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금리 발작에 고개드는 S공포…AI 열기로 증시만 호황

황정일 2026. 5. 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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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이란전에 세계 경제 신음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채권 가격 하락) ‘파멸로 향하는 문(doom loop)’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달 초 미국의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내놓은 섬뜩한 경고다. BOfA는 지난달 말부터 국채 금리 변동성이 커지자 “호황이나 버블은 언제나 국채 금리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끝을 맺는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하지만 시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인공지능(AI) 투자 열기가 워낙 뜨겁고, 중동 전쟁이 종전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보름여 만에 채권 시장이 발작을 일으키며 국채 금리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올 성장률 3.3→3.1% 하향…2.5% 전망도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1일(현지시간) 연 4.58%로 마감했다. 이날 30년 만기 금리도 5.11%를 기록,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약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유로존 국채 시장의 기준인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2011년 이후 최고치인 3.10% 기록했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2.75%까지 오르며 1997년 이후 2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10년물 국채 금리 역시 대외 환경 변화에 동조하며 동반 오름세를 나타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국채 금리 상승이 당장 금융시장의 위기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다만,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10년물 금리의 심리적 저항선을 4.5%로 여긴다. 과거 10년물 금리가 4.5%를 넘어서면 주가가 급락하는 등 혼란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채 금리 상승 자체가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최근 금리의 상승이 유가 상승, 지정학적 리스크, 물가 불안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세계 경제에 낀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중동 전쟁은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금융시장 충격으로 전이할 조짐을 보인다. 에너지 충격과 통상정책 불확실성 확대, 물가·국채 불안 등이 뒤섞이면서다. 이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충격은 중첩되고, 활로는 좁아질 것”이라는 말로 현 상황을 진단한다. 각각의 리스크가 연쇄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를 둘러싼 먹구름이 좀처럼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중동 전쟁의 파고가 실물 경제에 도달하면서 주요국의 경제에도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4월보다 3.8% 상승했다. 2023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한국도 전년보다 2.6% 올랐다. 2024년 7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의 물가는 4% 올랐고(3월 기준), 월별 통계를 공개하는 37개 회원국 가운데 33개국에서 물가가 뛰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물가 상승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CNBC가 최근 실시한 ‘전미 경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0%가 “고유가로 지출 습관을 변경했다”고 답했다. 지출 습관을 변경했다고 답한 응답자 중 60%는 ‘외식·영화·공연 등 여가·엔터테인먼트 지출을 줄였다’고 밝혔고, 50% 이상은 여행 계획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40%는 ‘식료품과 의료 서비스 등 필수 지출마저 줄이고 있다’고 했다. CNBC는 “고유가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1분기까지는 괜찮았던 중국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4월 소매판매 증가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2% 증가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전월(1.7%)과 전망치(2.0%)를 모두 밑도는 수치다. 2022년 12월(-1.8%)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저치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푸링후이 중국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현재 외부 불확실성이 많고 기업 비용 압박이 커졌으며 일부 기업은 여전히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은 또다시 ‘고통의 시간’을 소환할 수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지만, 연내 인상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내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은 41.7%, 0.50%포인트 인상 가능성은 15.7%까지 상승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김진욱 씨티은행 연구위원은 “물가 전망치 등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AI혁신, 생산성 향상 안 이어지면 재앙”
이런 가운데 유류 비축분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해 “현재 상업용 재고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고 밝혔다. IEA가 최근 발표한 월간 석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원유 재고는 올해 3월과 4월 두 달 동안 2억4600만 배럴(하루 기준 약 400만 배럴) 줄었다. 일각에서는 6월이면 재고가 사상 최소 수준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로 인해 세계 성장률이 2.5%까지 둔화하고 물가는 5% 중반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을 3.3%에서 3.1%로 낮췄는데, 이 또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3% 성장은 코로나19 이전 10년(2010~2019년) 세계 평균 성장률(3.7%)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시욱 KIEP 원장은 “세계 경제는 성장 둔화와 물가 부담이 병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동반한 물가 상승)적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그러나 AI 투자가 이어지면서 성장세 둔화를 방어하고 있는 만큼 중동 전쟁의 충격을 버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스탠퍼드대 인간 중심 AI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의 AI 투자 규모는 지난해에만 2859억 달러(약 428조8700억원)에 달했다. 2024년 1091억 달러보다 160%가량 증가했다. 미국·한국 증시가 위축하는 실물 경제와 달리 활황세인 이유다. 한국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AI 운용에 필요한 발전·전력기기 분야의 세계 강자다.

증시가 더 오를 것으로 보는 전망도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올해 말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목표치를 7800에서 8400으로 상향 조정했다. 지금은 7400선을 오가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15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각각 59만원(기존 34만원), 400만원(기존 234만원)으로 크게 올려 잡았다. 노무라증권은 “AI가 대규모 지식을 주입하는 학습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서비스를 구현하는 추론(Inference) 단계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AI 투자 열기가 세계 경제의 구조적 둔화를 완전히 상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과거에도 새로운 기술 혁신은 경기 침체를 늦추는 역할을 했지만, 고금리·고물가·지정학 리스크가 동시에 겹친 상황을 장기간 버텨낸 사례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9일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통화 정책 컨퍼런스에서 “AI 혁신이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고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닥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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