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 마리 되살렸지만...꿀벌 위기 '현재진행형'

이한 기자 2026. 5. 20. 14:1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 꿀벌의 날] 커지는 생태 위기...대책 마련 나선 기업들
기후위기로 꿀벌이 겪는 어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침입 포식자의 북상도 위기를 키우는 요소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서식지를 확보하고 밀원 생물을 늘리는 활동을 적극 실천하고 나섰다. 정부 차원의 대응도 본격화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꿀벌의 위기 역시 가속화하는 가운데, 기업들이 서식지를 확보하고 밀원 생물을 늘리는 활동을 적극 실천하고 나섰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5월 20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꿀벌의 날'이다. 꿀벌이 생태계와 식량 생산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리기 위해 이날을 기념일로 삼았다. 올해 꿀벌의 날 전후로 국내 기업들의 보호 활동이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한편, 기후변화로 꿀벌이 처한 위기 역시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과학적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꿀벌의 위기 상황이 심각하다고 지적하는 과학적 데이터들이 쌓이고 있다. 세계자연기금 한국지부(한국 WWF)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기후변화가 꿀벌 군집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기후위기(변화)는 꿀벌 군집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위기에 흔들리는 꿀벌 군집 

보고서에 따르면, 기상이변이 벌집 내부의 항상성을 무너뜨린다. 꿀벌은 날갯짓으로 공기를 순환시키거나, 물방울을 이용한 증발 냉각, 외부에 무리를 이루는 '벌떼 형성(bearding)' 등 정교한 집단 행동을 통해 벌집 내부 온도를 32~35℃로 유지한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유충 발달이 저해되고 군집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이 제주와 서울에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해 일벌의 채집 비행과 기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온과 강수량이 꿀벌 행동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확인됐다. 기온 20~30℃ 구간에서 비행 빈도가 가장 높았고, 강수량이 줄수록 비행 횟수와 비행 지속 시간이 늘어났다. 

이와 더불어 비가 오는 날에는 벌집 내부 온도와 외부 습도 간 격차가 커져 꿀벌의 환경 조절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도 확인됐다.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을수록 비행 빈도가 감소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폭염이 장기화되면 열 스트레스로 인한 꿀 생산량 감소, 번식 성공률 저하는 물론 최악의 경우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까지 초래될 수 있다.

침입 포식자의 북상도 꿀벌 위기를 가속화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저장성이 원산지인 '등검은말벌'이 꿀벌 군집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킨다. 이 말벌은 벌통 근처에서 정지 비행하다가 채집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벌을 낚아챈다. 

연구팀이 서울, 옹진군, 무안군, 철원군, 제주시, 울릉군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포획 조사를 실시한 결과, 채집된 말벌 전체의 무려 70%가 등검은말벌로 확인됐다. 한국에서 남부 지역에 처음 출현한 이후 서울과 강원도까지 북상한 사실이 데이터로 뚜렷하게 드러났다. 프랑스에서는 2004년 최초 발견 후 10년 만에 전국으로 확산됐고, 연평균 확산 속도는 1.2%로 한국(0.5%)의 두 배 이상이었다.

등검은말벌의 북상은 기후위기(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연구팀 분석 결과, 한국과 프랑스 모두에서 등검은말벌 여왕벌의 동면 후 출현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었다. 한국은 연간 약 0.2일, 프랑스는 약 0.5일씩 여왕벌 출현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겨울 기온이 오를수록 월동 여왕벌 생존율이 높아지고, 이른 봄부터 군집 형성이 활발해져 꿀벌에 대한 포식 압력이 더 오랜 기간 지속되는 셈이다.

