정책의 의도가 아닌 결과로 내려질 수밖에 없다.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