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멈추면 한국경제도 '흔들'···수출·세수·자본시장까지 파업 공포

노경은 기자 2026. 5. 1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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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앞두고 사장단 대국민 사과···“조건 없이 대화” 이례적 호소
생산라인 비상관리 돌입···파업 현실화 땐 긴급조정권 검토론도 부상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이미지=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 노조 총파업 예고일을 앞두고 사실상 비상 대응 국면에 들어갔다. 사측은 이례적으로 대국민 사과와 함께 노동조합에 조건 없는 대화를 요청했고, 반도체 생산 차질에 대비한 비상관리 체계도 가동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공정은 한 번 멈추면 즉시 재가동하기 어렵고 장비 점검과 수율 확인, 품질 검증, 고객사 납기 조정까지 순차적으로 거쳐야 하는 산업이다.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충격은 삼성전자 한 기업의 노사 갈등에 그치지 않고 협력사 생태계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국내 수출과 세수, 자본시장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노사 갈등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 리스크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을 좌우하는 핵심 품목이다. 삼성전자가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최대 시가총액 종목인 만큼 파업 충격이 생산라인을 넘어 금융시장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기에 평택캠퍼스를 비롯한 주요 생산거점에는 협력사와 지역 상권까지 얽혀 있어 생산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파급 범위는 더 넓어질 수 있다.

◇사장단까지 나섰다···"노조를 한 가족으로 생각, 조건 없이 대화"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사장단은 총파업을 엿새 앞두고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노조에 조건 없는 대화를 요청했다. 사측은 "노조를 한 가족이자 운영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조건 없이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이라며 "노조도 국민들의 우려와 국가 경제를 생각해 조속히 대화에 나서 줄 것을 거듭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과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 부문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해 총 18명의 사장이 입장문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 사장단 명의의 공동 입장문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사측이 이번 노사 갈등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장단은 "반도체는 다른 사업과 달리 24시간 쉬지 않고 공정이 돌아가야 하는 장치 산업으로 결코 파업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뢰 자산을 완전히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은 매 순간마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무한경쟁의 시대"라며 "회사 내부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사장단은 대국민 사과도 했다. 사측은 "성취가 커질수록 우리 사회가 삼성에 거는 기대가 더 엄격하고 더 커지는데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며 "저희 노사 문제로 국민들과 정부에 큰 부담과 심려를 끼쳐드렸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깊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단순한 노사 협상 메시지를 넘어 국민과 정부를 상대로 사과 입장을 낸 것은 이번 파업 가능성이 이미 기업 내부 이슈를 넘어선 경제·산업 현안으로 확산됐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사측은 이날 오전에도 노조에 공문을 보내 대화를 요청했다. 사측은 "협상 타결을 바라는 임직원과 주주, 국민의 바람에 부응해 조건 없이 다시 만나 대화할 것을 거듭 제안한다"며 열린 자세로 협의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제도화, 투명화 등에 대한 입장도 설명했다. 사측은 지난 3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에서 기존 OPI, 즉 초과이익성과급 제도와 관련해 재원을 영업이익 10%와 EVA, 경제적 부가가치 20% 중 선택하는 투명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화·상한 폐지 요구와 관련해서는 기존 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추가 상한이 없는 특별보상 제도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노조는 총파업 이후에야 협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사측 공문에 대해 "우리에게 보낸 공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며 "6월 7일 이후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또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잘 이행할 생각"이라며 파업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다만 전영현 부회장 등 경영진이 직접 면담을 추진하는 만큼 향후 만남에서 협상이 이어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심문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파업 18일이 한 달 공백 될 수도···생산 차질 땐 수출·세수·자본시장까지 부담

삼성전자는 노조 총파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라인 운영 점검과 비상관리 체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 참가 신청자는 4만3286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한 일부 인력 이탈 수준을 넘어 생산라인 운영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규모라는 점에서 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일반 제조업처럼 파업 당일 대체 인력을 투입하거나, 생산이 멈춘 뒤 곧바로 다시 가동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라인 초입에 웨이퍼가 투입되면 수백 개 공정을 거쳐 완제품으로 출하된다. 공정마다 장비 상태와 온도, 습도, 화학물질, 클린룸 환경, 검사 기준이 맞물려 움직인다. 특정 공정에서 속도가 늦어지거나 인력 공백이 생기면 중간 공정에 물량이 쌓이고, 품질 관리 부담도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파업 전부터 신규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고 HBM과 첨단 선단 공정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생산 우선순위를 다시 짜는 방식의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를 '웜다운(Warm-down)' 작업으로 보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생산량을 조정하고 라인 충격을 줄이기 위한 사전 조치다. 제한된 인력과 장비를 수익성이 높고 고객 납기 부담이 큰 제품에 우선 배분하는 방식으로 갑작스러운 라인 중단을 막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파업 충격이 노조가 예고한 18일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공정별 장비 상태 점검, 수율 확인, 품질 검증, 고객사 납기 조정 등이 순차적으로 뒤따른다. 파업 기간 일부 공정이 멈추거나 속도가 늦어질 경우 이후 병목 현상이 불가피하다. 생산라인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리는 데도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

