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도 소용없다…여름까지 ‘답 없는’ 석유 재고 비상 [디브리핑]

도현정 2026. 5. 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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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 인근 퍼미안 분지 유전의 원유 매장지 근처에서 펌프잭이 가동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미국과 이란이 당장 종전 협상에 합의한다 해도 석유 재고는 이미 한계에 이르러, 향후 몇 주간은 공급 쇼크를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는 여름까지 현재의 석유 공급 비상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당장 미국과 이란이 평화 협정에 합의하더라도, 중동에서 석유 선적이 재개돼 전 세계 정유사로 도달하기까지는 수 주가 소요된다. 정유사들은 이미 중동에서의 공급 쇼크를 상쇄하기 위해 상업적 비축유부터 해상 저장분, 비상 예비분까지 동원 가능한 물량을 모두 풀어낸 상태. 주요 에너지 기업 경영진과 투자은행 전문가들은 중동에서의 석유 생산과 공급이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에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 내다봤다. 여기에 북반구에서 에너지 소비가 정점에 이르는 여름 성수기까지 감안하면, 최소한 올 여름까지는 석유 재고가 비상인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패트릭 푸얀네 토탈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에 “이달 중에 전쟁이 끝나더라도 우리는 분명히 매우 낮은 재고 상태로 분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하루 1000만~1300만 배럴의 재고가 빠져나갈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비축분에서 최소 5억배럴이 소비됐다고 추정했다. 이는 미국의 원유 재고(4억6000만배럴)보다 더 큰 규모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석유 재고 소진 속도에 대해 전쟁 발발 직후인 2월 말 105일분이었던 것이 이달 말에는 98일분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리스타드 에너지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이달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6억배럴의 석유 공급 손실이 발생했다. 리스타드 에너지의 수석 경제학자인 클라우디오 갈림베르티는 이달 말 해운 정상화가 시작된다고 가정하면, 공급이 정상화될 때까지 전 세계는 12억~20억배럴의 공급 손실을 볼 것이라 말했다. 이는 전쟁 전 글로벌 재고의 16~27%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석유 공급 쇼크 우려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가장 큰 요인이다. 여름이 다가오면 북반구를 중심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테고, 기업에서는 생산시설 재가동을 이유로, 정부에서는 비축유 재건 등으로 석유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에너지 공급난을 겪었던 국가들은 비축유 구축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호주는 6일(현지시간) 연료 예비분 확충을 위해 72억2000만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개별 국가들이 최소 90일분의 석유 재고를 보유해야 한다는 EU 요건에 특정 항공유 보유 요건을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중동 지역에서 석유 공급이 정상 수준으로 재개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엑손모빌의 대런 우즈 CEO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이후 밀린 선적 물량이 해소되면서 석유 흐름이 정상화되는 데 1~2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이 중동에서 유럽연합까지 이동하는 데 평균 30일이 소요된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석유 생산 능력이 일시적으로 저하된 상태라는 것도 공급 재개를 늦추는 요인이 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수장인 윌리 월시 사무총장은 현재 중동 지역에서 하루 약 200만배럴의 정제 능력이 타격을 입은 상태라며, 향후 아프리카, 아시아 및 유럽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차질을 빚을 것이라 내다봤다. 노르웨이 에너지기업 에퀴노르의 안데르스 오페달 CEO는 6일 로이터에 이란 전쟁이 끝나도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최소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공급망 쇼크는 전 세계가 중동 대신 미국의 석유를 찾는다며, 애써 위기를 외면했던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휘발유 재고가 올해 늦여름까지 약 1억9800만 배럴로 떨어져 역대 여름철 재고 중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 예측했다. 지난 1일 기준 미국 휘발유 재고는 2억2000만 배럴을 약간 밑돌아 2014년 이후 이 시기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미국의 석유 수출이 급증한 것이 재고량을 급속도로 소진하게 한 배경이 됐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의 석유 기업 입장에서는 중동 대신 미국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수출이 급증하는 호재가 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달 말 미국의 휘발유, 디젤, 항공유를 포함한 정제 연료가 하루 820 배럴 이상 수출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수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석유 기업들이 올해 이란 전쟁으로 인해 600억달러의 추가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가와 재고를 생각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사모펀드 칼라일의 에너지 부문 선임 고문인 제프 커리는 미국의 석유 수출이 급증하면서 재고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경유 재고는 2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커리는 FT에 “공급이 중단될 때 공급 부족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재고가 바닥날 때 부족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물가 안정의 지표로 내세웠던 유가가 오르는 것도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고민이 큰 지점이다.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3달러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즈호 증권의 원자재 전문가인 로버트 야거는 “현 행정부에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휘발유 가격이 5달러에 도달하면 정부가 수출 금지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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