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CEO 물러나는 팀 쿡의 그림자 [유레카]

래리 엘리슨 미국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의 앞날을 어둡게 전망했다. 아이폰을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대를 연 창업자 잡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인 2013년 시비에스 인터뷰에서다. 엘리슨은 가파르게 치솟던 애플 주가가 곤두박질할 것이라며, 잡스 없는 애플의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잡스의 뒤를 이어 2011년부터 애플을 이끈 팀 쿡 재임기 15년간 애플은 초고속 성장을 했다. 연간 매출이 4배 가까이 뛰었고, 시가총액은 4조달러를 넘어서며 10배 이상 불어났다. 카리스마적 창업자를 승계한 2인자를 향한 우려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셈이다.
쿡이 부린 마법의 원동력은 남다른 근면함과 관리 역량, 그리고 미-중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에 있다. 쿡이 처음 입사한 컴퓨터 제조사 아이비엠(IBM) 주차장에 평일 밤늦은 시간은 물론, 주말에도 쿡의 자동차 한대만 홀로 세워져 있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애플에선 누구보다도 긴 시간 일하는 그를 위해 전담 비서만 2명이 배정되기도 했다.
‘관리자’ 팀 쿡이 이룬 업적의 명과 암은 뚜렷하다. 애플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하나도 직접 소유하지 않는다. 대신 대만 폭스콘, 중국 럭스셰어, 비야디 일렉트로닉 등 중국 내 공장에 위탁 생산을 ‘올인’하는 전략을 택했다. 애플의 정교하고 효율적인 ‘붉은 공급망’을 진두지휘한 게 바로 쿡이다. 그에게 미국의 제조업 쇠퇴를 부추기고, 중국 기업의 제조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비판이 따라다닌 이유다. 쿡은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지 않으면 관세를 때리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과 정부 검열, 현지 투자 확대 등 정책 기조를 따르라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요구 사이에서 외교력을 발휘하며 애플의 ‘아슬아슬한 전성기’를 만들었다.
쿡이 물러나며 혁신보다 관리에 무게를 뒀던 애플의 전략도 달라질 전망이다. 애플은 쿡의 뒤를 이은 차기 최고경영자로 엔지니어 출신 존 터너스를 발탁하고, 반도체 칩 설계 전문가 조니 스루지를 하드웨어 총책임자로 승진시켰다. 이는 ‘하드웨어 혁신 명가’로서의 위상을 강화해 뒤처진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포석이다. 쿡의 그림자와도 같은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인도·베트남 등으로 다변화해야 하는 난제도 안고 있다. 애플의 변신은 세계 공급망 지도를 재편하고, 아이폰 이후 전자기기의 미래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쿡 이후의 애플’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박종오 경제산업부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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