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묻지마 범죄’…광주서 생면부지 여고생 살해범 검거(종합)
경찰, 조사 후 구속영장 신청
"외출조차 두려워" 시민 불안
전국서 불특정 공격 연간 40건

광주 도심 한복판에서 생면부지의 여고생을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낯선 이를 겨냥한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로 꽃다운 생명이 스러지고 말았다. 2년 전 순천 박대성 사건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재현된 비극에 시민들은 "나도 범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극한의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
◇20대 용의자, 11시간 만에 검거
광산경찰서는 5일 살인·살인미수 등 혐의로 A(24)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이날 0시 11분께 광주 광산구 월계동 전자공업고등학교 인근 인도에서 고등학생 B양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현장 인근에 있던 고등학생 C군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B양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C군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A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후 광주경찰청 광역수사대와 형사기동대 1팀 등 수사 인력을 투입해 A씨의 동선을 추적했다.
A씨는 범행 발생 약 11시간 만인 이날 오전 11시 24분께 광주 광산구 월계동 자신의 주거지 일대에서 수색·잠복 중이던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면담과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A씨의 범행 동기와 사건 전후 행적을 면밀히 확인할 방침이다. 또 흉기 준비 경위와 범행 계획성 여부, 도주 과정 등도 함께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어린이날 비극…현장 참혹
참극이 벌어진 현장은 공포와 분노로 가득 찼다.
이날 오전 찾은 사건 현장 인도 가로수 아래에는 투박하게 쌓인 흙더미가 보였다. 불과 10시간 전 흉기에 피습된 고교생 2명의 혈흔을 급하게 가린 흔적이다. 흙더미로 채 가리지 못한 검붉은 핏자국은 한밤의 참혹함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평소 차량 통행량이 많고 대학과 고등학교가 인접한 인도지만, 상가가 없는 구간이라 자정 전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대로변임에도 현장을 정면으로 비추는 폐쇄회로(CC)TV 카메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건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지난 2024년 순천에서 벌어진 10대 여성 살해 사건의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도 전에 광주 도심에서 재현된 비극에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는 시민들도 공포감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시민 국윤정(55·여)씨는 "인적이 드물긴 해도 대로변이라 안심했던 곳이다"며 "순천에서 박대성 사건이 터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고 몸서리쳤다.
평소 이 길을 자주 이용한다는 50대 주민은 "뒤쪽에 대학교와 고등학교가 있고 차량도 많이 다니는 곳이라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전혀 몰랐다"며 "당분간은 이 길을 못 걸을 것 같다"고 말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김모(26)씨는 "앞으로 밖에 나갈땐 호신용품을 꼭 챙기겠다"면서 "쉬는 날엔 '집콕'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일상 파괴하는 이상동기 범죄
현장에서 확인된 당시 상황은 절박했다. 부상당한 고교생의 친구 부모라고 밝힌 한 시민은 "여고생이 전화로 '남성이 흉기를 들고 쫓아온다. 아파트 쪽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말했고, 길 건너편에 있던 학생이 비명을 듣고 도우러 갔다가 함께 다쳤다고 들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린 생명이 무참히 짓밟힌 현장에는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번 사건은 전형적인 '이상동기 범죄'의 양상을 띠고 있다.
가해자 A씨는 "자살을 고민하던 중 범행을 결심했고, 전혀 모르는 사이인 피해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한 원한이나 관계없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묻지마 범죄'다.
50대 김모 씨는 "근처 아파트에 사는데 이런 사건이 난 줄도 몰랐다"며 "학교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놀랍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묻지마 범죄는 더욱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심신미약 같은 이유로 풀려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30대 최영준 씨도 "대학가는 시끌벅적한데 여기는 주변에 가게 등 들릴 곳이 없어 밤에는 좀 으슥하다고 느끼긴 했다"면서도 "그래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고 기사를 보고 경악했다. 어린 생명을 앗아간 범인을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관리망 촘촘히"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이상동기 범죄 예방과 관련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동기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관련이 없고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범죄를 말한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불리다가 2022년부터 명칭을 정하고 통계 기록을 시작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이상동기 범죄는 2023년 46건, 2024년 42건 등 매년 4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이상동기 범죄 유형 중 살인·살인미수 혐의가 35.4%를 차지했으며, 피의자 성별은 남성이 96명으로 여성보다 3배가량 많았다.
법무부와 경찰청은 전자발찌 부착자 등 고위험 대상자 중심으로 이상동기 범죄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이 사건 피의자 장씨처럼 해당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 범죄를 예방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상동기 범죄는 사전에 예측하거나 차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정 부분은 불가피한 위험으로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며 "가해자의 정신적·심리적 상태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치료·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야간 시간대 외진 곳을 피하고 주변 환경을 고려하는 등 개인 차원의 기본적인 예방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지섭 기자 l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