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태 칼럼] 이 푸짐한 반도체 밥상은 누가 차렸나

작년 11월 SK하이닉스 노사가 1인당 성과급을 평균 1억 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래서 많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배 아파했을 때, 이런 제목의 칼럼을 썼다. '하이닉스 성과급이 3억, 5억이어도 좋겠다'.
대한민국 인재들이 모조리 의료계로 몰려가는 현실에서 이공계로 인재의 물꼬를 터주려면 파격적 성과급이 답이라고 봤다. 주장이 선명하도록 잔뜩 부풀린 액수였는데 웬걸, 실적이 폭발하면서 그게 현실이 됐다. 올해 직원 1인당 평균 성과급이 그보다도 많은 6억 원 이상이 될 거란다.
삼성전자 노조는 "하이닉스보다 더"를 외친다. 영업이익의 15%-하이닉스는 10%-를 성과급으로 주지 않으면 파업하겠다고 벼른다.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1인당 7억 원가량 챙길 수 있다. 그새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다음이 '반'(반도체)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취업이 보장되는 반도체 계약학과 대학 합격선이 치솟았단다. 이 추세면 의대를 제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다.
칼럼 주장대로 되긴 했는데, 영 개운치 않다. 이들이 받겠다는 1인당 7억 원은 정말 공정한 성과급인가. 편하게 돈을 챙긴다고 욕을 먹는 의사들과 다를 건 뭔가. 3년 전쯤 쓴 또 다른 칼럼을 소환한다. '삼성에 화끈한 특혜를 떳떳하게 주는 방법'.
당시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 지원 조건에 초과이익 시 보조금의 75% 한도 내에서 환수하는 내용을 넣었다.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봤다. 재벌 특혜 등 형평성 문제로 지원을 주저하는데 세제 혜택이든 공장 증설이든 화끈한 지원을 하고 초과이익이 나면 환수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기업은 초과이익을 일부 토해내도 기술력을 끌어올려 글로벌 경쟁력을 높였으니 득이고, 국민들은 법인세 증가 같은 낙수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득이다. 누구 하나 손해 볼 것 없는 윈-윈이다.
국민들은 기꺼이 반도체 지원 동의
무슨 염치로 지원 호소했냐는 물음
부끄럽지 않은 성과급 받아가길
칼럼 이후 K칩스법이, 또 반도체특별법이 만들어졌다. 도로와 물, 전기 인프라를 깔아주고, 세금까지 대폭 깎아줬다. 굳이 수도권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하느냐는 비판이 비등해도, 송전망 때문에 지역 주민과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도 정부가 다 막아줬다. 반도체를 살려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는 현실적 선택이었다. 이제 국민들이 되묻는다. 당신들끼리 성과급 잔치를 할 거면 무슨 염치로 지원을 호소한 건가.
배우들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때 의례적이지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스태프 모두에게 주는 걸 대신 받은 것뿐이라고. "나는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라는 황정민의 수상 소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 푸짐한 밥상이 직원들의 노력만으로 차려진 게 아님을 본인들도 잘 알 것이다.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인 정부 지원 기여분과 직원 노력 기여분을 발라내 보시라. 하청·협력업체의 몫과 본인들의 몫을 구분해 보시라. 누구도 예상 못한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은 얼마였는지 따져 보시라.
삼성 저격수이던 박용진은 "이 천문학적 이익을 두고 대문 걸어 잠그고 동네 사람을 같이 불러 음식 나눌 생각은 안 한다"고 쏘아붙였다. 공감하지만, 그렇게 흥청망청 나눠 먹기 잔치를 벌일 때도 아니다. 이익을 농어민에게까지 나누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온다. 반도체 시황은 언젠가는 꺾인다. 메모리에 안주하다가 금세 시장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잘나갈 때도 늘 10년, 20년 후를 내다봤다.
이익을 마구 나눠 주라고 하진 않겠다. 대신 적절히 가져가시라. 당장의 현금보다 장기 성과에 연동된 주식으로 받아가시라. 그래서 이익의 상당 부분은 미래에 투자하도록 남겨두시라. 그게 반도체만을 애타게 바라보며 고통을 견뎌 준 국민들에게 간접적이나마 혜택을 돌려주는 올바른 방식이다. 부끄럽지 않은 성과급이길 바란다.
이영태 논설위원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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