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가볍지만 무리하지 않고 사는 법 [노동의 표정]
27편 오르는 물가 버티는 힘
작은 보풀이 주는 응원
낯선 것으로 세상 채우기
물가에 초라해지지만
주눅 들지 않는 삶의 속도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오른다. 그렇게만 보면 과거보다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하지만 돈이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일까. 그렇지 않다. 지나간 날과 앞으로 올 날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번 노동의 표정은 박송이 시인의 작품에서 찾아봤다.
![박송이 시인은 물가 부담에 지쳐도 버티는 법을 말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5/thescoop1/20260505110104410pmzw.jpg)
박송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보풀은 나의 힘(애지ㆍ2013년)」은 그렇게 다가왔다. 이 시집은 처음과 끝이 정밀하게 만난다. 아마도 시인은 자신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을 통해 시집의 '의도'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서 의도란, 큰 의미가 담겨 있기보다는 살아가면서 알게 된 사소하지만 값진 깨달음이다. 그것은 '질투'의 힘을 긍정했던 기형도 식의 '질투'가 아닌 '보풀'이 가져다주는 힘이다. 질투가 아닌 '보풀'이 어떻게 힘을 가져다줄 수 있느냐고 독자들은 생각할 수 있겠으나, 경험 속에서 얻은 시적 사건은 충분히 신선한 자극을 준다.
'보풀'은 옷이나 천 표면에 생기는 작은 털 뭉치다. 옷에 보풀이 일어나면 보기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헌 옷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보풀을 옷으로부터 떼어 낸다. 보풀은 쓸모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렇다.
하지만 시인은 그 존재들을 이젠 자세히 보려고 한다. "미친 듯이 질투를 구걸하느라/정작 빈 밥그릇에/동전 한 닢 떨구지 않고/휙휙 지나쳐" 버린 시절을 밀어내고 "굽 나간 구두와/뭉쳐진 보풀과/비단풀을/빈 손바닥에 올려두고//그 무용한 풀떼기들을"('보풀은 나의 힘–기형도 시인')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결심 덕분에 시인은 현재와 미래의 시간에서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본다는 말은 아닐 테다. 질투에 쫓겨 살았던 지난날을 천천히 뒤로 밀어내고 서서히 새로운 삶을 바라본다는 말일 테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5/thescoop1/20260505110105734wsrl.jpg)
박송이 시인이 직면한 이런 변곡점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집에 반영된다. 키우는 아이를 보며 "실수하는 걸음마로 내가/그렇게 씻긴 설거짓거리였다는 걸/"('설거짓거리') 뒤늦게 깨닫게 되고, 은행에서 번호표를 쥐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이 숨 쉬고/다음 숨이 펼치도록/우리가 애타게 구한 건 무엇이었을까"('엔딩 크레딧 석양이 다 내려갈 때까지')라며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묻기도 한다.
몸이 좋지 않아 응급실에 실려 가 수액을 맞고 있었을 때는 삶과 죽음의 순리를 간접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과거보다 조문이 많아진 지금, 움츠러들기보다는 당당하게 "영정 사진을 마주"('조문') 할 것을 다짐한다.
이런 깨달음과 각오는 무너질 것 같은 날 비 맞으며 "빗줄기를/밧줄로"('뜰채의 힘') 고쳐 읽으려는 마음 탓이 크다. 세상은 예전과 다르지 않지만, 다르게 보려는 마음으로 인해 낯설고 새로운 것들로 세상은 채워진다. 나아가 긍정(삶)의 자세와 담담히 끝(죽음)을 응시하려는 이 태도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노동 현장으로 데려다준다.
적은 월급으로 생활해야 했던 시인은 청첩장과 부고 문자에 당당하기 위해 열심히 밥벌이한다. 시를 열심히 써서 가정에 보탬이 되려고 한다. 아이에게 괜찮은 물건을 골라주기 위해 '당근 마켓'을 수시로 드나든다. 그렇게 성실히 "하루하루 닦았던 날짜를 긁어모아/ 나라는 노동자에게/ 싹 다"('월급') 바친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있어 노동의 표정은 '물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딸기를 못 샀습니다
환장하는 딸기를 살 수 없었습니다
딸기 바구니 앞에서 진지합니다
빨간 소쿠리 15,900원
투명곽 7,900원
물러 터진 건 없는지
덜 읽은 건 없는지
용량과 가격을 확인하는 동안
마음의 잔고를 저울질합니다
바나나 한 손을
빈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바나나 껍질을 벗겨
아이 입에 넣어 줍니다
아직 너는 덜 익었고
나는 이미 물러 터졌구나
바나나가 좀 더 새콤달콤한
과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울질' 전문]
![[사진 | 애지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5/thescoop1/20260505110107015tyoj.jpg)
그래서 시인은 값도 저렴하고 적당히 달콤한 양 많은 수입산 바나나 한송이를 구입한다. "바나나가 좀 더 새콤달콤한/과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내비친다. 이처럼 시인은 물가의 높낮이를 통해 넉넉하지 못한 소시민의 삶을 그린다.
이런 삶은 우울한 날에 화풀이로 먹는 핫도그 가격 인상과도 연결된다. 절망적인 날 핫도그 하나면 되는데, 그 핫도그 가격마저 "어제까지는 1,000원이었고/오늘부터는 1,500원"이다. 씁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시인은 "명랑하게 한 끼를 때우기 위해서는/우리 기분에도 가격 인상이 필요"('명랑핫도그')하다고 희화화한다.
시인의 삶이 가난해 보인다고 독자들이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지 않다. 치솟는 물가가 시인을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높은 물가로 인해 주눅 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속도로 삶을 슬기롭게 살아간다.
주머니가 가볍지만 무리하지 않고 가진 것을 잘 가꾸며 보람차게 살아간다. 무엇보다도 시인은 '보풀'의 힘을 믿는 사람이니, 어디서나 긍지 있게 땅을 딛는다. 이 시를 읽었으니, 앞으로 헌 옷에 피어난 작은 보풀 하나 가볍게 보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보풀은 시인에 의해 새로운 이름 하나 얻었다.
문종필 평론가 | 더스쿠프
ansanssu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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