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을 가진 좀비가 온다, 《군체》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2026. 5. 2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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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 신작…AI 시대의 불안에서 태어난 진화형 좀비
수직 빌딩에 갇힌 인간들…《부산행》 이후 다시 열린 생존 게임

(시사저널=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지난 10년간 충무로에는 무수히 많은 좀비가 출몰했다. 사극, 코미디, 학원물 등과 끊임없이 융합하면서다. 마이너한 장르로 여겨졌던 좀비물이 대중과 친해질 수 있도록 포문을 활짝 열어준 이가 바로 연상호다. 2016년 개봉한 연상호의 《부산행》은 한국에선 좀비물이 안 먹힌다는 정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1000만 관객을 스크린에 태워버리며 좀비 붐을 일으켰다. 변방에 머물러 있던 좀비들이 그렇게 충무로의 대세가 됐다. 현대 좀비물의 아버지가 조지 로메로라면 과장 조금 보태서 한국 좀비물의 삼촌은 연상호라 할 만하다.

영화 《군체》 포스터 ⓒ㈜쇼박스

좀비에게 집단지성을?

《부산행》 이후 《반도》(2020)를 통해서도 좀비물과 접속했던 연상호 감독이 또 좀비 영화를 들고나왔다. 10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앞서 말했듯 《부산행》 흥행 이후 좀비물이 과잉 생산되면서 이젠 역설적으로 식상한 장르가 돼버렸기 때문. 과거엔 비인기 장르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다면, 이젠 기시감과 싸워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과연 연상호는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좀비가 있음을 보여줄까.

서울 도심의 초고층빌딩에 생물학적 테러로 인한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다. 범인은 천재 생물학자 서영철(구교환). 자신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백신임을 자처하는 서영철은 바이러스로 인간들을 감염시키고, 그들을 '군체'로 묶는다. 이것은 인류의 파멸이 아니라, 신인류의 탄생이라 주장하면서. 정부는 즉각적으로 빌딩을 폐쇄하고, 빌딩 안 사람들은 꼼짝없이 고립된다.

정부가 구조 방안을 찾는 동안 서영철에 맞서는 주인공은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이다.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세정은 전남편 한규성(고수)의 제안으로 생명공학 회사 대표를 만나기 위해 콘퍼런스에 왔다가 빌딩에 갇힌다. 보안팀 직원 최현석(지창욱), 장애가 있는 그의 누나(김신록) 등과 폐쇄된 빌딩을 탈출하던 중 세정은 좀비들이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어떻게? '집단지성'을 통해서다.

집단지성. 다수 개체들의 협력 또는 협업을 통해 얻게 된 집단적 능력. 1910년 미국 곤충학자인 윌리엄 모턴 휠러가 개미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휠러는 개미가 하나의 개체로는 지능이 낮지만, 무리를 이루면 개미집을 만들어내는 등 높은 지능 체계를 나타내는 것을 관찰했다. 실제로 집을 짓는 노동자 개미, 개미집을 설계하는 개미, 먹이를 사냥하는 일개미 등 개미들은 '군체의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 개미들의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건,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이다.

갑자기 웬 개미 이야기일까. 연상호 감독이 좀비를 이 개미에 비유해 풀어내기 때문이다. 신선하다. 개미처럼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좀비라니. 통제가 불가능한 좀비들이 정보를 통해 뭉친다니. 분명 본 적 없는 뉴타입의 좀비다. 기존 좀비들과 차별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이처럼 신선한 발상은 영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순서에서 발현됐다. 좀비 영화를 만들다가 집단지성을 끌어온 게 아니란다. 인공지능(AI) 원리를 탐구한 영화를 기획하다가 그것이 좀비물로 옮겨간 케이스란다. 연상호 감독은 5월20일 열린 언론 시사회에서 "오랫동안 휴머니즘,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작업하고 생각해 왔다"며 "AI가 구동되는 원리를 파고들다 보니 AI라는 것이 보편적 사고의 총합처럼 느껴졌다. 초고속으로 정보를 교류하며, 점점 더 강력해지는 집단지성 앞에서 인간의 개별성이 무력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불안과 공포에서 《군체》의 좀비가 탄생했다"고 밝혔다.

