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 속 정상회담…중 최대한 압박하는 미, 미 제재 권력 겨냥한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자인 중국을 최대한 압박해 협조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지만 중국의 강경대응으로 불확실성이 추가됐다. 중국이 자국 기업에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라는 전례 없는 조치를 내리면서, 미국의 ‘제재 권력’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시험대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상무부가 지난 2일 발표한 ‘미국 제재 준수 금지 명령’은 2021년 제정한 ‘외국 법률 및 조치의 부당한 역외 적용 차단 방법’을 실제로 발동한 첫 사례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을 거치지 않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제재 조치에 대해 ‘패권 행보’라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 시스템에 접근하기 위해 실제로 행동하지 않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1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무제한 협력”을 선언했고, 중국은 러시아 시장의 주요 공급처가 됐지만 협력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이 러시아 군수품 자금줄 세탁 협력 혐의로 중국 금융기관 등을 상대로 제재를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 것만으로 기업들은 움츠러들었다. EU를 상대로는 2025년 7월 러시아 군사 자금줄 회피에 개입한 혐의로 중국 금융기관 2곳을 제재하자 EU 산하 금융기관 2곳에 맞불 제재를 놓는 정도의 반격 조치를 해 왔다.
미국은 이란 전쟁 휴전 협상이 위기에 몰린 가운데 ‘제재 카드’를 다시 한 번 꺼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24일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의 정유 대기업 헝리그룹 등 5개 기업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이란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3억4400만달러(약 5000억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동결하고, 이란과의 거래 정황이 포착된 중국계 은행 2곳에 대한 2차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은 이에 미국 제재를 무시하라는 지시로 맞받아쳤다.
중국은 해당 조치가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미·중 정상회담의 협상카드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서 ‘장기적 전략’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3일 논평에서 “법치의 힘으로 미국의 ‘확대 관할권’ 행사에 정밀하게 반격해 우리 기업의 권익을 수호하고 패권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요구에 부응했다”며 ”일방주의에 직면해 중국은 앞으로도 대외 법치 도구들을 잘 활용해 과감하고 능숙하게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은 이번에 (과거 역대 제재 조치에 비해) 훨씬 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며 “미국이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에 대한 제재를 유보하는 가운데 이미 긴장 상태에 있는 미국의 제재 체계를 시험대에 올릴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은 앞서 소송을 통해 대외 제재에 노출된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중국의 한 해양 엔지니어링 회사가 스위스 장비 회사와 2023년 9월 1945만 달러 상당의 유조선 장비 계약으로 하고, 스위스 회사가 해당 중국 회사가 미국 제재 대상이라는 이유로 1186만 달러의 수수료 지급을 겁하자 난징 해사법원 중재를 통해 잔금을 받아내도록 했다. 이 판결은 2025년 중국 최고인민법원 판례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됐으며 지난 1월 관영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미·이란 전쟁을 기점으로 중국의 제재 반격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쉬톈천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수석 분석가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의 제재 준수 문제에서 금융 시스템의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를 따르면 중국 시장을 잃거나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되고, 중국 법을 따르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는 딜레마에 놓였다. 미국 달러 중심의 금융 시스템이 워낙 강고해 당장 미국의 제재 시스템을 흔들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눈치를 보는 기업들이 늘어나면 미국의 제재는 예전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중국의 조치는 향후 타협책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원화 베이징 국제경제무역대학 개방법률연구소 교수는 경제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금지 조치를 두고 “핵심은 보다 강력한 보복 조치를 동시에 취하지 않고 중국 내에서 해당 제재의 법적 효력을 차단하는 것”이라면서 “이러한 접근법이 향후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여지도 남겨둔다”고 말했다. 맞불 제재 등 법적 보복 조치를 단행하는 대신 ‘명령 미준수’로 받아치면 미국 역시 고심하게 되며 오히려 문제를 비공식적으로 쉽사리 풀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을 두고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하는 등 미국과의 경제 전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돼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희토류 수출통제 역시 지난해 미국과의 관세 전쟁 국면에서 법과 제도가 완비된 바 있다.
다만 미국의 반응이 변수다. 블룸버그통신은 컨설팅 그룹 유라시아그룹의 분석가들을 인용해 이번 조치가 중국과 미국 정상 간의 예정된 회담을 무산시킬 가능성은 낮지만, 미국 반응을 통해 사태가 악화될지 여부가 드러날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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