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2026. 5. 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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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민의 시사 구충제]
의혹에 말 아끼는 ‘행정의 달인’
여성 인권 외치던 與는 침묵
일러스트=유현호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가 용산 개발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 그런데 정 후보가 갑자기 뒤에 있던 마강래 중앙대 교수에게 간다. “직접 설명해 주실 거죠?” 마 교수가 답한다. “네, 백브리핑으로 쭉 보면서 설명할 겁니다.” 기자들 앞에 선 이는 마 교수였다. “서울의 핵심산업을, 미래산업을 키우는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 후보님의 철학이고요.” 마 교수가 열변을 토하는 동안 정 후보는 뒤쪽에 서 있었다. 그때 보좌진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직접 설명하시는 모습도 좀 있어야 합니다.” 잠시 뒤 정 후보가 앞에 나선다. “용산은 KTX와 수도권 철도망이 교차하는….” 하지만 정 후보의 시선은 시종일관 손에 든 원고에 박혀 있었다.

비슷한 장면은 다른 한 유튜브 채널에서도 나왔다. ‘정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면 서울시 뭐가 바뀌는데? 했을 때 딱 한 마디’를 사회자가 주문했을 때, 정 후보는 순간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회자가 ‘질문이 좀 어려웠냐’며 다시 답변 기회를 주자 정 후보는 “시민의 세금이 아깝지 않은 정책을 쓰겠다, 이 한마디입니다”라고 말한다. 기대했던 날카로운 비전 대신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 후보는 27세에 양천구청 비서관이 되면서 공무원 경력을 시작했고, 성동구청장을 세 번 연임한 뒤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이재명 대통령조차 “정원오 구청장님이 잘하기는 잘하나 봅니다. 저의 성남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명함도 못 내밀듯”이라고 극찬할 정도. 하지만 그가 영상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에게 붙은 ‘행정의 달인’이란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오세훈 후보와의 토론을 한사코 거부하는 것도 여론조사에서 앞선 자의 여유가 아니라, 토론에서 밀릴 것을 걱정해서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정 후보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이라는 것. 예컨대 구청장 시절 그는 눈을 가장 잘 치우는 지자체장이었다. 또 다른 해석은 그의 이력에 포함된 폭행 전과가 손톱 밑의 가시처럼 작용해 그에게 부담을 줬을 가능성이다. 알려졌다시피 정 후보는 양천구청 비서관이던 1995년, 양천구청 비서실장과 술을 마시던 중 뒤늦게 합석한 민자당 의원 비서관을 폭행한 데 이어, 경찰관 두 명, 그리고 경찰을 돕던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벌금 300만원의 유죄판결을 받았으니 폭행 그 자체에 대해선 사실관계가 입증된 셈.

쟁점은 폭행한 이유다. 정 후보는 작년 12월, 자신의 SNS에 ‘당시 민자당 국회의원 비서관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 차이로 다툼이 있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5·18 정신은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숭고한 것. 폭행은 잘못이지만 그게 5·18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약간이나마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 그런데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당시 양천구 의회 속기록에 근거해 폭행 이유가 정 후보의 해명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속기록에 따르면 정 후보가 술집 여종업원의 외박을 요구하다 술집 사장과 시비가 붙었던 게 폭행의 이유란다. 정 후보 측은 “속기록보다 판결문이 더 정확하다”며 판결문에 ‘정치 관계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라는 구절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양천구청 비서실장으로 정 후보와 함께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씨가 갑자기 등장해 “폭행을 주도한 것은 나였고, 정 후보는 상황을 수습하려다 사건에 휘말렸다”는 입장문을 낸다. 이것 역시 ‘(정 후보가) 주먹과 발로 위 피해자의 얼굴 등을 수회 때리고 차서’라고 적힌 판결문과 다른 바, 판결문만 무조건 맞다고 우길 수 없다.

진실은 어느 쪽일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태도. 정 후보가 “여종업원설은 터무니없다” “이런 발언을 하는 자는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유권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3일 있었던 정 후보의 공약 발표 기자회견은 좋은 기회였다. 발표 후 한 기자가 질문한다. “오늘 김재섭 의원이 밝힌 폭행사건 거짓 해명 의혹 제기에 대해서….” 캠프 관계자가 재빨리 말을 끊는다. “그거 저희가 따로 말씀드렸기 때문에 이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다른 기자가 외친다. “후보자님께 직접 말씀 듣겠습니다.” 그런데도 정 후보는 아무 말 못 하고 멀뚱히 서 있을 뿐이다. 기자가 “후보자님, 지금 말 못 할 사정 있으신 거 아니면”이라고 하자 캠프 관계자가 또 나선다. “오늘 질문과 관련해서 질의응답해 주십시오.” 퇴장하는 정 후보에게 기자가 또 묻는다. “여종업원한테 술자리 강요하신 적 없으십니까?” 그러자 정 후보의 캠프 관계자가 기자를 다그친다. “아니, 어디예요? 어디?” “예의 있으면 그렇게 취재하시면 안 되지.”

여론조사를 보면 정 후보의 결백을 믿는 이가 많은 듯한데, 그는 왜 의혹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하고 있을까? 이 궁금증을 해결해 줄 곳이 바로 국회, 그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다. 알다시피 민주당은 페미니즘을 중요한 이념으로 추구하는 정당. 자신이 내놓은 후보가 받고 있는 여성문제 관련 논란을 조사하고, 명쾌한 답을 내줘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성평등가족위원회를 열고 진상 규명을 위한 현안 질의를 했을 때, 서영교·김남희·이주희 의원 등 민주당 성평등위 위원들은 전원 불참했다. 언론사 중 페미니즘의 선봉에 선 진보 매체는 심층 취재를 통해 정 후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대신 ‘막말·흑색선전으로 국민 눈살 찌푸리게 하는 국힘’이란 사설을 통해 국힘을 비판할 뿐이다. 보수 정치인의 사건에는 우르르 몰려나와 젠더 감수성을 논하던 여성 단체들도 이번 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성명도 내지 않고 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이 신봉하는 페미니즘은 정말로 여성의 삶을 향상시키자는 이념이 아니라, 그저 ‘네 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여성’을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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