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수다' 이택근 '노래'는 나의 힘"... 영웅들 꿈 싣고 13년 달린 행복한 기사

김형준 2026. 5. 1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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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구단버스 기사 송인석씨 인터뷰
"감각 떨어졌다" 정년 2년 남기고 은퇴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송인석 키움 히어로즈 야구단 버스 기사가 자신이 운행한 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강정호, 박병호,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 송성문까지. 다 원하던 무대 밟았으니 내 일처럼 기뻤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으니까요."
-송인석 키움 구단버스 기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키움 출신 선수 이름을 하나씩 읊던 송인석(58)씨는 소년처럼 웃었다.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송씨는 이날을 끝으로 13년간 이어온 키움 선수단 버스 기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내외야수들이 탑승하는 2호차 운전대만 10년 넘게 잡아 온 그는 선수들과 함께 전국을 누빈 지난 세월을 두고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2013년 2군 버스 기사로 '입단'한 그는 이듬해 1군으로 '콜업'됐다. 이후 줄곧 1군 선수단 2호차를 책임졌다. 선수단 차량 3대 중 2호차엔 내외야수만 탑승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걸까? 송씨는 "야수들이 정말 다 착했다"며 선수들 자랑을 늘어놓느라 바빴다.

특히 올해 현역 은퇴 후 키움 잔류군 선임코치가 된 박병호(40)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박)병호의 배려는 아직도 잊지 못해요. 야간 원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그런데도 맨 앞자리에서 잠을 안 자요. 그리고 나한테 계속 말을 걸어줬죠. 기사인 나도 팀의 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해 주는 느낌이었어요. 선수단 안전을 함께 책임진다는 마음이 느껴졌죠.”


급여는 줄었지만…. 선수들 꿈 싣고 달린 13년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송인석 키움 히어로즈 야구단 버스 기사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송씨는 스스로를 "행복한 기사"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니다. 선수단 버스를 몰기 전 그는 8년 가까이 대형 운수회사에서 고속버스 기사로 일했다. 하루 1,000㎞ 넘게 운전할 때도 많았지만, 대신 수입이 많았다. 그는 “같은 회사 동료 추천으로 선수단 버스를 시작했는데, 당장 손에 쥐는 급여가 확 줄었다”며 “두 아들 교육비부터 걱정됐다”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그가 운전대를 놓지 않은 건 젊은 선수들의 꿈을 싣고 전국을 달리는 보람과 재미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송씨가 키움과 함께한 13년 동안 구단 이름은 넥센에서 키움으로 바뀌었고, 감독도 다섯 명(염경엽→장정석→손혁→홍원기→설종진)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내뿜는 날것 그대로의 열정은 변치 않았다고 했다. 송씨는 “지방 원정에서 승리하고 서울 올라올 때 선수들 ‘떼창’ 들으면서 운전하면, 피로가 싹 없어질 정도였다”며 “특히 이택근(현 티빙 해설위원)이 선수 시절 노래를 정말 잘했다”며 웃었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다. 뜻밖의 부상이나 방출로 어느 날 갑자기 1군 버스 좌석이 비어 있는 보습을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더 속상했다”면서 "그저 '다치지 말라' '다 잘될 거다’라고 격려하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브레이크는 부드럽게… 기사 실수 하나가 팀 흔들 수도”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송인석 키움 히어로즈 야구단 버스 기사가 자신이 운행하던 차량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아직 정년까지 2년 정도 남았지만, 조금 일찍 은퇴를 결심한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처음엔 “이젠 운전을 그만하고 싶었다. 고향(대전) 인근인 충남 금산군에서 펜션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송씨는 나긋이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나이가 드니까 도로에서 반응이 조금씩 늦어진다는 걸 스스로 느꼈다. 내 실수 하나가 선수단 안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안정적인 급여 생활보다, 선수 안전을 먼저 고려한 결정이었다는 얘기다.

이날 그는 후임 기사를 뽑는 마지막 임무도 성실히 수행했다. 지원자가 무려 50명가량 몰린 가운데 면접과 도로 주행, 운전 매너까지 꼼꼼히 살폈다고 한다. 그리고 후임에게 가장 강조한 건 ‘부드러운 운전’이었다.

"선수들이 밤에 잠에서 깨지 않도록, 낮엔 놀라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조심조심 밟아야 해요. 그러려면 도로 위 상황 판단이 정말 중요하죠. 냉난방 관리도 필수입니다. 휴게소에 설 때마다 선수들에게 '온도 괜찮은지' 수시로 물어보세요. 기사의 작은 실수가 팀 전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늘 생각해야 합니다.”

송인석 키움 히어로즈 야구단 기사가 자신이 운행하던 버스에서 키움의 안타 세리머니를 펼쳐보이고 있다. 강예진 기자

구단도 오랫동안 선수단의 발이 돼준 그에게 마지막 예우를 건넸다. 키움은 3일 두산과 홈경기에서 송씨에게 시구를 맡겼고, 동료 기사 안상진, 이진구씨도 각각 시타와 시포를 맡아 그라운드에 섰다. 선수들은 그가 지켜 온 2호차 안에서 깜짝 파티를 열었다.

송씨는 "이제 프로야구 경기 시간엔 주로 펜션 주변의 풀을 뽑고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았다. "풀 뽑으면서도 계속 응원할 겁니다. 내 '영웅'들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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