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자루 속 여대생 시신…‘태양다방 살인사건’, 24년째 범인은 없다 [오늘의 그날]
용의자 양 씨…15년만에 ‘공소시효 폐지’로 잡혀
대법 무죄 선고 “한 치의 의혹도 있어선 안 된다”

2002년 5월 31일. 전국이 한일월드컵 열기로 들떠 있던 때, 부산에서 20대 여대생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건 발생 24년이 지났지만 범인은 여전히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유력 용의자는 한때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이 사건은 대표적인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시신은 검은 비닐과 마대로 여러 겹 싸여 있었고, 손과 발목·무릎은 청테이프로 결박된 상태였다. 흉부와 팔, 허벅지 등에는 흉기에 찔린 자국이 수십 군데 남아 있었다. 부검 결과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A씨는 같은 달 21일 밤 10시쯤 퇴근한 뒤 연락이 끊겼다. 가족들은 며칠 동안 직접 수소문했지만 행적을 찾지 못했고 사건 발생 9일 만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러나 신고 다음 날 시신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한 남성을 주목했다. 실종 다음 날인 22일 낮 붉은색 모자를 쓴 남성이 A씨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이 은행 폐쇄회로(CC)TV에 찍힌 것이다. 그는 ATM에서 비밀번호 입력에 두 차례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해 잔액을 확인했고, 창구에서 296만 원을 모두 찾아갔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범행도 이어졌다. 여성 두 명이 A씨 신분증을 이용해 적금 비밀번호를 변경한 뒤 500만 원을 인출한 것이다. 경찰은 이들 뒤에 같은 남성이 있다고 보고 추적에 나섰다.

부산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공개수배 전단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제보를 토대로 추적을 이어갔고 결국 2017년 유력 용의자인 양모 씨를 검거했다. 사건 발생 15년 만이었다.
경찰은 양씨를 사실상 범인으로 확신했다. 양씨는 사건 이후 성범죄와 강도 혐의로 복역한 전력이 있었고, 휴대전화에는 ‘살인 공소시효 폐지’ 등을 검색한 기록도 남아 있었다. 당시 사용하던 차량에서는 혈흔으로 추정되는 붉은 얼룩이 있었다는 증언도 확보됐다.
하지만 양씨는 살인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사상역 근처에서 우연히 A씨 가방을 주웠다”며 “수첩에 적힌 가족 전화번호와 주민번호를 조합해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이어 “처음 돈을 인출한 뒤 별일이 없자 여성들에게 적금까지 찾아오라고 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그의 설명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봤다. A씨 통장 비밀번호에는 숫자 ‘6’이 두 번 포함돼 있었지만 양씨가 조합했다고 주장한 정보에는 숫자 6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 다수는 양씨 유죄 의견을 냈고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당시 재판에서 결정적 근거로 거론된 건 양씨 동거녀 진술이었다. 그는 “양씨와 함께 물컹한 물체가 담긴 마대를 옮긴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이것이 피해자 시신 운반 정황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중대한 범죄일수록 합리적 의심이 남지 않을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특히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과 돈 인출 시점 사이가 불과 몇 시간 차이인데 범인이 직접 비밀번호를 알아냈다면 ATM에서 두 번이나 틀릴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범행이 의심스럽지만 직접 증거나 충분한 간접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2019년 대법원은 이를 최종 확정했다.
결국 유력 용의자는 법적으로 완전히 무죄가 됐다. 현행법상 새로운 증거가 나오더라도 다시 처벌하기는 어렵다.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졌고 부산경찰청 내부에서도 장기 미제 수사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당시 수사 관계자는 “이 정도 정황으로도 처벌이 어렵다면 오래된 미제사건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범죄자들에게 잘못된 학습효과를 남긴 판결”이라고 했다.

임혜린 AX콘텐츠랩 기자 hihilin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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