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유족과 합의하면 대폭 감형한다? [세상에 이런 법이]

오늘날 우리 사회 노동문제의 상당 부분은 노사관계가 복잡하고 중첩적이라는 사실에 뿌리를 둔다. 일의 내용과 방식, 작업환경 등을 실질적으로 조성하는 자(실질적 사용자)에게 그 노동 관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아무런 힘이 없는 ‘가짜 사장’이 내세워지기도 하고, 노동자 스스로 ‘사장’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중첩적인 노사관계는 현대 산업의 복잡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 산업의 정점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챙기는 기업들이 그에 걸맞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면이 크다.
노동법은 이 문제에 직접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임 관계의 제도적 확장에 나서기 시작했다. 노사교섭 테이블에 형식상 고용주가 아닌 ‘진짜 사장’을 끌어내기 위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의 별칭)과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했을 때 위험한 작업환경 조성에 실질적 책임이 있는 자를 직접 겨냥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들은 형식 너머 실질을 포착하려고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노란봉투법의 ‘사용자’ 범위에 포함된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노동조합법 제2조 제2호)”,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책임자 등(제2조 제9호)”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제4조)” 조항이 그러한 배경으로 들어왔다.
두 법의 성패는 이러한 개념들의 올바른 해석과 적용에 달렸다. 고용노동부, 수사기관, 법원 등 유관 기관이 그 입법 배경과 취지에 맞게 이 개념들을 해석·적용한다면 법이 본래 의도했던 바가 실현될 것이다. 반대로 과도하게 제한해 해석하거나 법의 취지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적용하면,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전보다 나빠질 수도 있다.
두 법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들은 법 시행 후 여러 사건에서 올바르게 적용되는지를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조사·수사·재판 단계에서 이 법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따지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시정을 촉구한다. 또한 그들은 두 법이 짧은 시간에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내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약자를 위한 법이 늘 그렇듯,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뿐만 아니라 그 법이 올바르게 구현되고 정착되는 과정에도 지난한 토론과 설득, 싸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줄이기 위해 바꿔야 하는 것
반면 두 법의 해석·적용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혼란이 어떤 방향으로 해소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혼란 자체를 강조하며 법이 문제라고 말한다. 법 시행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법의 실패를 단언하기도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산재 사망사고가 크게 줄지 않는 통계를 앞세워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들먹이는 것이 이들에게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최근 CU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물연대 조합원 사망사고를 두고도 ‘노란봉투법 탓’이라고 보도하는 언론이 있었다. 나는 이들이 두 법의 취지에 제대로 공감한 적 없고 법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 적도 없다고 본다.
지난 4월22일 수원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신현일, 주심 강명중)는 노동자 23명을 숨지게 한 아리셀 박순관 대표 항소심에서 1심의 징역 15년을 4년으로 대폭 감형했다. 그 아들 박중언 본부장의 형도 징역 15년에서 7년으로 크게 줄었다. 유족들과의 민사 합의를 적극적인 감형 사유로 삼았다. 1심이 “합의로 선처받는 악순환을 뿌리 뽑아야 한다”라고 한 것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평소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도외시해 수십 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도 유족들과 합의만 잘하면 형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또 남겼다. 중대재해 감소를 위해 우리가 바꿔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대재해처벌법인가, 그 법의 취지를 보란 듯이 무너뜨리는 법원인가.
임자운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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