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위원장 “미국 주도 해양자유구상 참여, 신중해야 한다”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5분의 1을 운반하던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 두 달이 넘었다. 각국에서 온 선박 800~1000척에서 선원 약 2만명이 탈출을 희망하고 있다. 유엔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선원 최소 10명이 사망했고 30척 넘는 선박이 공격을 받았다. 전 세계 선원들의 노동조합인 국제운수노련에는 임금 체불 관련 1000건과 식량·연료·물 부족 관련 200건을 포함한 도움 요청 약 2000건이 접수됐다. 국제해사기구는 호르무즈 해협에 선원들이 장기간 갇힌 상황을 “인도주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5월20일 한국 선박으로는 처음으로 HMM 유조선 유니버셜 위너호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면서, 5월21일 오전 7시 기준으로 한국 선박 25척에 탄 116명과 외국 선박에 탄 35명 등 한국인 151명이 갇혀 있다. 통상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한 선박은 떠난 지 45일 만에 돌아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70일 넘게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다. 이들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다. 5월4일 한국 선사 HMM의 화물선 나무호가 이란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체의 공격을 받은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의 선원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한국노총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 HMM해원연합노조 전정근 위원장을 5월13일 노조 사무실에서 만나 한국 선원들 상황을 들었다. 인터뷰는 HMM 유조선 유니버셜 위너호가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기 일주일 전에 이뤄졌다. 정부는 남은 한국 선박 25척도 해협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이란 측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2월28일 전쟁이 시작되고 두 달 반이 지났다.
배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배 주변으로 요격된 미사일 파편이나 자폭 드론 잔해물, 불발탄이 떨어지고 있다고. 당시 우리 배들이 두바이의 제벨알리 항구에 정박 중이었다. 항구가 안전하지 않으니 어딘가로 대피해야 했는데, 모든 게 셧다운이었다. 출항에 필요한 터그보트(예인선)나 라인맨(줄잡이) 아무것도 준비되는 게 없었다. 나중에 하역이 재개되고 항만이 다시 열려 그나마 출항할 수 있었다. 해양수산부에도 ‘뭐라도 좀 해보세요’라고 전화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더라. 어떤 피해도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고통스러웠다.
5월4일 HMM 나무호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처음에는 라라크섬 주변으로 항로를 설정해서, 그 항로를 통과하려면 자신들의 허가를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선박들이 못 참고 밤에 AIS(선박자동식별장치)를 끄고 많이 빠져나가다 보니, 자신들이 통제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범위를 늘렸다(같은 날인 5월4일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배들을 빼내겠다며 이른바 ‘프리덤(해방) 프로젝트’ 작전을 개시했다). 당시 우리 선박들은 휴전 중이기도 했고 분위기가 좋아질 것처럼 보여서 전진 배치한 상태였다. 다온·나무·나래호가 (아랍에미리트 인근 해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통제선을 넘지 않고 조금 떨어져 대기 중이었는데, 그날 밤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HMM 선박 피격됐다는데 혹시 뭐 들은 거 있냐’고. 선박 관리사 대표에게 전화해 팩트체크를 부탁했더니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고 해서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다온호 선장에게 전화하니 처음엔 연결이 안 됐다. 나중에 연락이 닿자 ‘지금 나무호가 공격당한 것 같다, 혹여나 구하러 갈 수도 있어서 대기하고 있다’고 하더라. 제발 인명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선박이 혼자 행동하다가 이란의 공격을 당했다고 했다.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묘박(닻을 내리고 운항을 정지)한 채 대기 중이었고, 독자적으로 행동할 만한 여지는 전혀 없었다. 프랑스나 중국 선박도 공격당한 걸 보면, 대한민국을 표적으로 삼았다기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선박을 향해 본보기로 공격을 자행한 것 같다.

정부는 5월10일 ‘미상의 비행체가 나무호 선미를 타격했다’고 발표했고, 5월11일 강력히 규탄한다고 하면서도 공격 주체를 특정하지 않았다. 미온적인,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의 메시지 수위가 올라간 건 고무적으로 본다. 하지만 벌집을 잘못 쑤시는 순간 호르무즈 해협에 있는 한국 선박 26척(인터뷰 당시. 5월22일 현재 25척)에 탄 선원들이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역시 자국 선박이 공격당한 프랑스나 중국도 피격 사실은 인정했지만, 유감이라고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이란을 향해 ‘한판 붙어보자’고는 안 하지 않나. 우리나라 배가 다 빠져나왔으면 상관없지만 갇혀 있는 상황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이번만 해도 선원 거주 구역이 아닌 기관실을 공격했기에 피해가 부상 한 명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 거주 구역을 때리면 그때는 끝이다. 사태 초기부터 참전이나 파병은 신중하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이유다.
현재 선원들 상황은 어떤가?
나무호는 두바이에서 수리 중이다. 통상 승무원들은 배를 수리하는 기간에도 배 안에 머무르면서 전반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그런데 나무호는 기관실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니 전력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호 선원 24명은 배에서 내려 두바이의 숙소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여전히 바다에 있는 선원들 상황도 걱정된다.
정신적으로 계속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새떼라도 날아오면 자폭 드론인 줄 알고, 선체가 갑자기 흔들리면 공격당한 건 아닌지 두려워한다. 전쟁 초반의 트라우마가 그나마 완화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큰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있다. 식료품은 해양수산부나 선사에서 최대한 사두는 중이다. 의약품도 아직은 부족하지 않지만, 시간이 계속 흐르기 때문에 지금 괜찮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배에서 아프면 바로 의료적 치료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하선 의사를 밝힌 선원은 없다고?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나가 있는 HMM 선원 30여 명 중 10명은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자회사 HMM오션서비스 소속으로 통상 4개월 단위로 계약한다. 사측에서는 배에서 내리겠다고 하면 근로관계를 종료하고 교대해주겠다는 입장인데, 아직 집단 하선 요청은 없는 것으로 안다. 본인이 하선하면 누군가 또 와서 이 사고를 수습해야 하다 보니, ‘시맨십(선원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다온호 선장의 경우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교대 신청을 했다가 취소하고 다시 연장 신청을 했다. 이렇게 위험한데 동료들을 놔두고 갈 수는 없다고.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 연합체인 ‘해양자유구상’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은 신중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적극성을 가지고 미국 주도 질서에 참여한다면 이란이 우리 선박에 보복할 수 있다. 만약 국제관계 때문에 우리가 불가피하게 개입해야 한다면, 승무원들을 최소 정원만 남기고 귀국시키는 등 피해를 최소화할 조치를 먼저 해놓고 나서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선원들의 노조위원장으로서 바라는 건?
장기전으로 들어가면서 선원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다. 이란이 우리 선박이나 선원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 사실상 전쟁포로나 다름없다. 선박이 빠져나갈 때마다 자신들의 협상력이 낮아지므로 일부러 더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니까.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선사들이 치솟은 전쟁보험료와 유류비 등으로 감당하는 비용이 하루 4억9000만원에 이른다. 중소 선사일수록 더 버티기 어렵다. 선사들로서는 차라리 (이란이 요구한다고 알려진 통행료 수준인) 30억원을 주고라도 나오고 싶어 하는데, 선원들의 목숨을 건 도박인 데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 때문에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선사가 개별적으로 (이란과) 협상할 수 있는 채널도 없다. 결국 미국과 이란이 그만 싸우는 것 외에 근본 해결책은 없다. 정부가 다른 나라들과 긴밀하게 공조해서, 미국과 이란 사이의 중재를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부산·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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