KB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때 파업이 18일간 지속될 경우 종료 이후에도 자동화 라인의 재가동 및 정상화 과정에 추가로 2~3주의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18일간의 파업이 실제로는 한 달 이상 생산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파업 기간이 짧더라도 반도체 공정 특성상 충격이 시간차를 두고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해당 기간 직접 피해만 20조~30조원 이상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단순 환산하면 하루 1조원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제조공정이 전면 중단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피해 규모가 100조원대까지 거론된다는 관측도 있다.

다만 이 같은 수치는 파업 기간, 실제 참여 인원, 생산라인별 대체 인력 투입 가능성, 재고 수준, 고객사 납기 조정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재로서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추산인 만큼 실제 피해 규모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반도체 생산라인은 한 번 흔들리면 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구조다. 공정이 멈추는 순간 손실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멈춘 라인을 다시 정상화하는 과정에서도 추가 비용과 시간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파업의 본질적 리스크를 단순한 일시 생산 차질이 아니라 재가동 리스크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부담은 고객 신뢰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는 엔비디아, AMD,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와 연결돼 있다. 이들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라 HBM과 고성능 D램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공급이 빠듯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되면 고객사들이 대체 공급선을 찾는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는 단가와 성능뿐 아니라 납기 안정성이 핵심 경쟁력이다. 한 번 이탈한 고객은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공급에 구멍이 생길 경우 CXMT, YMTC 등 중국 메모리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메모리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과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기술 격차를 좁혀왔다. 아직 최첨단 제품 경쟁력에서는 삼성전자와 차이가 있지만 글로벌 고객사들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체 공급선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일부 레퍼런스를 확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파업이 단기 물량 차질을 넘어 중국 반도체 굴기를 앞당기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생산라인 밖으로 번지는 충격도 부담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경우 생산라인 1개당 협력사를 포함해 약 3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산라인이 흔들리면 장비·소재·부품·물류·시설관리 등 협력사와 지역 상권까지 함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중소 협력사의 경우 특정 고객사 의존도가 높아 단기간의 생산 조정도 실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출과 세수 측면에서도 파장은 작지 않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을 좌우하는 핵심 품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과거 반도체 수출물량이 10% 감소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0.78%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차질이 장기화돼 수출 물량과 납기에 영향을 주면 국내 성장률과 경상수지, 법인세 수입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자본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최대 시가총액 종목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흔들리면 코스피 전체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삼성전자는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핵심 종목이다. 파업 리스크가 장기화되거나 생산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외국인 자금 흐름과 투자심리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도체 공급망 불안이 주가 변동성으로 이어지고, 다시 자본시장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정부가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출 경우 피해가 한 기업의 노사 갈등에 그치지 않고 협력사 생태계, 국내 수출, 세수, 자본시장,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는 국가기간산업이자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이다. 파업이 임박한 뒤 대응에 나서면 늦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76조에 근거한 예외적 조정 절차다.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다. 긴급조정이 결정되면 해당 노조는 즉시 30일간 파업 등 일체의 쟁의행위를 중단해야 하며,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 조정 절차에 착수한다. 노동권 제한 논란이 뒤따를 수 있는 만큼 발동 요건은 엄격하지만, 반도체 생산 차질이 국가경제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검토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노사 간 대화를 촉구하는 동시에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 장관은 하루 전인 14일 SNS를 통해 "노사 양측이 조속히 대화를 재개해달라"고 촉구하면서도 "이번 사안의 중대성과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 어떠한 경우에도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며 "만약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긴급조정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임금·성과급 갈등을 넘어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긴급조정권 발동은 정부와 기업 모두에 상당한 부담이다. 긴급조정권은 과거 대한조선공사, 현대자동차,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파업 등에서 발동된 사례가 있다. 마지막 발동은 2005년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때였다. 이후 실제 발동 사례가 없었던 만큼, 이번에 발동될 경우 노동권 제한 논란과 노동계 반발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특정 기업의 노사 갈등에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사장단이 대국민 사과까지 내놓은 배경에 이 같은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 안정성을 시험하는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에 공급망 신뢰가 흔들리면 경쟁사와 후발주자에게 기회를 내줄 수 있다. 특히 HBM과 고성능 D램은 단순 범용 메모리와 달리 고객사와의 장기 협력, 품질 검증, 납기 안정성이 중요하다. 공급 차질이 한 번 발생하면 고객사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노사 자율 협의가 우선이라는 원칙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번 사안은 소액주주와 협력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이 모두 걸린 문제"라며 "파업이 현실화돼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질 경우 정부도 긴급조정권을 포함한 법적 대응 수단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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