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고가 붕괴 사고는 100% 인재”… 전문가, ‘철거작업 매뉴얼’ 마련 촉구

채민석 기자 2026. 5. 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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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영·안형준·최명기 교수 인터뷰
관리감독소홀·안전불감증 복합요인
사고 전 전조증상에도 무리한 인력투입
울산화력발전소 등 붕괴 사고 연상돼
안전진단 인력 위한 별도 매뉴얼 촉구
26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도로 철거 현장에서 상판 일부가 무너져 소방관계자들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권욱 기자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발생 12시간 전부터 슬래브 단차가 2.9㎝ 침하되는 등 붕괴 ‘전조 증상’이 있었지만 관계 당국은 구조물 보강이나 전면 통제 등 조치 없이 안전진단을 위해 인력을 현장에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제대로 된 안전조치 없이 붕괴 위험이 있는 구조물 내부로 인력을 무리하게 진입시키는 등 안전불감증으로 생긴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부터 울산화력발전소 구조물이 주저앉거나 세종포천고속도로 교량이 무너지는 등 붕괴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현장 근로자 보호를 위해 붕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27일 서울경제신문이 송창영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과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 등 전문가 3인에게 문의한 결과 이들은 모두 이번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는 관리 감독 소홀과 안전불감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재가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송 교수는 “해체 및 철거 현장은 시공업자와 해체 계획서를 작성하는 업자,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감리 등 세 영역 중 단 한 곳이라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고가 발생한다”며 “사고 전 발생한 2.9㎝의 변이는 언제 붕괴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인데 이를 발견한 뒤에도 초기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인재이자 안전불감증”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안전진단에 착수한 시점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철거는 벌목 과정처럼 취약화된 부분 안에서 어느 방향으로 구조물이 무너질 지 예상한 대로 이뤄져야 안전한데, 이유 없이 침하가 생겼다는 것은 붕괴 방향을 예단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침하 발견 즉시 안전조치를 한 뒤 진단을 실시했어야 하는데,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에서 12시간이 지나서야 사람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철거에 사용된 절단 공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작업 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교량 상부를 지지하는 ‘PC거더’가 28m 길이인데, 이를 그대로 들어서 밑으로 내리는 작업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상당히 노후화 된 구조물이기 때문에 10m 단위로 절단해서 내리는 방법을 적용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26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도로 철거 현장에서 상판 일부가 무너져 소방관계자들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권욱 기자

◇ 포천고속도로·울산화력발전소 붕괴사고 연상

전문가들은 이번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사고를 보며 앞서 발생한 두 개의 사고가 연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발생한 세종포천고속도로 교량 붕괴사고와 울산화력발전소 구조물 붕괴사고다. 철근 콘크리트 등 외력이 증가했을 때 점진적으로 변형되지 않고 균열이 급격하게 전개돼 파괴되는 ‘취성체’의 특성이 영향을 미친 사고기 때문이다. 계획한 것보다 조금이라도 균열이 크게 일어났을 때 전체 구조물이 한 번에 붕괴되는 사고가 두 차례 있었지만 이를 통한 학습효과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이 꼽은 문제점이다.

실제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사고의 경우 구조물의 강도가 설계 기준보다 낮은 상태에서 취약화 작업이 이뤄진데다, 강도에 비해 과도한 절단량으로 붕괴가 이뤄졌다는 국립과학수사원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세종포천고속도로 사고 또한 한 쪽으로 쉽게 기울어질 수 있는 거더를 막기 위한 전도방지 시설인 스크류잭과 전도방지 와이어 등이 제거돼 있었으며, 감리 과정에서도 이를 발견하지 못해 발생한 인재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사고 역시 균열이 과도할 때 붕괴될 수 있는 취성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데다 관리·감독도 부실해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일전에 발생한 두 사고와 유사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6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도로 철거 현장에서 상판 일부가 무너져 소방관계자들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권욱 기자

◇ 가장 시급한 해결책은 ‘철거 매뉴얼 마련’

이번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공사 과정이 아닌 위험 여부를 판단하는 안전진단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안전진단을 하다 구조물이 붕괴돼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진단을 포함해 철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위험에 대비한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이 유사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송 교수는 “ 해체는 철저하게 불확실성과의 싸움인데 예상하지 못한 안전사고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보강 계획이 있어야 하고, 붕괴가 됐을 때에는 2차 붕괴가 생기지 않도록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 교수 또한 붕괴 전후 상황을 모두 상정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고 발생 전의 경우 단차가 주저 앉았을 때 즉시 안전진단에 착수하도록 하는 내용이, 사고 후에는 인근 교통이나 보행 등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 방법이 포함된 매뉴얼이 마련돼야 사고 방지는 물론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빠른 복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진단 인력을 위한 별도의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 교수는 “건설 작업자에 대한 안전 매뉴얼 등은 마련이 돼있지만 진단요원의 안전을 위한 매뉴얼이나 교육은 거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며 “때문에 현재까지 안전점검은 구조물에 사람이 바로 들어가 구조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보강 방법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드론이나 로봇을 먼저 투입하거나 계측기를 설치해 외부에서 먼저 안전을 진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새롭게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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