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떠돌던 순종의 효심과 이광사의 필치, 형제의 기증으로 돌아왔다

김소연 2026. 5. 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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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제예필(睿製睿筆).'

2024년 일본의 한 비공개 경매장에 나온 현판 속 네 글자가 도쿄에서 고미술 거래업체 청고당을 운영하는 김강원(58)씨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동생 김강원씨가 순종예제예필현판을, 형 김창원씨가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각각 기증했다.

김강원씨가 일본 경매에서 발견한 순종예제예필현판은 1892년 궁중 진찬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왕실 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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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김강원 형제,백자청화이진검묘지·순종예제예필현판 기증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순종예제예필현판'과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기증한 김창원(오른쪽)·김강원 형제가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뉴시스

'예제예필(睿製睿筆).'

2024년 일본의 한 비공개 경매장에 나온 현판 속 네 글자가 도쿄에서 고미술 거래업체 청고당을 운영하는 김강원(58)씨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예제는 왕세자가 직접 지은 글, 예필은 직접 쓴 글씨를 뜻한다. 용과 봉황 장식이 달린 현판은 한눈에 봐도 조선 왕실 유물이었다.

"왕실 현판은 처음부터 상품으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씨는 "불행한 시절 해외로 나간 유물이라면, 시장에 나와 있더라도 한국으로 반환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8일 기증을 통해 환수된 '순종예제예필현판'과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처음 공개했다. 이번 기증이 더욱 눈길을 끄는 이유는 두 유물의 기증자가 형제라는 점 때문이다. 동생 김강원씨가 순종예제예필현판을, 형 김창원씨가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각각 기증했다.

순종예제예필현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김강원씨가 일본 경매에서 발견한 순종예제예필현판은 1892년 궁중 진찬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왕실 현판이다. 어머니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테두리를 연꽃과 접시꽃 문양 등으로 꾸몄다. 귀한 글귀라는 상징성을 반영해 녹색 글씨를 사용한 점도 흔치 않은 사례다. 그는 "경매는 폐쇄적인 시장이라 몇 시간 안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며 "양식적으로 조선 왕실 유물이라는 것은 확신했다"고 말했다.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 중인 형 김창원(59)씨가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구한 곳도 일본이다. 지난해 도쿄 고미술 상가를 둘러보던 중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백자판의 예서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취미로 서예를 공부하던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 '광사(匡師)'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놀랐다.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명필로 꼽히는 이광사의 이름이었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 후기 문신 이진검의 생애와 행적 등을 기록한 묘지(墓誌)다. 1745년에 제작된 것으로 푸른 안료로 글씨를 쓴 백자판 10장으로 이뤄졌다. 글은 이조판서를 지낸 이덕수가 짓고 이진검의 아들 이광사가 썼다. 특히 이광사의 글씨 가운데에서도 드물게 예서체로 쓰여 서예사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김창원씨는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재단과 이야기하면서 중요성을 더 알게 됐다"며 "이광사가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국가에 기증할 만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형제의 부친은 1990년대 한국고미술협회장을 지낸 김대하씨다. 형은 불교미술사를 전공해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동생은 일본에서 고미술업에 종사하고 있다.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고미술을 접했고 기회가 되면 기증하라고 배웠다.

이들은 해외에 있는 모든 한국 문화유산이 돌아와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왕실 유물이나 묘지처럼 애초에 시장 유통을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문화유산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문화유산 기증인 김강원씨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 회복 차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원씨는 기증 전 묘지 사진을 찍어 뒀다고 했다. "정말 색다른 글씨였습니다. 하지만 혼자 보기엔 아깝더군요.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제 가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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