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횡·숙청에 반기 든 공화당… 이민 단속 예산 처리 거부
독재 용납 않는 미 민주주의 저력

행정부와 여당을 장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나친 전횡과 무자비한 숙청에 집권 공화당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점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자주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선거 무신경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경순찰대에 예산을 지원하는 법안을 처리하지 않은 채 21일(현지시간) ‘메모리얼데이’(미국의 현충일) 연휴 휴회에 들어갔다. 해당 법안을 6월 1일까지 통과시켜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문을 여당 의원들이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720억 달러(약 108조 원) 규모인 이민 단속 예산안을 주말까지 가결한다는 상원 공화당의 구상을 망가뜨린 것은 17억7,600만 달러(약 2조7,000억 원) 규모의 법무부 ‘무기화 방지 기금’이었다. 연방정부가 사법기구를 무기화했으며, 이에 따른 피해자에게 세금으로 기금을 만들어 보상한다는 계획이지만 당장 야당 민주당에서 “대통령의 사익을 위한 국고 약탈”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으려 2021년 1월 6일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자들까지 수혜자가 될 수 있는 만큼, 공화당 내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역풍을 우려하는 공화당 상원의원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상회한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 의원은 “기껏 조율해 놓은 예산안 처리 과정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이날 취재진에 말했다.
여당 내 반발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공화당 소속 척 그래슬리(오하이오) 상원의원이 민주당 상원 진 샤힌(뉴햄프셔) 의원과 함께 재무부가 외환안정자금(ESF)을 멋대로 다른 나라 지원에 쓰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안 발의를 채비 중이라고 전했다. 친(親)트럼프 성향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지난해 10월 자국 내 선거를 돕는 용도로 미국인의 세금이 사용된 일이 입법 추진 계기가 됐다.
연방 상·하원의원과 주지사 등이 대거 선출되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사적 욕망 실현을 위한 정책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여당 의원들은 보고 있다. 대(對)이란 전쟁으로 치솟은 물가에 아랑곳없이 거액을 들여 짓고 있는 백악관 이스트윙(동관) 대연회장이 가뜩이나 유권자의 위화감을 키운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안 시설 강화 명목으로 세금 10억 달러(약 1조5,000억 원)를 더 편성해 줄 것을 의회에 요구하며 이민 단속 예산안에 해당 비용을 끼워 넣으려 한 것에 대해서도 집권당 내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승자의 저주

공화당 상원이 반기를 든 것은 선거 위기감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현역 의원 축출이 일으킨 역풍 성격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어지고 있는 공화당 내 중간선거 경선을 평소 자신에게 충성심을 보이지 않은 의원들을 쫓아내는 기회로 삼고 있다. 루이지애나주(州)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선 재선 빌 캐시디가 트럼프 대통령 지지 후보에게 밀려 떨어졌고, 텍사스주 4선 상원의원 존 코닌도 트럼프 대통령 지지를 끌어내는 데 실패해 결선 투표에서 탈락할 공산이 커졌다.
특히 코닌 의원은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존 슌(사우스다코타) 의원과 더불어 미국 상원의 규칙과 절차를 존중하고 초당적 협상과 의회 민주주의 관례를 중시하는 대표적 제도주의자다. 슌 의원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대 의견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화당 의원들에게 경고했다.
이런 선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크다. 코닌 의원마저 패배할 경우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 은퇴를 결정해 버린 톰 틸리스(노스캐롤라이나) 의원까지 최소 세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임기 말(연말)까지 주요 법안 표결 때마다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당장 캐시디 의원은 대통령의 전쟁 권한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상원 본회의에 부치는 데 대해 19일 찬성 의견으로 변경해 7차례 불발된 해당 안건의 상정을 성사시켰다. 현재 상원 의석 구도는 공화당이 53석, 범민주당이 47석이다.
대통령의 무소불위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 집권당 내 견제는 미국 의회 민주주의의 저력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2월 보고서를 보면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뒤 이어진 군부 대숙청 속에서 2022년 이후 제거됐거나 실종된 중국군 상장·중장급 인사가 최소 101명에 달한다. 이를 통해 시 주석의 권력은 더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독립적 입법 기관이 기능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하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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