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장병이 빚에…도박이 키운 위기
주식·코인·도박 동시 노출…중독 위험 확대
현역병 대출 242억... 고금리 구조에 갇혀
교육 부재 속 빚투 확산... 제대 후까지 부담
[지데일리] 요즘 한밤의 군대 내무반에서는 게임 로그인 알림보다 주식·가상자산 앱 알림과 도박 사이트 접속 기록이 더 많이 켜진다.

금융감독원이 상위 30개 대부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군 장병 대출 잔액은 444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현역병이 받은 대출 규모가 242억 원으로 전체의 54%를 넘어서며, 직업군인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대부업체들은 ‘충성론’ ‘병장론’ 같은 병사 전용 브랜드를 앞세워, 연 17.9~20%에 육박하는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이 돈은 주로 주식·코인 레버리지 투자와 온라인 스포츠 도박, 카지노형 사이트 자금으로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장병은 자신의 월급을 모두 투입한 뒤에도 부족하다며 추가 대출을 받고, 손실이 누적되자 대부업자와의 사이클에 빠지게 된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군 장병이 채무조정을 신청한 금액은 2021년 56억 원에서 2025년 102억 원으로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군 장병 부채 증가의 배경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다. 먼저 평일 일과 후와 휴무일에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된 점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이 조치는 병사들의 정보 접근성을 크게 높였지만, 동시에 온라인 도박·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에 노출되는 창구도 열어줬다.
또한 장병 월급의 인상이다. 병장 월급이 150만 원에 가까워지며, 숙소 밖에서의 소비와 여가 비용이 늘어났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여유 자금이 늘자’가 아니라 ‘융통 가능한 자금이 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휴대전화로 게임머니 거래, 주식·가상자산 투자, 온라인 도박 사이트 접속이 동시에 가능해지면서, 장병들은 마치 한 번에 여러 금융시장에 진입하는 것 같은 심리적 환경 속에 놓였다.
군대 내 사이버 도박 문제는 이미 구조적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국회와 군 당국 자료를 토대로 한 분석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군 장병의 온라인 도박 적발 건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고, 적발된 장병 중 2명 중 1명은 1000만 원 이상의 돈을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불법 도박 사이트는 ‘군인 전용 이벤트’라는 타이틀로 장병을 직접 겨냥한 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
문제는 도박 행위가 단순 금전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박은 군사기강 훼손, 수면·일과 태만, 동료 간 금전 분쟁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군 내부에서도 ‘침묵의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온라인 도박은 장시간 혼자서 화면에 집중하는 특성 때문에, 군대라는 고립·압박 환경과 결합될 경우 중독 촉진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부채는 군대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청년 세대 금융 취약성의 전초전 성격을 띤다. 병역 의무라는 특수한 구조 때문에, 군 복무 기간 동안 자신이 빚을 갚기 어렵게 되면 이 부채는 제대 후 주택 구입, 결혼, 자녀 양육 등 인생 전반의 금융 설계에까지 직격탄이 된다.
그럼에도 군 금융교육은 간헐적이고 체계가 약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일부 장병들은 ‘빚을 내서 투자하면 원금이 저절로 불어난다’는 식의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으며, 확률·위험관리·복리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위험 상품에 동시에 투자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최근 대응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교육협의회에 국방부를 포함시키고, 군 단위 금융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금감원은 군 복무 중인 현역병을 상대로 한 과도한 대출 영업을 제한하고, 일부 대부업체에게 신규 대출 취급을 중단하도록 지도하는 등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군 장병의 부채 문제는 군대 내부의 ‘생활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제대 후에는 일반 사회 초년생의 부채 문제로 이어진다. 빚투·온라인 도박으로 인한 고금리 대출은 신용도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향후 은행 대출이나 집을 사는 과정에서도 악재로 작용한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체계적 금융 교육과 군 내부의 실효성 있는 예방·지원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불균형한 몫을 개인이 떠안게 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군 금융교육을 단순 ‘주의 홍보’ 수준을 넘어 실제 예산·위험관리·채무 관리 플랜 작성까지 포함한 실무형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군 내 심리상담·법률 상담 체계와 연계해 ‘빚 골프’에 빠진 장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대부업자와의 상태를 재정립할 수 있는 제도적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 사용과 급여 상승은 군 장병의 선택권을 넓혔지만, 제대로 된 금융·도박 위험 교육이 부재한 상황에서 오히려 빚투·온라인 도박이라는 새로운 위험 문을 열어 놓았다. 정부와 군이 지금 이 문제를 ‘단기 이슈’가 아니라, 청년층 금융 취약성의 관문을 지키는 장기 과제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