집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분위기. 그 앞에서 무력해지는 개인의 목소리와 커지는 확증편향.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연상호 감독이 《사이비》(2013), 《지옥》(2021), 《계시록》(2025) 등에서 꾸준히 이야기해온 것들이다. 그러니까 《군체》는 연상호 감독의 기존 좀비물뿐 아니라, 그가 그려온 세계관과 넓게 접속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군체》 스틸컷 ⓒ㈜쇼박스

진화하는 좀비의 다양한 움직임

'진화하는 좀비'라는 콘셉트와 함께 영화가 공을 들인 건 공간이다. 《부산행》이 수평으로 달리는 기차를 통해 에너지를 끌어올렸다면, 《군체》는 폐쇄된 수직의 고층빌딩 안에서 에너지를 축적한다. 진화하는 좀비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인간은 살기 위해 시시각각 변하는 좀비의 패턴을 슬기롭게 분석해야 하는데, 이것을 흡사 게임처럼 풀어낸 것도 흥미롭다. 새로운 미션(전과 달리 진화한 좀비)이 떨어지면 그 미션을 클리어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다. 역동적인 핸드헬드 촬영, 인물의 시점 숏 등 촬영에서도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스턴트맨, 브레이크 댄서, 현대무용가가 뭉쳐서 만들어낸 좀비들의 움직임도 볼거리다. 바닥을 기다가 인간처럼 두 다리로 걷고 뛰는 진화의 과정을 비롯해, 정보가 업데이트될 때 온몸을 부르르 떠는 동작, 앤트밀(antmil)을 차용한 군중 신 등 기괴한 모션들이 군무처럼 펼쳐진다. 잘 알려졌다시피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한 연출자다. 《군체》엔 만화에서 볼 법한 기발한 퍼포먼스가 꽤 등장하는데, 이는 연 감독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단점은 《부산행》 때와 같다. 인물들의 드라마가 깊게 다뤄지지 못하면서 개연성에 구멍이 생긴다는 것. 권세정으로 대표되는 전문가, 남매, 경찰(공권력), 학생 등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팀을 짰으나, 몇몇 조연의 감정선이 이야기를 위해 희생되면서 완성도에 흠결을 낸다. 다만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를 생존자로 함께 엮은 발상과 이를 인과응보의 서사로 풀어낸 것은 관객에게 쾌감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긍정으로든 부정으로든 매우 대중적인 좀비 영화랄까.

영화 《군체》 스틸컷 ⓒ㈜쇼박스

《군체》가 주목받은 또 하나의 이유는 전지현이라는 스타 플레이어의 합류다. 영화 《암살》 이후 무려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다. 《군체》는 아마도 훗날 전지현의 작품 세계를 논할 때 특별 언급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전지현이 별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제 역할을 해낸다. 다만 그녀의 스타성을 조금 더 활용했어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전지현만큼 여전사 이미지를 폼 나게 보여주는 배우는 별로 없으니까. 《군체》는 전지현이 지닌 이러한 매력을 충분히 활용해 내지는 못한다.

가장 인상적인 건 구교환이다. 그냥 악당이 아니다. 위험하지만 나름의 명분이 있는 악당이다. 《반도》에서 지질하고 냉혹하게 폭주하는 악당 서 대위를 두툼하게 그려냈던 이 배우는 이번에도 전형성에 포획당하지 않고 인물에 그만의 개성을 부여해 낸다. 여러 의미로 대단한 배우다. 좀비물에 누아르 분위기를 실어낸 지창욱도 언급하고 싶다. 《부산행》에서 마동석이 팔뚝으로 좀비를 혼쭐냈었다면, 지창욱은 '멋짐'으로 좀비와 맞짱을 뜬다. 《군체》의 수혜를 가장 크게 받을 배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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