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세수’든 ‘초과이윤’이든

안진이 2026. 5. 1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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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이 독립연구자·활동가
▲ 안진이 독립연구자·활동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SNS 글이 논란으로 이어졌다. "주가를 왜 떨어뜨리느냐" "기업의 '초과이윤'을 나누라니 말이 되냐" 같은. 그러자 청와대는 해당 글이 김 실장의 개인 의견이었고,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세수'를 국민에 배당하는 방안을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초과이윤'이냐 '초과세수'냐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있다. 김 실장의 제안 자체가 복수의 가정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고유한 장점을 잘 살려서 인공지능(AI) 시대 글로벌 공급망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반도체산업은 더 이상 주기적으로 변동하지 않고 '지속적 초과이윤'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기술 혁신으로 '골디락스'(고성장에도 물가는 안정되고 실업률도 낮은 상태)를 맞이해야 한다. 이 모든 산을 넘으면 그때 비로소 분배를 해보자는 것이다. 초과세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국민배당금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김 실장 스스로도 밝혔다. 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제안인가.

김 실장의 가정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이다. 글로벌 AI 산업에서 AI 인프라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흐름은 실재하니까. 하지만 AI 산업은 속도가 빠르고 변수가 많다. 산업 전반의 과실을 고르게 분배하자는 뜻은 좋지만, 이렇게 멀고 불확실한 경로가 아니라 실행 가능성이 명확한 경로를 제시했다면 어떨까. 코로나19 위기와 에너지난을 거치며 몇몇 유럽 국가들은 은행과 에너지 기업의 초과이윤에 '횡재세'를 부과했다. 미국에서는 940명 슈퍼부자의 재산에 5% 세금을 매기는 부유세 법안이 발의됐다. 싱가포르 정치권은 AI 시대 고용유지지원과 노동자 재교육 의무화 같은 구체적인 의제를 테이블에 올렸다.

한국에도 뜻밖의 전례가 있다. 과거 MB정부 시기에 고환율 등을 배경으로 일부 대기업만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자, 레임덕 위기를 감지한 정권은 갑자기 상생을 외치며 동반성장위원회를 설치했다. 당시 위원장이던 정운찬이 제시한 개념이 대-중소기업의 '초과이익공유제'였다. 반발도 나왔지만, 한나라당과 MB정권 내에도 양극화가 더 심해지면 안 된다고 보고 이 개념에 찬성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게 무려 17년 전이다. 산업전환 속도가 더 빨라진 지금 '초과이익'이라는 단어를 입에 못 올릴 이유가 없다.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 같은 고민은 더 일찍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유로존, 일본보다 수출과 내수 간 성장률 격차가 크다. 수출이 잘 되더라도 내수기업과 자영업자와 가계는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하나,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지난달 기준으로 반도체는 전체 수출의 37%를 차지했다. 한국 경제가 최근 성장률 전망치를 더 높여 잡은 이유도 반도체 슈퍼 호황밖에 없다. 하지만 고용이나 가계소득 증가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반도체 업종은 타 업종보다 고용유발계수가 낮은 데다 해외직접투자가 늘고 있어 하청업체에 온기가 좀처럼 닿지 않는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더 커지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초과세수든 초과이윤이든 분배를 원한다면, 조건을 줄줄이 달지 말고 그냥 분배 논의를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 특정 반도체 대기업 안에서 이뤄지는 논의는 범위가 너무 좁다.

이번 기회에 논의가 확장되면 좋겠다. 삼성전자의 공급망 안에 있는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들 역시 그간의 기여를 인정받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지역사회, 그리고 그동안 세제 혜택을 비롯한 각종 지원을 몰아준 국민에게 어떻게 이익을 돌려줄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하청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이 한국형 하청구조의 특징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계열사 임직원에게 대리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탁업체의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탁업체들은 일방적으로 약관을 변경해서 노동자들에게 '수수료 인상'이나 '관리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냈다. 원청인 삼성전자는 올해 영업이익만 수백조원으로 전망된다는데, 하청구조의 맨 끝에 위치한 노동자들은 일을 하고도 부당하게 임금을 삭감당했다. 이 극명한 대비가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대로 가면 격차는 K자형으로 계속 벌어진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의 성장'을 말했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K자형 구조는 말이나 바람만으로 깨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강하게 저항할 것이고, 누군가는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에 남은 질문은 하나. AI 시대에 기업의 독점적 이윤을 둘러싼 새로운 규칙을 만들 의지와 실력이 있는가? 그냥 한번 던져본 것인지, 끝까지 가져갈 국정 철학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독립연구자·활동가(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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