"종 보존 넘어 생태계 회복력의 문제"

피해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제주도 가축통계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도내 꿀벌 군수는 5만 6678군으로 전년(6만 3142군) 대비 10.2% 감소했다. 날씨 변화로 밀원수 개화 시기가 달라져 꿀 생산량이 줄고, 여왕벌 가격 상승에 따라 소규모 농가의 부담이 커진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꿀벌 생태가 중요한 이유는 자연 상태에서의 '생태적 연결고리' 때문이다. 전 세계 작물의 약 75%가 꿀벌 같은 수분매개 곤충에 의존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과, 아몬드, 커피 등 주요 농작물의 생산량이 줄고 식량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있다. 탄소를 흡수하는 식물들 상당수도 꿀벌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어, 꿀벌 감소는 생태계의 기후변화 완화 능력 자체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WWF 보고서는 벌통 단열 강화와 통풍 조절 시스템 도입 등 기상 스트레스에 강한 양봉 환경 구축, 등검은말벌 조기 경보 및 방제 시스템 구축, 수분매개자 친화적 서식지 복원, 생물다양성법·농업법 내 꿀벌 보전 조항 신설 등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미 등검은말벌이 확산된 프랑스 등과의 국제 정보 공유 협력 강화도 촉구했다.

꿀벌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2024년 여름부터 2025년 봄 사이 상업 양봉 군집의 62%가 폐사하는 역대 최악의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 미국 농무부(USDA) 집계 기준으로 약 170만 개 군집이 사라졌고, 피해 규모는 6억 달러(약 8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비영리 양봉 연구단체 프로젝트 아피스 엠이 전국 상업 양봉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일부 사업자가 보유 군집 전체를 잃었다고 보고했다. 기후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 서식지 감소, 농약 노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농업경제학자들은 이 여파로 2026년 과일·견과류·채소 가격이 5~10%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기업·정부, 꿀벌 대책 마련 고심 중 

이런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들이 최근 꿀벌 보호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LG다. 이들은 2025년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생태수목원 '화담숲' 인근 정광산 일대에 '한라 토종벌' 서식지를 조성했다. 100만 마리로 시작한 이 사업은 이듬해 200만 마리로 개체 수를 안정적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올해는 400만 마리로 4배 증식했다. LG는 대한민국 토종벌 명인 1호 김대립 명인과 손잡고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LG는 화담숲 인근 서식지가 밀원수 등 식물이 풍부해 꿀벌의 안정적 먹이 활동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서식지 인근 밀원 식물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목표 사육 규모인 400만 마리 증식에 성공한 LG는 앞으로 증식된 토종벌을 양봉 사회적 기업 '비컴프렌즈'와 함께 피해 농가에 지원할 계획이다. 
LG는 대한민국 토종벌 명인 1호 김대립 명인과 협업해 2027년까지 매년 토종 꿀벌 개체 수를 2배 증식하는 목표를 세우고 보호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진 LG그룹 제공)/뉴스펭귄

KB국민은행은 2022년 4월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옥상에 'K-Bee 도시양봉장'을 조성하고 이후 서울숲과 서대문구청 옥상 등에 양봉장을 추가로 설치했다. 이와 더불어 강원도 홍천 및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꿀벌 서식지 확보를 위한 밀원숲을 조성하고 서울식물원 내 야생벌을 위한 'Bee호텔'도 만든 바 있다. 

농심은 올해 2월 한국양봉농협과 함께 꿀벌 생태계 보호 및 양봉농가 지원을 위한 발전기금 전달식을 진행하고, 밀원수 식목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농심은 자사 제품 '꿀꽈배기'가 1972년 출시 이후 50년 이상 국산 아카시아꿀을 원료로 사용했다. 이에 따라 꿀벌 생태계 보호가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원료 수급과도 연결된 문제다. 

정부 차원의 대응도 본격화되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국립농업과학원 등은 2023년부터 다부처 공동연구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변화)로 꿀벌 실종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새로운 밀원수종 개발과 양봉·생태계 서비스를 강화하자는 취지다. 이 사업에는 국립농업과학원을 비롯해 농림축산검역본부, 국립산림과학원, 국립기상과학원, 국립농업생물자원관 5개 부·청이 참여하고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은 이와 관련, "이상기온, 가뭄,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으로 기존 밀원식물의 개화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신규 밀원수종 개발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꿀벌 생태와 건강성 관련 연구, 환경 변화 대응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