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는 엔화 매수하라더니” 최약체로 추락…“리라화보다 떨어져”

일본 엔화가 ‘세계 최약체 통화’라는 평가까지 나오며 외환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때 만성적인 초약세 통화로 여겨지는 튀르키예 리라화보다도 실질 구매력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26일 로빈 브룩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의 분석이 외환시장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룩스 연구원은 지난 24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일본 엔화는 이제 튀르키예 리라화를 넘어선 세계 최약체 통화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결과”라며 “일본의 막대한 공공부채 때문에 통화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이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브룩스 연구원이 근거로 제시한 지표는 실질실효환율(REER)이다. 단순히 달러 대비 환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요 교역국과의 무역 비중, 물가 수준 등을 함께 반영해 통화의 실제 구매력과 국제 경쟁력을 계산하는 지표다.
쉽게 말해 “그 나라 돈으로 실제 얼마나 살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수치다. 단순 환율보다 국가 통화의 체력을 더 잘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닛케이는 최근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이 계속 하락하는 반면 튀르키예 리라화는 오히려 반등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리라화를 대표적인 ‘초약세 통화’로 인식해왔기 때문에 엔화가 그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충격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 튀르키예 리라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세계 최약체 통화로 꼽혔다. 특히 2021년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고물가 상황에서도 금리 인하를 강행하면서 리라화 가치가 1년 만에 40% 넘게 폭락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일본의 구조적 저성장과 막대한 국가부채, 장기 완화정책이 겹치면서 “엔화의 안전자산 지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런 평가의 배경에는 일본 특유의 초저금리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은행(BOJ)은 금리를 빠르게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정부 부채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면 국채 이자 부담이 급증해 재정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본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유가가 오르면 수입 부담이 커지고 무역수지가 악화되면서 엔화 가치가 떨어지기 쉽다.
닛케이는 중동 정세 불안과 에너지 가격 상승, 추가경정예산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을 고려하면 엔화 강세로 흐름이 반전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SMBC닛코증권도 최근 흑자로 돌아선 일본 무역수지가 다시 연간 5조엔(약 47조원) 규모 적자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엔화 가치 급락이 이어지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최근 대규모 환율 방어에도 나섰다. AFP통신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일본 당국은 지난 4월 말 이후 약 10조엔(약 93조원)을 투입해 엔화를 매수하고 달러를 파는 시장 개입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달러당 엔화 환율은 160엔 부근까지 치솟으며 약 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일본 정부가 골든위크 연휴 기간 거래량이 적은 틈을 활용해 연속 개입에 나섰다는 관측이 확산됐다.
시장에서는 일본 당국의 사실상 ‘방어선’이 기존 달러당 160엔 수준에서 157엔 부근으로 내려왔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외환시장에서는 단기 개입만으로 엔화 약세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여전히 크고 일본 경제 구조 자체가 저금리·저성장 체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김여진 AX콘텐츠랩 기자 aftershoc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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