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버틴 서울의 동맥' 서소문 고가차도, 산업화 상징에서 비극의 현장으로

이승연 기자 2026. 5. 27. 09:1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66년 개통 후 하루 4만6000대가 오가던 서울 도심 고가도로
D등급 판정 끝 철거 작업 중 붕괴…작업자 3명 숨진 마지막 장면
[출처= 연합뉴스]

서울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서소문 고가차도는 오랫동안 서울의 '동맥'으로 불렸다. 산업화 시대 교통난을 풀기 위해 철길 위에 놓였고, 수십 년 동안 서울 서북권과 도심을 연결했다. 그러나 59년을 버틴 다리의 마지막은 참혹했다. 철거 작업이 진행되던 중 구조물이 무너졌고, 현장에 있던 작업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26일 서울시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32분께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공사 현장에서 상판 일부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현장 소장과 감리단장 등 작업자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사고 직후 소방 인력 62명과 차량 16대, 구급차 5대가 현장에 투입됐고, 인근을 지나는 경의중앙선 서울역~신촌역 구간 열차 운행도 즉시 중단됐다.

◆근대화의 속도 위에 놓인 다리

서소문 고가차도는 서울 고가도로 역사에서 상징성이 큰 구조물이다. 1966년 6월25일 개통한 이 고가차도는 길이 335m, 폭 14.9m, 왕복 4차로 규모로 조성됐다. 충정로역과 시청역 사이를 잇는 18개 교각 위에 놓였고, 서울역 인근 철길로 끊기던 도심 교통 흐름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서울은 급격한 도시화와 차량 증가로 교통 병목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서소문 고가차도가 필요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서울역을 오가는 열차가 서소문로 건널목을 지날 때마다 차량 흐름은 멈췄고, 차단봉이 내려오는 시간마다 도심 교통은 반복적으로 끊겼다. 1965년 양화대교 개통 이후 김포공항과 서울 도심을 연결하는 축이 중요해지면서 서소문 일대 병목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결국 도로가 철길을 넘는 방식의 고가차도가 해법으로 선택됐다.

개통 이후 서소문 고가차도는 수십 년간 서울 도심 교통의 핵심 축 역할을 했다. 서울 서북권에서 시청과 남산, 강남 방향으로 향하는 차량들이 이 다리를 통해 이동했다. 하루 평균 4만대 이상 차량이 오갔고, 전성기에는 통행량이 4만6000대 수준까지 늘었다. 산업화와 도심 확장, 자동차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서소문 고가차도는 서울의 속도를 떠받친 기반시설이었다.

고가차도 아래와 주변도 서울의 역사성이 짙은 공간이었다. 인근에는 조선 후기 천주교 순교자들이 처형된 서소문 성지가 있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약현성당도 자리하고 있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일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서소문 고가차도는 근대화의 상징인 도로 구조물로서, 종교와 도시 역사가 겹친 공간 옆을 묵묵히 지켜왔다.

◆알루미늄 외장 뒤 가려진 노후화

문제는 노후화였다. 2008년 서울시는 서소문 고가차도에 대한 경관 개선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구조 보강보다는 외관 정비에 가까웠다. 낡은 콘크리트 외벽 위에 알루미늄 외장재를 덧씌우는 방식이었다. 겉모습은 정돈됐지만, 구조물 내부의 균열과 손상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외장재가 오히려 안전진단의 시야를 가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2019년 3월 사고가 발생했다. 교각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서울시는 뒤늦게 알루미늄 패널을 걷어내고 정밀 안전진단에 들어갔다. 결과는 심각했다. 기존 B등급이던 안전등급은 최하위 수준인 D등급으로 떨어졌다. 사용 제한과 보강이 필요한 상태였다. 수십 년간 도심 교통을 떠받쳐온 다리가 사실상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였다.

이후에도 사고는 반복됐다. 2021년에는 바닥판 일부가 붕괴됐고, 2024년 11월에도 콘크리트 박락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시는 안전망을 설치하고 철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임시 조치를 이어갔지만, 노후화된 구조물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리는 계속 버텼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도심 교통을 안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서울시는 결국 2025년 7월 서소문 고가차도 전면 철거를 공식 발표했다. 같은 자리에 새 고가차도를 짓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21세기 들어 도심 고가차도는 도시 미관과 보행 환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되는 사례가 많았지만, 서소문 고가차도는 철거 후 재건설이 결정된 드문 경우였다. 그만큼 이 구간의 교통 기능을 대체할 현실적 수단이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소문 고가차도는 2025년 9월21일 59년 만에 전면 통행이 중단됐다. 철거와 신설 공사는 중견 건설업체 흥화가 맡았고, 총 사업비는 119억원 규모였다. 철거 완료 목표는 2026년 5월, 새 고가차도 준공 목표는 2028년 2월로 잡혔다. 도심 교통을 위해 태어난 다리는 그렇게 마지막 해체 절차에 들어갔다.

◆철거 중 참사…59년 역사의 비극적 퇴장

그러나 마지막 과정에서 참사가 벌어졌다. 철거 작업이 진행되던 2026년 5월26일 오후, 상판 일부가 무너지며 현장 작업자들을 덮쳤다. 사고 현장에는 구조물 잔해가 쏟아졌고, 소방당국은 즉시 구조 작업에 나섰다. 철거 중이던 노후 고가차도는 끝내 사람을 지키지 못한 채, 오히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적 장면을 남겼다.

서울시는 사고 직후 공사를 중단하고 정확한 붕괴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도 시공·감리 과정의 안전 관리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을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노후 기반시설 철거 과정에서 안전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구조물 상태와 해체 순서에 대한 검토가 충분했는지가 향후 조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철거 작업을 맡았던 ㈜흥화는 1940년대 흥화공업㈜로 출발한 중견 종합건설사다. 대동강교·압록강교·임진강교·한강철교 등 교량 공사를 기반으로 성장했고, 이후 동작대교와 서울지하철, 올림픽주경기장 등 굵직한 토목·건축 사업을 수행해왔다. 도로·교량 분야 경험이 적지 않은 회사인 만큼, 이번 사고는 해체 공정의 안전관리와 현장 통제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1966년 산업화 시대 서울의 속도를 위해 태어난 서소문 고가차도는 2025년 통행을 멈췄고, 2026년 철거 중 붕괴 사고로 마지막을 맞았다. 철길 위 교통 정체를 풀기 위해 놓였던 다리는 59년 동안 서울 도심의 흐름을 떠받쳤지만, 끝내 노후화와 안전 문제를 안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Copyright © EBN

EBN산업경제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