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위대한 예언 '알지 않을 권리' [영화로 읽는 세상]

김상회 정치학 박사 2026. 5. 2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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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이코노무비
장미의 이름⑪
유튜브서 쏟아지는 가짜뉴스들
유해 정보 방임한 역대 정부들…
정보 범람하면 판단력 흐려져
알 권리만큼 알지 않을 권리 중요

베네딕토 교단의 모든 정보가 저장돼 있던 수도원의 장서각은 윌리엄 수도사와 호르헤 수도사가 '알 권리' '알지 않을 권리'를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잿더미로 변한다. 호르헤 수도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편'을 '몰라도 되는 정보' 정도가 아니라 '알아서는 안 될 정보'로 분류해 철저히 숨긴다. 반면 윌리엄 수도사는 이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해야 할 정보라고 판단한다.

유튜브 등에서 쏟아지는 가짜뉴스는 사회적 재앙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호르헤는 일반인(이하 신자)들은 인식이 미성숙해 '희극'을 접하면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반면, 윌리엄은 일반인들이 희극을 본다고 신을 경건하게 여기는 마음을 잃을 정도로 무지몽매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호르헤와 윌리엄의 격돌을 따라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 시민단체들과 정부가 벌이곤 하는 '정보공개' 논란이 오버랩된다.

정보공개법 제정의 근본 논리는 "알지 못하는 국민은 지배받을 뿐이지만, 정보를 가진 국민은 주권을 행사한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명제를 제도화한 것이다. 국가권력의 원천인 국민에게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해 줌으로써 실질적인 민주사회를 완성하겠다는 철학이 그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윌리엄 수도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희극편을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것처럼 아직도 '블라인드' 처리돼 있는 '한일 청구권 협상' '실미도 사건' '임수경 방북사건' '위안부 합의협상' 전말을 공개하라 요구하고, 정부는 호르헤 수도사처럼 "다 알려고 하지마, 알면 다쳐"하면서 장서각에 미로를 설치하듯 온갖 법적 바리케이드를 친다. 대통령 기록물법에 '지정기록물' 목록을 만들어 미로를 더욱 정교하게 재설계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보공개를 막는 정부가 정작 인터넷, SNS, 유튜브 등에 범람하는 유해 정보에는 대단히 관대하거나 방임하곤 한다. 때론 민주사회를 와해하는 '쓰레기 정보'와 '소음'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은 소련에서 '알 권리'를 외치다가 1974년 체포돼 서방으로 추방당한다. 그렇게 4년간 캐나다와 미국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언론의 자유'를 만끽한 솔제니친은 1978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 연사로 나서 충격적인 연설을 한다. 제목은 '분열된 세계(A World Split Apart)'였다. 여기서 분열됐다는 것의 대상은 사람들의 정신이다.

조금은 장황하지만 축약하기 조심스러운 명문名文이라 조금 길게 원문 그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에게는 '알지 않을 권리(right not to know)'도 있다. 이 권리는 '알 권리(right to know)'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이 권리는 신성한 인간의 영혼이 가십거리나 허황된 이야기, 공허한 말장난으로 채워지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일을 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처럼 과도하고 부담스러운 정보의 홍수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알 권리도 있지만 알지 않을 권리도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무엇이든 공개할 수 있는 법적 권리(legal limits)는 넓어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인간의 영혼을 타락으로부터 방어해주지는 못한다… 서구 언론은 누구나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다는 맹신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허위의 권리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정신적 타락과 언론의 무책임성을 난도질한 이 연설은 당연하게도 당시 하버드 졸업식장에 모인 수많은 서구의 지식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연일 사설을 통해 솔제니친이 자신들이 그에게 선물한 자유 체제를 배신했다며 그를 '시대에 뒤떨어진 중세적 도덕주의자' 혹은 '소련 수용소 수형생활에서 얻은 정신적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치광이'라는 극언을 쏟아부었다. 점잖기로 유명한 뉴욕타임스 사설이 누군가에게 그토록 극악한 비난을 퍼부은 것도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 SNS, 유튜브 들이 쏟아내는 가짜뉴스와 도파민 중독이 사회재앙이 된 오늘, 솔제니친이 제기한 '알지 않을 권리'는 병들어가는 서구 현대 자본주의사회 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위대한 예언임에 틀림없다. 솔제니친이야말로 잠수함 속의 산소 부족을 가장 먼저 느끼고 기절해버림으로써 승조원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잠수함 속 토끼'였던 셈이다.

굳이 솔제니친의 하버드 졸업식장 연설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에겐 솔제니친보다 훨씬 앞서서 알지 않을 권리의 중요성을 설파한 퇴계退溪(1501~1570년) 선생의 「자경문自警文」도 있고, 이익李瀷(1681~1764년) 선생의 「성호사설星湖僿設」도 있다.

퇴계는 그의 서재 사방 벽에 "문을 닫고 들어앉아 내면의 주인을 깨우라"고 써붙이고 내 방과 마음에 일체의 잡인들의 잡소리를 들이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아마 퇴계 선생이 살아 돌아온다면 결코 SNS나 유튜브는 하지 않을 듯하다.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고 온갖 가십과 유언비어, 시정의 온갖 너절한 정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범람하기 시작했을 때,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런 무분별한 정보의 유통이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고 사회를 좀먹는다'고 경고했다.

선생은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인간을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소음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익이 자주 인용했던 문구가 '이목위구耳目爲寇'였다고 한다. 난잡한 정보들을 받아들인 내 귀와 내 눈이 '구寇(도적떼ㆍ원수)'가 된다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내 스스로 받아들인 무분별한 정보들이 결국 나의 멀쩡한 생각을 훔쳐가는 도둑과 같거나 멀쩡한 생각을 망가트리는 원수가 된다는 경고였던 듯하다. 요즘으로 치면 '~ 안 본 눈 삽니다'의 조선판 버전인 듯하다.

인터넷, SNS, 유튜브 들이 쏟아내는 가짜뉴스와 도파민 중독이 사회재앙이 됐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알지 않을 권리가 알 권리보다 중요하다는 솔제니친을 뉴욕타임스는 시대착오적인 '중세 수도사'이거나 '미치광이'라고 매도했다. 하지만 「장미의 이름」을 집필한 움베르토 에코는 알지 않을 권리를 위해 윌리엄 수도사와 죽기살기로 투쟁한 그 중세 수도사인 호르헤 수도사가 정말 미치광이일 뿐인 건지 관객들에게 묻는다.

솔제니친이 미치광이가 아니었듯, 에코는 비록 그 용모는 기괴하지만 호르헤 수도사를 미치광이 취급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미치광이라면 퇴계 이황 선생, 성호 이익 선생 모두 미치광이일 수밖에 없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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