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유전병’과 지방이영양증 동시 발병…美 65세女, 첫 사례?

말초 신경이 위축되는 희귀 유전병 샤르코-마리-투스병(CMT)과 신체 부위별로 지방이 불균형하게 분포하는 '가족성 부분지방이영양증 2형(FPLD2)'이 한 환자에게 동시에 나타난 사례가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됐다. 전혀 다른 두 가지 희귀병이 한 사람에게 나타난 원인은 단 하나의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노스스테이트대 의대 연구팀은 최근 이 두 가지 희귀병을 함께 앓는 65세 미국인 여성 환자의 독특한 사례를 소개하고, 두 가지 이상의 기관 유전병에 대한 통합 진단과 심장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환자는 2017년부터 양쪽 발에 타는 듯한 통증과 무감각증을 겪기 시작했다. 증상은 날로 악화됐다. 손의 민첩성이 떨어졌고, 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걷는 스텝보행 증상이 심해졌다.
신체 검사 결과 환자는 손과 발의 말초 근육 위축, 건반사 소실, 감각 장애와 함께 발바닥 아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요족 변형, 발톱 및 망치발가락 등의 전형적인 CMT 변형 증상을 보였다. 환자의 팔다리 피하 지방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얼굴과 목, 복부 중심부에는 지방이 지나치게 많이 쌓이는 FPLD2의 특이한 외형적 변화도 나타났다. 이 환자는 가문 내 유전성도 뚜렷했다. 손녀가 어린 시절 CMT 진단을 받았고 아들은 요족 변형을 앓고 있었다.
연구팀은 정밀 유전자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이 환자에게서 핵막 구조를 유지하고 세포 내 신호 전달을 조절하는 단백질의 암호화와 관련된 유전자(LMNA)의 이형접합성 병원성 변이가 나타났다. 이 유전자 결함이 환자 증상의 근본 원인이었다. 특정 유전자(LMNA) 결함이 말초 신경 축삭을 퇴행시켜 CMT 아형의 신경병증을 일으키고, 팔다리 피하 지방의 소실과 지질 침착으로 FPLD2까지 일으킨 것으로 분석됐다. LMNA 유전자 결함은 세포핵의 구조를 유지하는 '라민 A/C(Lamin A/C)' 단백질 생산에 문제를 일으켜 조로증, 근이영양증, 확장성 심근병증 등 유전병을 유발한다.
환자의 추적 감시 검사(2025년 9월)에서는 공복 혈당 장애와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게 나타났고, 근육이나 심장에 손상이 생겼을 때 혈액으로 방출되는 효소(크레아틴 키나아제)의 수치는 다소 높았다. 콩팥 기능을 알 수 있는 추정 사구체 여과율은 약간 낮았다.
연구팀은 다학제 통합 치료를 진행했다. 신경병성 통증 완화를 위해 가바펜틴을 투여했고, 대사질환 관리를 위해 메트포르민과 아토르바스타틴을 처방했다. 혈압 조절과 심부전 예방을 위해 암로디핀, 히드랄라진, 리시노프릴, 카르베딜롤, 스피로노락톤 등 맞춤형 약물 요법을 병행했다.
환자는 발목 위 삽입형 깔창이 포함된 맞춤형 정형외과용 신발을 착용하고 지구력 강화를 위해 가정 물리치료를 받았다.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일상생활 활동에서 자립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됐다.
이 사례 연구 결과(A Rare Instance of Concordant Charcot-Marie-Tooth Disease and Familial Partial Lipodystrophy Type 2)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이 사례는 지방, 신경, 대사, 심장 증상을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다학제 통합 치료를 해야 환자의 돌연사 위험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또한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의학적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 유전성 신경병은 뇌와 척수의 명령을 근육으로 전달하는 말초신경의 조직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겨 일어나는 병이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1886년 장 마르탱 샤르코, 피에르 마리, 하워드 헨리 투스 등 세 명의 의사에 의해 처음으로 규명됐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전 세계적으로 약 25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병이다. 대부분 상염색체 우성 방식으로 유전된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은 50%다. 가계 내에서 대를 이어 발병하는 특성을 보이는 까닭이다.
이 유전병은 국내에서는 범삼성가의 가족력이 있는 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이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직접 이 병을 앓았다고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부인인 고 박두을 여사의 가계를 통해 유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여사는 가벼운 증상만 보인 채 93세까지 장수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은 손발 변형과 목 근육 약화를 겪으며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수차례 폐렴과 폐수종을 앓았고, 박 여사의 장녀인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노년에 휠체어에 의존했다.
특히 박 여사의 장남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본인의 투병 사실을 대외적으로 상세히 밝혔다. 이재현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다리를 저는 보행 장애와 손발 변형을 겪었고 만성 신부전증과 고혈압, 고지혈증이 겹치며 큰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콩팥 이식과 철저한 재활로 현장 경영을 재개했다. 공식적인 투병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고 이건희 회장의 자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후손들도 위험군으로 간주될 수 있다.
서울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공동 연구팀은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아류인 2Z(CMT2Z)의 발병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줄기세포 기술과 동물 모델을 통해 유전자 변이가 세포 내 단백질 합성을 감소시키고 활성산소를 과도하게 생성해 말초 신경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또 신경 특이적 바이러스를 전달체로 활용해 정상적인 유전자 기능을 회복시키는 환자 맞춤형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했다. 해당 치료제를 단 1회 주사 투여하는 것만으로도 신경과 근육 기능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동물모델·세포 수준의 전임상 연구 단계이지만, 난치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 중CMT2Z(MORC2 유전자 변이형)의 치료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자주 묻는 질문]
Q1. 샤르코-마리-투스병(CMT)은 어떤 증상으로 가장 먼저 나타나나요?
A1. 초기에는 발목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걸을 때 자주 넘어지거나 문턱에 걸리는 증상으로 시작됩니다. 점차 다리 근육이 위축되면서 발바닥 아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요족 변형이 생기고, 신발이 발에 잘 맞지 않거나 발가락이 구부러지는 망치발가락 변형이 관찰됩니다. 증상이 진행되면 손의 근육도 말라붙어 단추를 채우거나 열쇠를 돌리는 등 정밀한 손동작이 어려워집니다.
Q2. 삼성가에서 앓는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일반적인 유형과 달리 독특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맞나요?
A2.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원인 유전자에 따라 수십 가지 아형으로 나뉩니다. 범삼성가 후손들에게 나타나는 유형은 전체 환자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CMT2Z(MORC2 유전자 변이형)로 분류됩니다. 이 유형은 신경 섬유 자체가 손상되는 축삭성 질환으로 통증이 심하고 진행이 비교적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한국 연구진이 이 CMT2Z 유형의 발병 메커니즘을 밝히고, 동물모델에서 효과를 입증한 세계 최초의 유전자 치료법 후보를 제시해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Q3. 부모 중 한 명이 샤르코-마리-투스병 환자라면 자녀에게 무조건 유전되나요?
A3. 무조건 유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대부분 상염색체 우성 방식으로 유전되기 때문에, 부모 중 한 사람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때 자녀에게 유전자가 전달될 확률은 성별과 관계없이 정확히 50%입니다. 또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더라도 개인의 체질이나 환경에 따라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나 심각한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영섭 기자 (edwdkim@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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