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로 갈라진 ‘커피 한잔의 자유’

김도연 기자 2026. 6. 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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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전쟁’ 된 스타벅스 논란
1일 광주광역시의 한 스타벅스 매장이 텅 비어 있다./김영근 기자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달 18일 진행한 ‘탱크데이’ 마케팅으로 불거진 ‘역사 폄훼’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모기업인 신세계그룹은 논란이 불거지자 곧바로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경질하고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정부·여당과 현 여권 지지층을 중심으로 스타벅스 불매 운동에 나섰고,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스타벅스 팔아주기’로 맞불을 놓으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평범한 일상이 진영 대결의 소재로 비화하자 일부 시민은 “정치권이 갈등을 지나치게 부추기고 있다”며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광주에선 ‘스타벅스 불매’ 운동 거세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광주광역시에선 스타벅스 불매 운동 흐름이 거세다. 1일 오후 12시 30분쯤 광주시 서구 치평동의 한 스타벅스 매장 카운터에는 ‘스타벅스 회원 탈퇴 방법 안내문’이 게시돼 있었다. 매장 직원 A씨는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 이후 회원 탈퇴 방법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전국적으로 안내문을 걸었다”고 했다. 약 70평 정도인 이 매장은 평소 점심시간이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볐다. 하지만 이날 점심시간에 매장을 찾은 손님은 7명뿐이었다.

광주에서는 탱크데이 마케팅에 항의하는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들은 1일 이 지역 스타벅스 매장 7곳 앞에서 정용진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기우식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정 회장이 사퇴할 때까지 1인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는 이번 주 대규모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강기정 광주시장도 지난달 21일 시가 주관하는 모든 행사에서 스타벅스 상품권 사용을 전면 금지하라고 지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광주에선 스타벅스 매장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주변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다. 광주시청 소속 한 공무원은 “전에는 시청 앞 스타벅스 매장을 자주 이용했는데 시장 지시로 상품권 사용까지 금지된 마당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기가 눈치 보인다”고 했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은 빈자리가 거의 없이 붐비고 있다./지혜진 기자

◇서울에선 ‘스타벅스 팔아주기’ 맞불 시위

일부 서울 지역 스타벅스 매장도 불매 운동의 타깃이 됐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스타벅스 매장을 찾아 ‘커피 마시기’ 운동에 나섰다. 지난 28일 오후 5시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만난 월남전 참전 용사 이성우(80)씨는 “평소에는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오늘은 일부러 친구들과 함께 스타벅스를 찾았다”며 “기업이 광고 한번 잘못했다고 정부·여당이 나서 불매 운동을 벌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스타벅스코리아 본사 앞에는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는 구호가 흘러나오는 시위 차량이 등장했다. 차량을 몰고 온 유튜버 김도영씨는 스타벅스 카페라테를 마시며 자기를 ‘벅돌이(스타벅스와 죽돌이 합성어)’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한 기업을 대통령이 지명해서 공격하는 건 국가 폭력에 가깝다”며 “앞으로도 스타벅스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 것”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에 지점을 연 중국 밀크티 프랜차이즈 ‘차지(CHAGEE)’ 매장에도 스타벅스 마케팅 논란의 불똥이 튀었다. 현 여권 지지 성향 시민들이 “스타벅스를 퇴출하고 다른 글로벌 브랜드를 이용하자”며 차지 매장 방문을 인증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잇따라 올리고 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사람들은 ‘스타벅스에서 자유를 마시고 차지에서 독재를 마신다’ ‘노 차지(No CHAGEE), 노 차이나 푸드(No China Food)’ 같은 포스터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맞불을 놨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민중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스타벅스 불매 운동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뉴스1
지난달 19일 윤어게인 지지 단체인 애국대학이 SNS에 올린 ‘우리가 스타벅스다’ 가상 이미지./소셜미디어

◇일부 시민은 피로감 호소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스타벅스 매장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53)씨는 “기업의 부적절한 마케팅에 소비자가 불매 운동으로 대응하는 건 자유지만, 해당 물건을 소비하는 것도 자유 아니냐”며 “솔직히 스타벅스 논란이 이어지니 피로하다”고 했다.

스타벅스를 둘러싼 진영 싸움의 불똥은 스타벅스 근로자들에게도 튀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근무하는 한 바리스타는 “마케팅 논란 이후 매장 손님이 그전보다 30% 정도 줄었는데 우리 월급도 줄어들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은 시급제라서 근무 시간에 비례해 급여를 받는다. 그런 만큼 불매 운동이 계속돼 회사 측에서 근무 시간을 줄일 경우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정치권이 가세해 갈등으로 이어진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제2의 태평양전쟁” “우물에 독 타기” 같은 구호를 내세우며 대여 공세에 나섰다. 이로 인해 천일염 사재기 소동이 벌어지고 수산물 시장에 발길이 끊기면서 소상공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시민들의 일상을 도구화해 이념 양극화를 부추기면 시민의 삶이 파괴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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