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고도근시, 대학 가서 라식 하면 된다? “망막·시신경 못 되돌려”

윤은숙 기자 2026. 5. 14.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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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를 단순한 시력 문제로 방치하면, 초고령사회 한국은 예상보다 훨씬 큰 실명 질환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겨레와 대한안과학회가 공동 기획한 연속 기획 '근시 공화국을 벗어나자'의 첫 인터뷰이를 만난 건 지난달,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안과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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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겨레] ‘근시 공화국을 벗어나자’ 2
김찬윤 대한안과학회 이사장 인터뷰
김찬윤 대한안과학회 이사장은 근시를 단순한 시력 문제로 방치하면 초고령사회 한국은 예상보다 훨씬 큰 실명 질환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승식 기획위원

“근시를 단순한 시력 문제로 방치하면, 초고령사회 한국은 예상보다 훨씬 큰 실명 질환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겨레와 대한안과학회가 공동 기획한 연속 기획 ‘근시 공화국을 벗어나자’의 첫 인터뷰이를 만난 건 지난달,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안과병원이었다. 김찬윤 대한안과학회 이사장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근시 유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고도근시는 여러 실명 질환의 주요 위험 인자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이 두 흐름이 맞물릴 경우, 그 의료·사회적 비용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녹내장 치료 권위자인 그는 2024년부터 대한안과학회를 이끌고 있다. 대한안과학회는 국가건강검진 안저검사 편입, 청소년 근시 및 실명 질환 예방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꾸준히 제안해온 국내 최대 안과 학술단체다.

-안과학회에서 근시를 단순한 시력 문제가 아닌 ‘국가 전략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배경은 무엇인가.

“지금 근시가 빠르게 진행되는 청소년들이 노인이 됐을 때를 생각해봐야 한다. 근시 환자가 많다는 건 고도근시로 나아가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고도근시는 망막박리, 녹내장,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등 주요 실명 질환 위험을 크게 높인다.

실명이 발생하면 당사자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돌봄 인력도 필요해진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사회적 생산성에서 이탈하는 셈이다. 노동 인구가 줄어드는 초고령사회에서 이는 단순한 개인 건강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다. 실명이 생긴 뒤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 사람들이 더 오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한국인이 유독 근시에 취약한 이유가 있나. 유전적 요인도 있다고 했는데.

“한국인을 포함해 중국 동북부, 싱가포르, 대만 등 중국계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근시 유병률이 높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연구를 보면 동아시아인은 근업 시간(가까운 거리를 오래 보는 시간)이 길고 야외 활동이 부족할 때 근시가 진행되는 속도가 서구권 인구보다 훨씬 빠른 경향이 있다. 특히 산업화 이후 학업과 근업 시간이 길어지고 실내 생활이 늘면서 근시가 크게 늘었다. 결국 유전적 취약성과 생활환경 변화가 겹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의 근시 진행이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디지털 기기 영향도 있나.

“디지털 기기가 근시 진행을 직접 유발한다는 결정적 증거가 확립된 것은 아직 아니다. 다만 개연성은 충분히 높다. 디지털 기기를 오래 사용하면 두 가지 변화가 동시에 나타난다. 근업 시간이 늘어나고 야외 활동 시간은 줄어든다. 이 두 요소 모두 근시 진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디지털 기기 도입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데, 시범사업을 거쳐 눈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확인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본다. 현재 학교에서 사용하는 기기 대부분은 엘시디(LCD) 화면이다. 화면이 작을수록 아이들은 기기를 눈 가까이 가져가게 되고, 그만큼 눈의 조절력을 많이 쓰게 된다. 이런 환경은 근시 진행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고도근시가 진행되면 눈 안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나.

“근시는 안구가 길어지면서 생긴다. 안구 성장은 보통 20대 중반, 늦어도 20대 후반에는 멈춘다. 한국 성인의 평균 안구 길이는 24㎜ 수준인데, 고도근시로 진행하면 26㎜를 넘고 심한 경우 30㎜ 이상인 경우도 있다.

풍선을 크게 불면 벽이 얇아지듯 안구가 길어질수록 망막도 얇아진다. 일반적인 근시는 성인 초기에 진행이 멈추지만, 일부는 평생 안구가 계속 커지는 ‘악성근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망막 변성이 생기거나, 안구를 감싸는 공막은 커지는데 망막이 따라가지 못해 구조적 분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드물지만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시키다가 대학 가서 라식 수술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매우 위험한 오해다. 라식·라섹은 각막을 깎아 빛의 굴절을 바꾸는 방식으로, 안경이나 렌즈 없이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편의 시술에 가깝다. 하지만 고도근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눈 뒤쪽에 이미 생긴 변화, 즉 망막이나 시신경 손상은 수술로 되돌릴 수 없다.

나안 시력이 좋아졌다고 해서 고도근시로 인한 위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망막박리나 녹내장 위험은 수술 뒤에도 그대로 남는다. 편의성이 높아졌을 뿐 질병 위험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라식·라섹 이후에도 평생 정기적인 안과 검진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있나.

“중국과 싱가포르는 이미 학교에서 야외 활동 시간을 의무화하고 일정 시간 이상 근업을 하면 눈을 쉬게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단순 권고 수준이 아니라 제도화된 정책이다. 대만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이런 정책이 근시를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예방 효과 가능성이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라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시작해야 10년, 20년 뒤 변화를 볼 수 있다.”

-결국 아동기·청소년기의 시력 관리가 중요한 것 같다. 현재 학교 검진 체계는 어떤 상태인가.

“대한안과학회는 두 가지를 꾸준히 건의해왔다. 국가건강검진에 안저검사를 도입해 주요 실명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자는 것, 그리고 청소년 근시 예방을 위한 국가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 많은 학교가 시력 검진을 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병원 방문을 권고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맞벌이·한부모·조손가정에서는 아이 눈 건강을 지속적으로 챙기기가 쉽지 않다. 근시 진행이 빠른 아이는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현실적으로 이를 꾸준히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은 청소년 근시 실태를 체계적으로 추적하는 국가 단위 데이터가 부족하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일부 포함된 적은 있지만, 학교 기반의 장기 추적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현황을 정확히 알아야 정책도 정교해질 수 있다. 데이터 구축이 출발점이다.”

-검증되지 않은 근시 치료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약을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는 식의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나고, 일부 비의료기관에서 ‘시력 치료’를 표방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 근시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반드시 약물을 이용한 조절마비 검사를 거쳐야 한다. 일시적인 가성근시를 제대로 감별하지 못한 채 잘못된 처방이 반복되면 실제 근시로 굳어질 수 있다. 아이 눈은 한번 나빠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반드시 검증된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안경 쓴 아이들이 너무 흔하다보니 근시를 그냥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이도 많다. 흔하다는 것이 안전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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