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수출에도 고환율... "건강한 원화 약세"

대한민국 수출에 전례 없는 훈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무역 흑자와 수출 호조 속에서도 원화 약세는 해소되지 않는 이례적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신영증권 김효진 박사는 현재의 고환율은 과거 경제 위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기업들의 현지 재투자 및 달러 보유 성향에서 비롯된 ‘건강한 원화 약세’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수출 폭발적 성장
최근 무역 당국이 집계한 수출 데이터에 따르면 이달 20일까지의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5%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핵심 동력인 반도체 수출은 무려 200%라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기록하며 시장의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조업일수를 감안한 1평균 수출액 또한 52%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해 수준을 가볍게 넘어섰다.
이 같은 데이터는 과거 2010년대 국내 증시가 고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 횡보했던 이른바 '박스피' 시절과 명확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에는 연평균 수출 증가율이 0%대에 머물며 기업의 이익이 주가를 견인하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됐다. 반면 현재의 상승세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국면이다. 글로벌 AI(인공지능) 열풍과 장기 계약 기반의 '슈퍼 을' 지위 확보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체력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반도체 독주 체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기타 품목의 수출 역시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며 전방위적인 동반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식품,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의 다변화와 더불어 전통 제조 분야가 함께 선전하면서 대한민국은 올해 글로벌 수출 순위에서 네덜란드 등을 제치고 세계 4~5위권까지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무역 흑자에도 고환율 유지되는 이유
일반적으로 무역 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나 원화 가치가 강세(환율 하락)를 띄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현재 달러/원 환율은 여전히 높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의 핵심 원인은 '환전 수요의 부재'에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역설적이게도 수출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테크 기업들의 해외 투자 구조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장비 한 대당 수천억 원에 달하는 첨단 장비를 해외에서 직수입해야 하며, 미국 등 현지 공장 건설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즉, 수출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이더라도 이를 국내로 반입해 원화로 환전할 필요성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기업들이 현지 운영 및 설비 투자를 위해 달러를 그대로 보유하거나 현지에서 바로 소진하면서 외환시장에 원화 매수 압력이 걸리지 않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서학개미' 열풍과 퇴직연금 등을 통한 글로벌 ETF 자산 매수세 역시 꾸준한 달러 수요를 유발하며 원화 가치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 아울러 수입 측면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불안 등으로 인해 한동안 정체됐던 원유 수입 물량이 유가 상승기(배럴당 90~100달러선)와 맞물려 향후 거대한 대금 지급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고환율을 지지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현재의 고환율은 한국 경제의 위기나 기초체력 저하 때문이 아니라, 기업들의 글로벌 확장과 자원 확보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자 '건강한 원화 약세'로 규정할 수 있다.
하반기, 미국 연준과 일본은행(BOJ)을 주시하라
향후 대한민국 금융 시장과 환율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단기적 변수는 외부에 있다. 우선 미국 연준(Fed)의 통화정책 변화다. 새로운 연준 의장의 데뷔전이 될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위원들의 발언이 금지되는 '블랙아웃' 기간이 시작된다. 시장은 이번 주 발표될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지표를 통해 연준의 매파적 혹은 비둘기파적 성향을 저울질하며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더욱 치명적인 화약고는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전환 움직임이다. 현재 일본은 달러당 엔화 가치가 160엔선까지 폭락하며 심각한 엔화 약세와 수입 물가 상승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과 달리 수출 증가율이 단자리에 그치며 고전 중인 일본은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대규모 미국 국채 매각에 나서거나 예상을 뛰어넘는 조기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
일본의 금리가 본격적으로 상승할 경우, 과거 전 세계 금융 시장에 퍼져 있던 저리의 엔화 자금, 즉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고개를 들게 된다. 대규모 자금 회수가 이루어지면 미 국채 금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급등할 수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글로벌 증시의 숨고르기와 국내 외환시장의 자본 유출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역대급 수출 풍요 속에서도 미국의 물가 지표와 일본의 엔화 방어 정책이라는 글로벌 고리를 끊임없이 추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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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는 삼프로TV 인터뷰 방송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더욱 정확한 풍성한 내용은 방송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