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고르듯 ‘나라’ 고르는 시대… 국가, 선택 받거나 버림 받는다

박진성 기자 2026. 5. 2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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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선택

우원규 지음|미래의창|240쪽|1만8000원

‘인구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생산력 감소·지역 소멸·연금 고갈·병력 감소…. 저출생 고령화는 수많은 문제를 만들지만 단번에 출산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방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책은 세계적 저출생 기조에 더해 각국 청년 인구가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 선택’에 주목한다. 세계의 인재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것처럼 자신이 살 나라 또한 고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 안전한 곳, 더 낮은 세금과 높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난다. 각국은 자국 인재를 지키면서 해외의 고숙련 인력을 유치해야 하는 이중고에 빠졌다.

◇젊을수록 떠난다 ‘브레인 드레인’

애국심이 희박해진 시대다. 과거 국민은 국가에 귀속된 존재였지만 이제는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해졌다. 청년 세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타국의 생활 환경을 비교할 수 있다. 제도·정보의 제약이 낮아지며 국경 이동이 과거만큼 어렵지도 않다. “역량이 없고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을 붙잡아둘 수 없다. 자칫 떠나고 싶어도 떠날 능력이 없는 이들만 남겨진 ‘침전된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일수록 더 나은 기회와 정주 여건을 찾아 이주를 고려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고급 인력이 빠져나가는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현상이 생기고 있다. 과거 ‘이민 받는 나라’로 불렸던 뉴질랜드가 대표적이다. 2024년 4월부터 작년 3월까지 약 7만명(전체 인구의 1.3%)이 뉴질랜드를 떠났다. 2011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들 가운데 18~30세 청년층이 38%를 차지했다. 급격한 주거비 상승과 일자리 집중이 이유로 분석된다. 전통적 대도시 오클랜드는 2000년 이후 평균 집값이 3~4배가 됐다. 자가 소유 비율도 낮아지고 있다. 대도시 청년들은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며 소비 여력이 줄었다. 일자리는 대도시에만 있는데 고물가 압력까지 더해지며 나라를 떠났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전 총리조차 올해 가족과 호주 시드니로 이주했다.

전통적 인구 부족 국가 포르투갈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가 많아졌다. 청년들이 스페인·영국 등으로 떠나고 있으나 브라질 등에서 온 이민자로 인구 규모를 버텨내는 중이다. 홍콩은 2020년 국가안보법과 선거법이 개정되며 자유가 축소되자 기업과 청년들이 떠났다.

게티이미지뱅크

◇‘반(反)이민’ 외쳐도 인력 수용해야 하는 시대

세계는 이민을 통한 경제 규모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 갈등도 알고 있다. 특정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반이민 정서가 격화된다. 미국과 많은 유럽 국가에 반(反)이민 민족주의가 확산되며 이민 통제를 선언하고 있다. 차선책으로 ‘선별적 이민’이 추세가 됐다. 저숙련 이민자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AI나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 분야 전문가를 ‘모시는 데’는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다.

싱가포르는 ‘테크 패스’ 제도를 통해 개인의 역량을 입증하면 취업 비자와 달리 고용 확약이 없어도 입국할 수 있다. 독일은 ‘기회 카드’ 제도로 학력·경력·언어 능력 등을 점수화해 인재를 유치한다. 캐나다는 ‘글로벌 탤런트 스트림’ 제도로 비자 심사 기간을 수개월에서 2주 내외로 줄였다. 트럼프 행정부도 정치적 기반 때문에 반이민 수사를 고집하지만 고학력·고숙련 인력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런 인재 유치 경쟁은 국가 선택에도 수요 공급의 시장 질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많은 국가가 이민자를 받아들이며 전 세계적 이민 열풍이 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선진국이 선택권을 갖고 인구를 흡수하고 있다. 구인난이라고 해도 여건 좋은 대기업은 인재를 가려 뽑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가들은 문턱을 낮춰 이민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한국·일본·대만 동아시아 3국 인력은 글로벌 수요도 많을 수 있다고 본다. 종교 갈등이 적고, 교육 수준이 높고, 범죄율이 낮은 데다 제도 수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정된 규범 속에서 살아 신뢰할 만한 인력 집단이라는 것이다.

2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 AP=연합

◇여행에서 체류로 전환해야

한국은 필요 인력을 어떻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먼저 ‘다원적 이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국적·배경이 유입되도록 쿼터와 선발 기준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나라 이민자가 많아지면 집단화되고 사회적 거리감이 발생한다. 다양한 문화권의 공존도 어려워진다. 캐나다처럼 교육·취업·영주권·귀화가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시스템도 참고할 만하다. K컬처의 확산으로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도 이용해야 한다. 치안·교통·인프라 등의 강점을 활용해 ‘한번 와보는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은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 연수·인턴 등 커리어 네트워크나 체류 지원 등이 도움 될 수 있다.

한국 인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은 세대별 다른 전략을 제시하지만 공통적으로 ‘복수 국적’을 강조한다.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더라도 한국과의 연결성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결혼이민 등 예외적 경우에만 복수 국적을 허용한다.

당위나 인권 차원이 아닌 국가와 국민의 관계로 이민 확대를 바라보는 책이다. 인구 문제 연구자가 인구 절벽 시대와 청년 인구 이동 현상을 ‘국가 선택’으로 개념화했다. 명료한 논리 전개로 세계 인구 패러다임을 수요 공급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다만 국가 차원의 고숙련 인재 유치 경쟁이 산업 현장의 저숙련 인력 수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인과 관계가 느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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