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65] 혁명가 베토벤의 항변

이응준 시인·소설가 2026. 5. 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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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5월 7일, 나는 오스트리아 빈 케른트너토르 극장(Theater am Kärntnertor) 객석에 있다. 교향곡 9번 ’합창’이 초연되고 있지만,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상태라 지휘대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을 뿐 지휘는 미하엘 움라우프가 하고 있다.

베토벤은 1790년대부터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마지막 악장의 가사로 삼고 싶어 했다. 교향곡에 합창을 넣는 구조, ‘환희의 송가’ 같은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 등은 당시 파격이었는데, 베토벤은 ‘음악’에서만이 아니라 ‘음악가’로서도 그러했다. 그는 예술가에게 돈을 지원하는 귀족들에게 감사하지 않았고, 왕보다도 우월한 창작자(창조자)인 자신을 추앙하라고 요구했다. 모차르트를 포함한 베토벤 이전 음악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음악적 장인(匠人) 정도였다. 그러나 베토벤의 편지와 논평 속에는 ‘예술’은 물론 ‘예술가’, ‘예술성’ 같은 자의식 들끓는 단어들이 가득 차 있었다.

1971년 음악 평론가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해럴드 C 숀버그는 이러한 베토벤을 ‘본에서 온 혁명가’라고 명명한 다음 말한다. “베토벤의 독창성은 다른 작가와 다르다는 게 아니었다. 시대와 달랐다. 그러면서도 당대를 굴복시키며 미래로 진격했다.” 베토벤은 음악에 대해서는 낭만주의적인, 사회에 대해서는 혁명적 관점을 취했다. 여기서 후자는 공화정, 민주정 정도를 의미하며, 스스로 황제가 되기 이전의 나폴레옹을 지지해 작곡한 교향곡 3번 ‘에로이카’로 표현된다. 교향곡 9번 ‘합창’은 후대 낭만주의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에로이카’는 19세기 음악의 시작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벌레나 짐승 같은 ‘인간’에 절망하다가도, 과학과 예술의 빛 앞에서는 종종 그런 생각을 접게 된다. 베토벤의 음악은 인간이라는 종(種)에 대한 변호이자 어쨌거나 인간이 벌레와 짐승은 아니라는 항변을 준다. 나는 이것이 그가 청각을 잃고도 위대한 작곡을 해낸 사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물론 실존적 구원은 각자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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