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륙’을 겪은 노동부 장관과 ‘긴급조정’

"철도 현장은 도륙 났다."
철도 기관사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014년 10월 철도노조 선거에 출마하면서 했던 말로 기억한다. "도륙"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한 까닭이 있었다. 전년도인 2013년 12월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민영화를 막겠다며 파업을 했다. 정부가 '불법'으로 낙인찍은 파업은 30일간 이어졌다. 노조 지도부를 체포하려는 경찰력이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수많은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형사처벌되고 해고 등 징계를 받았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역임하고, 노조위원장도 이미 한 번 거쳤던 김 장관이 다시 위원장을 결심한 이유였다. 정부의 탄압으로 "도륙"이 난 철도노조와 철도 현장을 되살리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호소했다.
철도노동자들은 '도륙'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했던 2002년 2월 파업, 2004년 6월 파업이 대표적이다. 김영훈 장관 본인도 2006년 3월 파업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다.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 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에 회부하면 파업이 금지되는 제도가 서슬 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이었다. 이 제도는 노동3권을 박탈하는 악법 중의 악법으로 불렸다.
2013년 파업 당시에는 직권중재 제도가 사라지고 난 뒤였는데도 불법파업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수서발 KTX 문제는 근로조건과 무관하다"는 이유였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으로 노동쟁의의 범위와 개념은 확대됐지만,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제도는 건재하다. 대표적인 게 긴급조정 제도다. 직권중재 제도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 직권중재 제도가 필수공익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긴급조정 제도는 삼성전자처럼 민간 제조사업장 단체행동권까지 제한하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 악질적인 제도이기도 하다.
김 장관은 김민석 국무총리가 삼성전자 노조 파업에 대한 긴급조정권 발동을 언급한 지난 17일 대국민담화문 발표 자리에 함께했다. 긴급조정을 실제 결정하겠다기보다는 노사 대화를 통한 타결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업하기도 전에 긴급조정을 언급하면 어떤 사용자가 교섭에 성실하게 임할까. 합의하면 파업은 당연히 안 하고, 합의에 실패해도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면 파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는 손해 볼 게 없다. 삼성전자 노조에 따르면 김 총리가 긴급조정권 발동을 말한 뒤 사용자쪽 태도가 변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노총(ITUC)이 수차례 폐지를 권고한 제도 사용을 공식 언급한 것만으로도,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을 신뢰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문제와 관련해 "산업통상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격렬히 토론할 문제"라고 했다. 김영훈 장관은 긴급조정과 관련해 국무총리나 산업부 장관과 얼마나 격렬한 토론을 했을까. "헌법상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대통령에게 노동3권의 본질과 긴급조정의 본질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아니, 노동부 장관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기나 한 것일까.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는 국무총리. 그 뒤에 단체행동권을 뺏긴 고통을 뼈저리게 경험한 철도노동자 출신 노동부 장관이 서 있는 장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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